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기쁨으로 전도 학교
(Morning to Gladness School of Evangelism)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저는 사우스베이(Southbay)에서 일주일 조금 넘게 머물다가 ‘아침을 기쁨으로 교회 전도학교’를 통해 지역사회에 복음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최근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경험을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명하는 것은 항상 조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다소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난 한 주 동안 제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 중 하나는 이 모든 것을 제 자신에게만 간직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압니다.
시작하기 전에 일일 일정에 대한 몇 가지 맥락(context)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전 6시 30분 - 기상 및 준비
오전 7시 - 룸메이트와 아침 예배 (저는 다른 여자 3명과 한 방에 있었음)
오전 8시 - 교회로 출발하여 아침식사
오전 9시 - 훈련(사람들에게 증거하는 방법에 대한 메시지)
오전 11:30 - El Camino 2년재 대학으로 이동
오전 12시 - 전도(둘이 짝을 지어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함)
오후 3시 - 쉬는 시간
오후 4시 –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전단지 부착[주일 예배와 토요일 카니발(carnival, 축제)에 대한 홍보 및 기회가 되면 복음 전하기 위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림]
오후 6시 – 저녁 식사
오후 7시 - 예배와 기도
오후 9시 - 모텔로 이동 및 보고
오후 10시 30분즘 - 설거지/방 보고/교제 (선택사항이었습니다 ㅎㅎ)
오전 12시 - 오전 2시 – 취침
여러분이 알 수 있듯이 매일은 활동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 주 동안 저와 많은 팀이 물리적으로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그리고 많은 커피)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스케줄을 보면서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고 생각했는데 아침마다 새로운 신념과 하루를 시작하는 불을 발견해서 놀랐습니다 - 저는 전에는 그렇게 깊이 경험하지 못한 봉사와 수용의 리듬[rhythm(변화)]에 꽤 빨리 빠져드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배운 내용을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증거(전도)하려면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강한 의존이 필요합니다.
2) 잃어버린 자를 위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
3) 하나님은 초자연적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4) 하나님은 깨진 그릇을 책망이 아닌 축복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 증거(전도)하려면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강한 의존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처음 배운 것 중 하나는 …
- 증언(전도) = (a)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도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b)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 해야 하며 그리고 (c)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 주도권을 행사하다.
- 처음 전도를 생각했을 때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습니다.
- 저는 매우 웅변적이고 신학적인 지식이 있고 더 외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하지만 이번 선교 여행을 통해 저는 전투의 절반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말하기 위해 주도권을 잡는 것(믿음의 발걸음)이고 나머지는 정말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 해야 합니다.
- 제가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왜 이렇게 말했을까?" 또는 "내가 왜 그렇게 어색해?"
- 하지만 이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제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듯이, 그들이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도 저의 연약함/실수 때문이 아님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 제가 교만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가 선택한 단어로 무슨 말을 하기로 하여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행하고 계신 일을 방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그들에게 감정적으로 애착을 갖게 된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다정함, 그들의 상처를 저는 강하게 느꼈습니다.
- 그들이 떠난 후 마음의 평화를 느끼기가 정말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대화를 나눌 때마다 감정이 심하게 고갈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 즉, 놓아주기도 힘들었는데, 제가 이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나님도 마음속으로 그들을 위해 얼마나 더 부르짖고 계실까?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곳에 있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서 계속 일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저에게 평안을 주었습니다.
- 하나님은 저에게 하루에 나무를 키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씨앗을 뿌릴 뿐입니다.
