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감정

 

 

"이성감정"하면 대학교 때 한 자매를 짝사랑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대학 크리스천 동아리에 다니다가 한 모임 때 그 자매가 간증을 하는데 자기의 오빠가 병중에 있고 오래살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오빠'에 대한 사랑을 나눈적이 있었다.  나는 그 때 그 자매의 간증을 듣고 그 자매에게 '오빠'가 되어주고 싶다는 동정심(?)이 들었다.  그래서 그 후로부터 그 자매에게 다가가 잘 해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오죽했으면 그 자매가 금식을 3일 할 때 나도 덩달아 그렇게 오래 금식(굶식이다) 해보았다.  이렇게 점점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부터 주위에 소문(?)이 난 것 같다. '제임스랑 모 자매랑 사귀는가 보다.' 그 때 그 자매는 내 roommate랑 사귀게 되었다.  남자 친구, 여자 친구의 이성관계 말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자매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동생처럼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에게 스스로 수 없이 말했고 또한 질문하는 주위 형제, 자매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그 자매가 내 roommate가 헤어진 후 내가 그 자매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내 안에 억눌렸던(?) 이성 감정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 자매 주위에 그저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주는 형제들을 내가 경계(?)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교 도서관 같은데서 함께 그 자매와 공부를 하는데 한 형제가 다가와서 그 자매에게 말을 걸면서 대화를 좀 하면 나는 그 자매 앞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상당히 불쾌한 감정을 들어낸 것이다. 하루는 이것을 눈치챈(?) 그 자매가 나를 좀 보자고 하여 바깥으로 나아갔는데 그 자매가 나에게 하는 말 '너무 overprotective하는 것이 아니냐'였다.  난 충격받았다.  한답시고 그 자매를 동생으로 사랑하고 있었는데 그 것이 싫다는 식으로 내게 들렸기 때문이다.  그 때 공부 집어치우고 차타고 혼자 바닷가 간 기억이 지금도 난다.  그 후로는 그 자매하고 대화를 1년동안 하지 않고 피했다.  그런 후 대학 졸업후 나도 결혼했고 그 자매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 카드 보낸게 마지막이였다.

 

이 얘기를 나누는 것은 내가 스스로에게 말했고 주위 형제, 자매들에게 말했던 '하나님의 사랑으로 동생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은 결국 아니었다는 결론이다.  나는 그 자매를 동정심에 이끌려 '사랑'을 했지만(이것도 바람직하지 못했다는 생각임. 동정심에 이끌림을 받는 관계는 건강하지 못할 수있다는 생각임) 결국 과정 속에서 그 사랑이 '이성감정'으로 변했던 것이다.  그것을 어디서 알 수가 있는가하면 나는 그 자매에 대해 상당히 고민하면서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받쳤던 것처럼 나는 과연 이 자매를 주님께 받칠 수 있는가 수 없이 질문 던졌던 기억이 난다.  다시 말하면, 내 자신에 수 없이 던졌던 질문은 '과연 나는 이 자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 아니면 이 자매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가'였다.  그런데 결국 나는 하나님보다 그 자매를 더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매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하나님과 멀어졌고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이성감정에 이끌렸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이성감정이 잘 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아름다운 이성감정을 주셨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이 과거의 이야기는 그 이성감정 (feeling)이 하나님의 말씀(fact)에 이끌림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대학교 때 제자 훈련 받으면서 나를 가르쳤던 목사님께서 하루는 기관차 그림을 보여주시면서 맨 앞차를 "Fact"(사실), 그 다음 차는 "Faith"(믿음), 그리고 세 번째 차는 "Feeling"(감정)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 기억난다.  감정이란 사실과 믿음에 이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감정은 사실인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에 이끌림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 자매와 관계는 결국 하나님과 사람이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그 자매를 상처입혔고 주위 형제, 자매들에게 덕이 되지 못했다.

