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어머니도 요즘 몸 상태가 악화되어 요 며칠 사이에 세번이나 실신을 하시고 그제도 응급실에서 밤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냥 요즘 드는 생각은 서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며칠전에 썼던 글입니다.

 

‘사랑’에 대하여..

 

어머니가 앓고 있는 병은 치매입니다. 소통이 어려워질 뿐더러, 때로는 공격성이 드러나기도 하고, 목적 없이 배회하거나,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해지며, 상황에 맞지 않은 탈의와 같이 사회성을 잃어가고, 인간의 기본적인 행위와 사고를 잃어가는 병입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잃어가는 듯한 그 모습에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인간관은 인간의 가치를 '기능'이나 '소통 능력'에 두지 않습니다. 인간의 존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의 흔적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에 있어 하나님을 닮은 탁월성입니다. 이는 인간을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나게 하며, 하나님과 인격적·영적 교제를 나누도록 창조된 독특한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살 수 없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은 본성적으로 '관계'를 갈망합니다.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어 관계의 방향이 잘못되었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사귐을 상실하였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관계를 향한 깊은 갈망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인간적인 행위와 사고 능력을 상실한 후에도 여전히 동물과 구별되는 점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저희도 치매를 경험하는 것이 처음입니다. 어제 아내와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새삼 신기했던 것은, 불안과 초조 속에서 이상 행동을 보이다가도,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할 때 안심하게 되고, 자신이 누군지를 잊어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자존심이 남아있어서, 상대방의 무시하거나 화내는 태도에 상처를 받을 뿐만 아니라,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누군가를 갈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관계성이야말로, 어머니의 생명이 되며, 안전이 되고, 존재 의미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치매가 깊어진 후에도 소속에 대한 욕구, 애착과 위로와 존중을 받고 싶은 욕구가 남아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관계적 존재'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어머니의 돌봄 가운데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한 인간이 가장 깊은 곳에서 발하는 "사랑받고 싶다", "사라지고 싶지 않다"라는 근본적 절규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환자의 이상행동들은 그 몸부림일 것입니다.

 

창세기의 창조 기사는 공허하고 혼돈했던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과 이에 대한 피조물의 응답, 곧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다른 피조물들과의 관계 안에서 생명과 의미를 갖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에서 비롯된, '사귐', 곧 '사랑' 뿐입니다.

 

따라서 치매 환자의 절규, 혹은 우리 모두가 가진 근본적 몸부림에 응답하는 길은, 단순한 물리적 돌봄을 넘어, 영혼을 향한 실제적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단지 내 기준으로 편한 사람들과의 감정적 교류가 아닙니다. 천지 창조 때 세상의 무질서 가운데 질서를 놓았던 사랑이며, 그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 '질서'입니다. 지독했던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자신을 하나님 아래 두고 이웃을 나와 동일선상에 놓는 새로운 질서, 그것이 '자기 부인'이며 성도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마치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리하시듯, 존재 자체를 받아주고 사랑으로 지탱해주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도저히 내려놓을 수 없었던 우리로 하여금 그 사랑을 가능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그 사랑은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 우리에게 부어진 새 생명의 질서입니다. 환자의 돌봄 속에서, 혹은 누군가와의 관계와 사랑 속에서 내 연약함이 발견될 때,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그 사랑은 성도에게 '소망'의 증거가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겪는 고난이 마지막이 아님을 압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모든 것이 회복될 것입니다. 그날 어머니는 온전한 정신과 몸으로, 하나님을 완전히 아는 지식 가운데 부활하실 것이며 우리도 온전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한 사랑도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의 사랑은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표징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지만,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그 은혜와 사랑이 우리에게 족합니다. 그 약속된 소망을 향하여 아직도 가야 할 길을 가는 것, 그리고 그 길을 주님과 공동체와 함께 걸어가는 동안에 사랑을 경험하고 배워나가는 것, 이것이 성도의 ‘성화’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치매라는 깊은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우리 안에 보존하신다는 사실은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할 이유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서로의 손을 잡아, 그 손길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 자녀로 빚어가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어느 믿음의 형제의 귀한 글을 허락 받고 여러분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