이러한 점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 가장 큰 부분은 4영리(4 spiritual laws) 소책자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책자는 기본적으로 가장 직접적이고 명확한 방법으로 복음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는 동안 저는 많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Danny 목사님은 우리가 소책자에서 직접 읽고 처음에는 매우 비인격적이라고 느꼈던 부풀리는 것이나 우리 자신의 말을 추가하지 말라고 매우 단호했습니다. 저는 또한 제가 10-15분 동안 소책자에서 읽는 것으로부터 복음을 실제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큼 실제로 참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Danny 목사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리의 능력을 믿으라고 촉구했을 때 저는 매우 겸허해졌습니다.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거나 이 긴 소책자를 읽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더 담대하게 나눌 수 있었고, 제 말보다 책자에 있는 말씀(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실제로 소책자를 사용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저와 함께 앉아 소책자를 살펴보고 (일부는) 죄인의 기도/기도를 받기까지 했는지에 놀랐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나눌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데려오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또한 친구들과 복음을 나누는 것이 너무 두려웠던 때와 의심과 두려움 때문에 그들이 제가 믿는 것을 기꺼이 들어줄 것인지 묻지도 못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복음을 나누는 것에 대한 저의 오래된 두려움은 이제 너무 작게 느껴집니다.
- 잃어버린 자를 위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
두 번째 날 밤 Jonathan 목사님은 요나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니느웨에서 도망쳤지만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구원할 능력이 있음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이 그의 백성을 박해했기 때문에 그는 그곳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서 길을 잃은 120,000명보다 그 식물이 가져다주는 위로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런 다음 Jonathan 목사님은 요나처럼 우리도 때때로 그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 자신의 안락함, 소유물, 사람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을 우선시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향적인 사람으로서 이유없이 남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 자신의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해 편안함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것이 저를 때렸습니다. 이것은 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내 마음은 무엇일까?’ 저는 종종 선교를 영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방법으로 생각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나쁘지 않았고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에 대해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분의 자녀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알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거절과 미움과 핍박을 받아도 두려워하거나 변하지 않는 마음, 보답과 상관없이 사랑하는 마음.
피곤함, 의심/두려움, 또는 낯선 사람과 얼마나 불편한 것보다 하나님은 제 자신보다 그들을 더 사랑하라고 부르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누구와 대화하기를 원하시는지 헤아리거나 망설이는 데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에게나 누구에게나 다가가서 차별 없이 좋은 소식을 전해야겠습니다. 그날 밤 저는 하나님께 제 사랑이 아닌 그분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계속 기도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은 초자연적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꽤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교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예언기도, 방언, 영적 전쟁과 같은 개념이 육체적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영적인 은사를 가진 현대인과 같은 것을 정말로 알지도 못했고 진정으로 믿지도 않았습니다. 사우스랜드(Southland) 예배에 계속 참석하고 그런 것들에 대한 다양한 간증을 듣기 시작하면서 기도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미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저는 그것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지만 실제로 초자연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경험한 적은 없었습니다.
예언적 기도:
과거에 사람들이 저를 위해 이미지를 기도했을 때 저는 감동을 받았지만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저를 잘 알고 제가 겪고 있는 일을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항상 약간의 의심이 있었습니다.
