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매는 싫습니다.

 

 

사랑하는 후배 형제가 있다. 대학 다닐 때 만난 형제이자 함께 1년동안 roommate했던 형제이다. 그 때 함께 살았던 6명 형제들 중 다 결혼을 했는데 이 한 형제가 아직 안하고(못하고) 있다. 그래서 소개를 하려고 한 두세번 시도를 했지만 결국 한 번 시도후 그 다음부터는 원치 않아 이렇게 못하고 있다. "중매는 싫습니다"란 제목을 적으면서 그 형제가 생각났다. 중매보다 연애하겠다는 얘기라 생각된다.

 

난 중매를 받아 결혼을 했기에 중매를 왜 싫어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그리고 중매에 대해 왜 열린 마음이 없는 것에 대해 좀 부정적인 생각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중매를 안보려고 하는 것은 두려움(원치 않는 만남 때문?), 자존심 상함(이 자존심을 언제까지 펼쳐보려고 하는 것인지?), 귀찮음(말이 되는가?)... 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 수록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가 쉽지 않음을 우리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대학을 졸업한 후부터는 연애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그 만큼 상대방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교회아니면 직장인데 그 두 군데에서도 만남을 가질 수 없으면 결국 연애하기가 쉽지 않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기에 나는 중매를 찬성한다.

 

나와 아내는 중매로 만났다. 장인, 장모님이 섬기시는 교회의 그 때 담임 목사님께서 중매를 서 주셨다. 그 목사님께서는 나의 아버님 목사님과 같은 노회에 계신 분이시다. 또한 장인 어른이신 장로님과 함께 교회에서 섬기셨던 분이였다. 그 목사님 중매로 양가 부모님의 허락(?) 아래 우리 둘은 자연스럽게 1996년 10월13일 주일 지금 내가 섬기고 있는 승리장로교회 옛 건물 예배당에서 11시 예배 후 점심 시간에 만났다. 말이 중매이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한 3일 기간 동안 내가 장인 어른 가정 식구 분들(아내를 포함해서)을 여기 저기 모시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아내와도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때 나는 '중매로 내가 아내를 만났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중매"라는 용어가 내 생각과 마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저 물흐르듯이 만난 것이다.

 

나는 나의 중매 결혼을 뒤돌아 볼 때에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중매 결혼(?) 시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자기 종에게 시켜서 자기가 거하는 가나안 땅 이방인 여인을 이삭의 아내로 택하지 않기로 결심하고(지금 말로 하면 불신자와 결혼 시키지 않겠다는 결심이였다고 생각함)(창24:3) 자기 고향 자기 족속에게로 가서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예수 믿는 크리스천과의 결혼을 말한다고 생각함)고 자기 종에게 명령하는 것을 창세기 24장4절에서 볼 수가 있다. 이 이야기가 상세하게 나와있는 창세기 24장 전체를 보면 결코 이삭은 연애를 해서 결혼했다고 볼 수가 없다. 현대 용어로 그는 중매 결혼을 한 것이다. 물론 시대가 지금 어느 때인데 구약의 말씀으로 중매가 좋다는 주장 논리를 피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저 성경의 원리를 찾고자 하는 것 뿐이다. 나는 결코 우리 모두가 중매 결혼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중매를 싫어할 필요가 없고 중매의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는 내 생각을 나누려고 하는 것 뿐이다. 나는 이삭의 중매 결혼 장면 중 제일 마음에 다가오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브라함의 종이 아브라함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가서 그의 족속 중 한 여인을 만나려고 우물가로 가서 기도하는데(창 24:12-14) 그 기도를 마치자 마자 리브가가 그 기도 응답대로 행하는 장면이 나온다(창24:15, 18-20). 그런데 21절을 보면 아브라함의 종이 "그(리브가)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이 구절에 나는 도전을 받았다. "묵묵히 주목하여" 하나님께써 짝지어 주시는 배우자인지 알고자 하는 모습...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결코 모든 사람들이 중매를 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연애해서 결혼해서 잘 사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그저 나는 왜 중매를 싫어하면서 연애만을 고집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기에 중매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좋지 않나 내 생각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매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를 만나는 장면에서 배우는 것처럼 중매를 통하여 만나는 형제 혹은 자매를 한번 "묵묵히 주목하여" 보대 그 형제, 자매의 미모를 묵묵히 주목해 보기보다 과연 하나님께서 저 형제 혹은 저 자매를 나에게 배우자로 보내주셨는지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묵묵히 주목"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나 자신 만만해서는 안된다. 내가 내 배우자를 찾아서 만나 결혼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버려야 한다. 배우자와의 만남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남을 인도해 주셔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셔야만 그 결혼은 견고히서며 아름다운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배우자와의 만남에 역사하실 공간을 우리가 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만이요 죄이다. 주님의 뜻이 내 뜻을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아무리 배우자를 찾고자 하더라도, 아니 만나서 연애까지 해서 결혼을 한다해도 그 만남(부부)을 통해서 주님의 온전하시고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은 이루어 지지 않을 것이다.

 

 

중매 결혼 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06년 6월 24일 성경적인 중매 결혼을 묵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