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존경 (1)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 Dr. Emerson Eggerichs의 “그 여자가 간절히 바라는 사랑 & 그 남자가 진심으로 원하는 존경”이 있습니다. 참으로 모든 부부들에게 권면하고 싶은 책입니다. 그 책의 핵심은 책 제목처럼 아내가 원하는 것은 남편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남편이 원하는 것은 아내의 무조건적인 존경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요즘 아내하고 종종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혼 10주년을 맞이하기 한 2주전부터 이 책을 읽으면서 아내하고 다툼 속에서 다시금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저희 부부는 서로를 향하여 다시금 재 헌신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교회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셨던 것처럼 아내를 사랑함에 재 헌신하게 되었고 아내 또한 저를 존경하는데 재 헌신하는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결혼 10주년 1주일이 지난 오늘 목요일 새벽기도회 때 에스더 1장 말씀을 묵상하면서 존중을 받지 못한 남편 아하수에로 왕과 사랑을 받지 못한 와스디를 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어 이렇게 나눕니다.
에스서 1장20절 말씀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의 조서가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무론 하고 모든 부녀가 그 남편을 존경하리라”. 이 말씀의 배경은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2절)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 모든 방백들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3절). 이 잔치는 180일이나 지속되었고 아하수에로 왕은 그 기간 동안 자치를 벌였던 이유는 모든 방백들과 신복들 앞에서 자기의“영화로운 나라와 부함과 위험의 혁혁함을 나타내”길 원했던 것입니다(4절).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었는지 아하수에로 왕은 또 다른 잔치를 베풀었는데 이번에는 “대소 인민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었던 것입니다(5절). 그리고 제 칠 일에 왕이 주홍이 일어나서(10절)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그녀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게”하길 원했지만(11절) 왕후는 왕의 초청을 거절하였던 것입니다(12절). 그 때에 아하수에로 왕은 진노하여(12절) 전례대로 왕의 사례를 아는 박사들에게 물어 결국은 왕후 와스디로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게 하였고 그 왕후의 위를 와스디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도록 한 것입니다(19절). 의도는 무엇이었습니까? 왕후 와스디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부녀가 자기의 남편을 멸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할 뿐 아니라(17절) 오히려 남편을 존경하게 만들기 위해서 였습니다(20절). 그리고 “남편으로 그 집을 주관하게 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22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왜 와스디 왕후는 그녀의 남편인 아하스에로 왕의 말에 불순종하여 그를 분노케 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제일 원하는 것은 존경인데 왜 와스디 왕후는 존경보다 불순종으로 인하여 남편을 멸시하여 분노케 하였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Dr. Emerson Eggerichs의 말처럼 이 두 부부는 CrazyCycle을 격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지 않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기를 거부하였고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기를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와스디 여왕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한 마디로 Dr. Emerson Eggerichs의 말을 빌려 말한다면, 아하수에로왕은 아내를 자기 삶 속에 제일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King King Ahasuerus did not considerhis wife, Queen Vashti, as his first importance in his life).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 면 아하수에로 왕은 잔치를 두 번이나 열면서 자기의 “영화로운 나라와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냈으면서도(4절) 아내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 1장10절을 보면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왠지 와스디 왕후와 부녀들은 그들의 남편들에게 무시(neglect)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나중에 두 번째 잔치인 7일 동안의 "인민"을 위한 잔치에서 아하수에로 왕은 술 취해서 자기 아내인 와스디 왕후를 초청합니다. 근데 왠지 그의 초청은 아내로 하여금 사랑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 아니듯 싶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과연 술집에서 다른 직장 동료들하고 술 먹다가 술 취해서 예쁜 아내를 자랑하고 싶어서 전화로 아내에게 그 술집으로 오라고 하면 좋아할 아내가 있겠는가. 과연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겠는가. 결국 아하수에로 왕은 와스디 왕후를 사랑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그녀는 남편의 말에 불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도 남편을 무조건 존경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와스디 왕후는 그리 하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아하수에로 왕과 와스디 왕후의 부부 관계는 결국 현대 말로 하면 이혼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는 이 두부부의 관계를Dr. Emerson Eggerichs의 “사랑&존경”의 관점으로 생각해 보면서 성령님께서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까지 묵상케 하셨습니다. 즉, 신랑 되신 예수님은 아하수에로 왕과 달리 신부인 교회를 무조건 사랑으로 사랑하고 계신데 과연 우리 교회는 그 예수님께 순종하므로 존경 또는 경외하는 있는가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4절을 보면 주님은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고 계신데 과연 우리는 와스디 왕후처럼 그에게 불순종하므로 불신자들 앞에서 예수님을 멸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제일 귀중하게 여기시고 계신데 우리는 주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귀중하게 여기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 교회는 주님의 계명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하라는 말씀을 신실하게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정인 교회는 신랑 되신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그를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육신의 가정인 우리 각각 기독교인 가정은 주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서로 부부가 사랑하여 우리 주님을 영화롭게 해야지 더 이상 주님을 멸시하는 죄를 범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입술로만 신랑 되신 예수님을 존경하는 신부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온 맘과 정성 다해 주님을 존경하며 그의 말씀의 순종하는 사랑 받는 신부인 교회가 되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내를 사랑하는 사역에 재 헌신한,
제임스 목사 나눔
(2007년 5월 3일, 결혼 기념일 10주년이 일주일 지난 목요일 오후에 목양실에서 아내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