전도와 훈련을 시작하기 전인 첫날 밤, 기도를 하다가 문득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방에 있는 것이 생각나고 쓸쓸함과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여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저는 이것을 하나님의 이미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그것이 그 당시 제가 느꼈던 것의 표현이라고 생각했고 또한 이미 방의 불이 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방에서 제 생각을 한 후 감정이 너무 강하게 치솟았기 때문에 그 감정은 다음 날 내내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Danny 목사님이 우리에게 예언 기도에 대해 훈련시켰고 그는 우리에게 예언/치유 기도를 하기 위해 목사가 될 필요는 없으며 단지 하나님께 구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우리에게 3명씩 그룹을 지어 연습하라고 요청했습니다(가급적이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저는 선교 전에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는 Tommy와 Trisha와 함께 그룹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언적 기도에 대한 경험이 없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이미지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항상 약간의 의심을 가졌다는 점을 공유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는 다들 "안 받아도 돼", "그냥 한번 해보자, 누가 알겠어?" 그러나 그들이 저를 위해 기도했을 때 Tommy는 제가 어두운 방에 있는 이미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첫날 밤이 생각나서 귀가 쫑긋 섰다고 하셨지만 아직도 조금 의심이 듭니다. 사람들이 저를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방의 창문도 밝게 빛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응답을 기대하지 않고 기도한 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인 것 같아서 마음이 뭉클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방에 혼자가 아니야, 사실은 내가 여기서 너를 지켜보고 있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쯤 저는 이미 충격을 받았지만 어느 날 밤 제 마음이 특히 힘들고 무거웠던 제 룸메이트 중 한 명을 위해 기도했을 때 그녀는 제가 하나님께서 치우고 싶어하셨던 먼지 토끼가 제 밝은 방에 있다는 이미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이 느꼈습니다: ‘비록 네가 상처받고 외롭다고 느낄지라도, 나는 사실 네 삶에 빛을 비추고 너를 사랑하기 위해, 너를 짓누르고 있는 과거의 상처를 씻어주기 위해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예언적 기도에 대한 큰 격려이자 첫 경험이었습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
어느 날 우리가 기도 천막에서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천막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가톨릭 아버지와 아메리카 원주민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지만 어머니와 더 가까웠기 때문에 아메리카 원주민 관습을 믿으며 자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감시하는 단 하나의 힘이 있다고 믿지 않고 자신의 삶과 죽음에 만족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흐름을 따라가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살던 트레일러 밑에서 살게 된 검은 고양이로 변해버린 이야기를 하던 중 강한 바람이 텐트 전체를 뒤흔들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내 조상이 틀림없어.’ 저는 으스스한 긴장감과 거의 두려움을 느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의 조상 영혼이 진짜 일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Dena는 계속해서 그와 함께 4영리를 살펴보았고 우리가 그를 위해 기도해도 되는지 물었을 때 그는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했을 때 또 갑자기 돌풍이 불었지만 이번에는 그 바람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강력하고 시끄러웠으며 저와 Dena가 그분에 대한 기도를 마칠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돌풍이 부자연스럽게 길고 사납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저는 정신이 팔려 있거나 무서워하는 대신 이상하게 기도에 힘을 얻었습니다. 기도하느라 눈을 감았기 때문에 그때는 몰랐지만 텐트 안에 있던 우리 팀의 다른 두 사람은 바람이 너무 강해서 텐트를 잘 버티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고 말했습니다. 텐트가 날아갔을 것입니다. 하루 종일 그 전후에 그렇게 강한 돌풍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갑자기 침묵이 흘렀고(바람이 멈췄다) 기도를 받는 남자의 손이 손바닥을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어 "좋은 징조"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하나님을 인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Dena를 향했을 때 그녀도 무언가를 느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방금 일어난 일을 함께 처리하기 위해 옆에 앉았고(둘 다 동의함) Jonathan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는 우리 주변에서 영적 전쟁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 바람은 악령입니다. 인간은 그와 함께 데려왔고 두 번째는 악령을 제압하고 승리로 우리를 보호하는 하나님입니다. 그 경험은 너무 초현실적이었고 한동안은 조용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와, 나의 하나님은 실재하시고 나의 하나님은 강력하시다’는 고백뿐이었습니다.
