"아빠와의 성경나눔 32일째 :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로마서6:14)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의 우리가 율법 아래 있었을 때, 우리는 율법이 정죄하는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어.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스스로 못박히셔서 우리 죗값을 대신 치르심으로써 심판장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셨고, 그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안에 머무르게 하셔서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죄'가 아닌 '의'와 '거룩'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으니, 이것이 성도가 받은 '은혜'야.

법은 우리에게 '명령'을 하지만, 은혜는 그 명령을 준수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법은 그 앞에 우리를 '죄인'으로 부르지만, 은혜는 그 앞에 우리를 '의인'으로 불러주시며, 법은 우리를 '구속'하지만, 은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법은 우리를 '좌절'하게 하지만, 은혜는 우리를 '소망'하게 해.

이러한 은혜의 수여는 값없는 선물로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단 번에 이루어진 사건이라, 우리는 이미 죄로부터의 자유를 얻었고, 죄가 더이상 우리를 다스릴 수 없게 되었어.

하나님의 계명인 율법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즉, '사랑'으로 요약되는데, 우리가 '사랑'이신 하나님을 스스로 떠나 있을 때는, '사랑'의 율법을 행할 수 없었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완성된 율법, 그 '은혜' 안에 머무르게 되어 성령님을 통해 '사랑'의 예수님과 연합을 이룸으로써, 그 은혜 안에서 '사랑'의 행실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거야.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과 여기서 파생된 여러 율법이 담긴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의 부담을 느끼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입의 꿀보다 더 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시편119:103), 성경이 궁극적으로는 은혜의 기록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 인하여 자발적인 마음으로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야.

맹인에게 "눈을 떠라" 하면, 조롱과 폭력이겠지만, 그의 눈을 고치시고 "떠라" 하시면 그것은 은혜이고 기쁨인 것과 같아.

따라서 성도는 은혜 안에 있을 때,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지키는 것을 기뻐하게 돼.

"나를 지키셔서, 주의 계명이 가리키는 길을 걷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기쁨을 누릴 길은 이 길 뿐입니다. 내 마음이 주의 교훈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내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 눈이 헛된 것을 보지 않게 해주시고, 주의 길을 걸어 생명을 얻게 해주십시오."(시편119:35)

우리가 가야할 길에 곁길은 없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 만이 생명의 길이고(잠언10:17), 곁길에는 사망 뿐이야. 회심을 경험하고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말씀과 계명의 길'을 걷게 된 성도들도, 때로는 그 길의 안전함 속에서 잠시 싫증과 교만을 느끼게 되어 주의 말씀의 길이 아닌 곁길을 걷고자 하는 호기심과 욕구를 갖게 되기도 하지만, 그 곁길에는 사단이 그물을 치며 함정을 두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돼.(시편1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