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숙한 부모와 자녀

 

 

현숙한 부모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진주보다 더 값진 현숙한 배우자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조금 전 수요기도회 때 "현숙한 여인"(룻기 3:11)인 룻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적용하되 현숙한 그리스도인은 누구인지 한 가지만 설교한 후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 한 가지란 현숙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이다.

룻이란 모압 여인이 보아스라는 유대인 남자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2:10).

그리고 룻은 보아스에게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니이다"라고 말했다(13절).

룻은 보아스에게 그가 베풀어 준 은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너무나 그 은혜에 감사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보아스에게 더욱더 은혜 입기를 사모했다. 이것이 바로 현숙한 여인이다, 은혜를 사모하는 여자.

나는 현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가며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더 사모하고 싶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가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겸손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나는 큰 죄인이어늘 어찌하여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저를 돌보시나이까'라며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 같은 죄인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내 마음으로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가는 자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듯이(로마서 5:20). 신앙 생활의 여정에 내 죄를 더욱더 깊이 많이 깨달아 가면 갈 수록 나 같은 죄인 중에 괴수에게(디모데전서 1:15)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더 넘쳐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은혜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싶다.

비록 그 은혜의 바다의 표면에는 풍랑과 파도라는 위험과 위기과 고통과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그 은혜의 바다 깊은 속에서 진주조개가 진주를 만들어 가고 있듯이 내 삶의 현실에 어떠한 풍랑과 파도가 있다할지라도 내 마음 속에는 진주보다 귀한 예수님의 마음(심장)으로 변화되길 기원한다(빌 1:8).

그러므로 나 또한 사도 바울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그 은혜의 힘으로 다른 지체들보다 더 주님의 일에 수고하고 싶다. 그러나 내가 하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하시길 기원한다(갈2:20).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주님이 명하신 일을 다 마친 후에 이렇게 겸손히 고백하고 싶다: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저는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누가복음 17:10).

내가 먼저 이러한 현숙한 그리스도인 되고 싶다. 기도한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이러한 현숙한 그리스도인 돼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는 우리 자녀가 현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움 받길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 자녀가 현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자기를 위한 현숙한 배우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찾을 것이다.

그 이유는 현숙한 배우자는 진주보다 더욱더 값지기 때문이다(잠언 3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