- 하나님은 깨진 그릇을 책망이 아닌 축복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그러한 기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계속해서 경험한 지 반주가 지난 후, 저는 하나님께서 이 공동체의 사람들을 향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고 그들 안에서 그리고 우리 팀을 통해 그 분께 마음을 더 가까이 가져가기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Julian 목사님(아침을 기쁨으로 교회의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했을 때 그는 우리가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있었던 것처럼 자신도 마음속으로 우리를 섬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처음 시작했을 때 저는 그가 말하는 대부분을 이미 알고 있었고 솔직히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우리를 섬기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님께 가져와야 합니다. 우리의 상함과 다른 상처로 입은 상처를 주님께 아뢰고 우리 마음의 부르짖음을 주님께 아뢰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상처를 하나님께 가져오기 전에는 당신의 상처를 치유하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기도의 시간으로 인도하셨을 때 저는 제 마음이 극도로 무거웠던 것을 기억합니다. 수년 전에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던 깊은 분노와 부끄러움을 마음속에 여전히 품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에 제 머리를 가득 채운 것은 혼란과 혼돈뿐이었다.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고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그 상처들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그것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제 머릿속에서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 무게는 우리가 방에서 밤을 새고 아침이 될 때까지 계속 제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자기 전에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룸메이트들과 나누었지만, 이 일을 완전히 처리할 수 있을 때까지 다른 사람과 공유할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한동안 준비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다음 날 Danny 목사님이 저를 불러 다른 팀원들과 저의 간증을 나누자고 했을 때 저는 마음속 깊은 부끄러움을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는 또 다른 마음의 압박을 느꼈습니다. 간증, 하고 싶은 말, 어떻게 말해야 명확하게 전달될까 생각했는데, 무대에 올라 모두를 마주한 순간 내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는 이 상처가 여전히 제 안에 있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간증은 여러 번 해보았지만 제 상처의 정확한 뿌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모두에게 큰 소리로 말하니 더욱 실감이 났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과 하나님에게 제가 망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또한 제가 여전히 매우 망가졌다는 것도 인정했습니다.
저는 밀려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남은 예배와 말씀, 기도 시간을 뒷방에서 혼자 보냈습니다. "내가 왜 그걸 지금 공유했지?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내가 말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으며 어떻게 느껴야 하는가?" 하나님이 저에게 보여주신 모습처럼 저는 창으로 둘러싸인 방에 앉아 있었고 저는 빛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 안에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어둠과 혼란만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지난 며칠 동안 제가 경험한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제가 본/받은 이미지가 진짜였나요? 하나님이 정말 저에게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Southbay에 있는 그분의 자녀들을 돌보시고 이번 주 전체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깊이 깨닫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이 저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여전히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사이에는 이 팽팽한 긴장이 있었습니다.
Jonathan 목사님은 조금 후에 저에게 오셔서 기도로 하나님께 여쭈어 보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모든 의심이 표면으로 솟아오르는 그 순간, 저는 삼각형 돛을 내밀고 바다에 떠 있는 범선의 이미지를 보았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고 Jonathan 목사님에게 솔직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물 아래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저에게 하나님께 물어보라고 했고 저는 주저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미지를 통해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달라고 간구했고 침묵 속에서 무서운 두려움과 절망감, 즉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저에게 말씀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두려움이 제 안에 들어왔습니다.
Jonathan 목사님은 그 후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떠나야 했기 때문에 저는 혼자 기도하는 시간을 좀 더 보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실제로 배를 타고 있는데 태양이 뜨겁고 (배의) 갑판이 발을 태우고 있어 갑판 아래에서 쉬려고 하지만 어둠만 있을 뿐 거기에는 쉴 공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Jonathan 목사님은 “나에 대한 그의 사랑은 얼마나 넓고, 얼마나 깊은가?”를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즉시 저는 바다를 기억했습니다. 바다 밑에 무엇이 있는지, 바다가 얼마나 넓고 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저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광대하고 무한한
냉각 및 상쾌
평화로운
다음 땅이 어디인지, 심지어 제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헤엄쳐야 하는지, 바다에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도 하나님은 물속으로 뛰어들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더 이상 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록 제가 아직 망가졌고 제가 누구를 어떻게 또는 진정으로 용서해야 할지 모르지만, 이 순간 하나님은 저에게 진정으로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진실한 마음과 그는 계속 그렇게 할 것입니다.
결론:
제가 경험한 많은 것들이 이번 선교 여행을 알기 훨씬 전에 제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절정처럼 느껴졌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순간에는 종종 그분의 분명한 임재를 압도하는 현현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그분이 거기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말입니다.
이 선교 여행만으로 그분이 제 인생에서 하신 모든 일에 대해 약간의 개념적 이해만 여러분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저는 제 인생이 영원히 바뀌었고 결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절대적인 신뢰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 Southbay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이 간증이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Karis (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