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시고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가 없다”](전도서 3장 11절).

 

 

어제 토요일 오전 10시즘에 5년째 암투병중인 사랑하는 (사촌 여동생) 수정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 문자 내용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형통"이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형통관에는 의인의 고통도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의인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보고(관망)만 계시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제 토요새벽기도회 설교[제목: 나의 형통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1) (시편 35:17-28)] 동영상 유튜브 주소를 보내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형통(성공)의 비결은 … (1)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창 39:2, 3,21, 23), (2)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수 1:8, 왕상2:3), (3) 하나님을 찾는 것(대하26:5)”이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런 후 약 3시간 후에 수정이로부터 이러한 문자 답변을 받았습니다.  제가 한국어로 번역해 보았습니다: ‘…  하나님께 많은 질문을 던지고....  요즘 더 힘들어하는 것들 .... 내가 더 믿음이 있고 내 인격이 더 예수 그리스도와 같다면, 나는 이미 암에서 고침을 받았을까요?  나는 하나님이 내 성품에 역사하심을 느낍니다... 그분에 대한 더 큰 믿음을 갖고 예수님을 더 닮아가기 위해.  하지만 제 자신을 보면 갈 길이 아주 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그래서 저는 제가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좀 더 예수님을 닮도록 도와주시고 산을 옮길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하나님이 누구신지 기억하려 합니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시는... 신실하시고 자비로우신 나의 아버지...  나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고 절대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분, 그리고 그분의 시간에 그분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실 것입니다.  오빠, 좀 더 참아야지....”  저는 이 글을 읽고 또 읽으면서 그녀가 2가지를 하나님께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예수님을 닮는 것과 (2) 큰 믿음.  그리고 저는 수정이의 글에서 수정이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시간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실 것임을 믿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8월 가족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기에 앞서 수정이가 말한 “그분의 시간에 그분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실 것입니다”라는 내용에 근거해서 전도서 3장 11절 말씀을 묵상하고 싶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시고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저는 이 말씀 중심으로 3가지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저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셨다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전3:11a).

 

전도서 3장 1절을 보면 개역한글 성경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개개인의 삶 가운데 역사(일)하시므로 말미암아 결국은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나아가신다는 것입니다(Wiersbe).  그런 후 2절부터 8절까지 성경은 한 5가지 때를 말씀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 때가 바로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입니다(2절).  즉, 우리는 태어날 때도 있지만 분명히 죽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태어남과 죽음이란 나무로 말한다면,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사람은 태어나기도 하고 또한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사람은 죽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뿐만 아니라 나무의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삶과 죽음을 통하여 오직 주님의 뜻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오직 주님의 영광이 들어나야만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삶과 죽음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둘째로, 저는 하나님은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전3:11b).

 

헛되고 헛된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솔로몬 왕처럼 던져야 하는 질문은 ‘과연 내가 이 땅에서 일하면서 수고하는 것에 대한 이익(유익)이 무엇인가?’입니다(1:3; 2:22; 3:9).  솔로몬 왕은 이 질문을 3번이나 반복적으로 던진 후 전도서 3장 10절에 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결국 그는 보게 된 것은 이 땅에서의 우리가 일하면서 수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일하면서 수고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분명히 솔로몬 왕은 전도서 2장 23절에서 “일평생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고 말하면서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고백하였는데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헛된 일 또는 헛된 수고를 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저는 그 대답을 오늘 본문 전도서 3장 11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살아가면서 우리로 하여금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시는 이유는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영원한 것을 추구하게 만드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헛된 일이나 헛된 수고를 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영원한 것을 추구하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미있는 일과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보시기에 의미있는 수고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3장 12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여기서 “선을 행하는 것”이란 남들에게 유익한 일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박윤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된 우리는 우리 마음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으므로 우리는 남들을 유익하게 함에 있어서도 영원한 관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원한 관점으로 남들을 유익하게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남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들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영원하신 주님을 그들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들 또한 우리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므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만큼 나은 것이 없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저는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전3:11c).

 

오늘 본문 전도서 3장 11절 하반절 개역개정 성경을 보면 “…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발견할 수 없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인터넷).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시작하셨고 언제 어떻게 끝내 실지를 우리가 이해(측량)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정하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사건을 넘어 인생 전체를 바라보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제한되어 있어 아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삶의 역설처럼 보이는 모든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추리력을 주셨지만 모든 비밀을 풀기에 충분한 것은 주지 않으셨습니다(Wycliffe 성경 주석).  그러나 적어도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빌립보서 1장 6절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 가운데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실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여기서 “착한 일” 또는 “선한 일”이란 ‘구원’을 말씀합니다.  즉, 사도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확신이란 빌립보 교회의 성도님들 가운데 구원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그 구원의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확신입니다.  이 확신은 우리는 확실히 압니다!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시는 하나님을 암투병중인 사랑하는 사촌 동생 수정이와 함께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제임스 김 나눔

(2023년 8월 13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하신 뜻이 우리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라도 이루어지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