 

총각, 처녀 때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다가 보면 이성감정이 충분히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로(single) 형제, 자매들이 서로에게는 드는 이성감정 지금 보면 참으로 아름답고 나도 한 때 저럴 때가 있었는데 하면서 웃을 때가 솔직히 있다.  보기 좋다.  기도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기에 "나의 연애관"이라는 포더도 여기 싸이에 만들어 글을 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조바심에서 나누고 싶은 것은 나 처럼 실수하는 지체들이 있을 것 같아 여기에 "이성감정"이란 글을 적어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과연 내가 그 자매를 사랑함에 있어서 어떻게 했었으며 하나님과 사람들 보시기에 아름다왔을까 생각해 본다.  몇 가지를 적어 본다면 그 자매보다 하나님과 시간을 더 많이 보냈어야 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총각 때인지라 아무래도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보다 너무나(?) 잘 보이는(ㅎㅎ) 예쁜(?) 자매랑 함께 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물론 함께 예배도 드리고 금식기도라는 것도 했다고 하지만 그 마음 중심은 주님께 향하지 못하고 그 자매에게 향했던 것이다.  내가 내 마음에게 말했던 이런 저런 말들은 지금 돌아보면 거의 다 합리화였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시간이 부족한 가운데서 이성감정이 드는 형제나 자매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그 이성감정은 사실인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또한 그러한 이성감정은 하나님의 사랑에 지배를 받고 이끌림을 받기 힘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상대방에게 이성감정이 들 때 그 상대방하고 좀 떨어져서(거리를 두면서)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법이 참 좋다는 생각이다.  작정 새벽기도도 좋고 수요기도회나 금요기도회에 참석하여 계속 기도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 든다.  기도하면서 내 뜻을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가 된다면 자신의 이성감정도 하나님의 뜻에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매들은 이것을 잘하는 것 같은데 우리 형제들은 좀 잘 못하는 것 같다. ㅎㅎ  또 한가지 드는 생각은 이성감정이 들 때에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기 보다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많이 맞추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많이 준비시키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이성감정이 들면 푹 빠지는 스타일 지체들은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모든 것이 초점이 맞춰져 있어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준비시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자신을 준비시킴에 있어서 하나님이 나에게 향하신 뜻, 목표, 비전 등등을 점검해 보면서 나는 과연 지금 그 뜻과 목표 또한 나에게 주신 비전을 신실하게 이루어 나아가고 있는지 자주 점검하는게 좋다는 생각이다.  특히 형제들에게 있어 이 준비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 형제들이 이것을 게을리 하고 자매들 좇기에(?) 바쁘면 바로 서있는 자매라면 그러한 형제에게 영적 매력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형제가 자기 자신도 하나님 주신 비전이나 목표에 이끌림을 받고 있지 못하면서 어떻게 자매를 이끌러 함께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 또한 이성감정에 푹 빠져있으면 이런 생각은 들지도 않는게 보통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첫째로 하나님께 초첨을 맞추고 둘째로는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면서야 이성감정이 드는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 때에 여러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겠지만 그 중에 한가지는 '나는 과연 이 자매 혹은 형제를 사랑함에 있어서 그저 이성감정뿐인가 아니면 주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드는가운데서 드는 이성감정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확신이 없는 이성감정은 마치 다윗의 아들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인 다말을 "연애"하여 "그 누이로 다말을 인하여 심화로 병"까지 되어(삼하13:1-2) 결국 간교한 친구 요나답의 말을 듣고(3절) 다말과 억지로 동침한 후(14절) 이젠 다말을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이왕 연애하던 연애보다 더"했던 것(15절)과 같은 감정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성감정이 들어 사귀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방에 실증을 느끼면서 나도 모르게 싫어지는 것, 어쩌면 이러한 감정의 변동 혹은 변질은 확신이 없는 이성감정에 이끌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름다운 이성감정을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이끌림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더욱더 말씀 묵상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머물러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내 뜻을 하나님 앞에 내려 놓으므로) 내 자신을 자주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나의 동기와 의도 등등이 부적절하며 불결하다면 회개해야 할 것이다.  말씀의 이끌림을 받지 못하는 이성감정과 이성관계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 결과(consequence)를 내 자신이 경험하면서 부끄럽고 그저 하나님과 그 자매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주님 안에서 한 자매인데 나는 나의 잘못과 죄로 그 자매를 잃었다. 주님 안에서 친구로도 관계가 유지되지 못했다.  내 죄요 또한 내 죄의 결과의 쓴 맛을 내가 맛본 것이다.

 


여러 짝 사랑 중 내 이성감정을 제일 절제하지 못하므로 사랑하는 후배 자매에게 상처 입히고 용서를 구하지 못한,



제임스 목사 나눔
(2005년 6월29일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자매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지 못한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