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문제는 그들이 영적인 망원경을 거꾸로 집어 들었다는 사실이다.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크기보다 문제의 크기를 확대시켰다."     [토미 테니, "하나님의 관점"]

 

이성관계를 맺고 싶은데, 연애를 하고 싶은데 두려움이 앞설 때가 많은 것 같다.  '과연 저 형제/자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거절하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운 생각이 충분히 앞설 수 있는 것이다.  "거절"(rejection)의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나 또한 거절의 두려움을 대학교 때 여러번 경험한 적이 기억난다.  나는 대학교 때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세 단어를 자주 생각하면서 애용했었다.  그 세 단어는 "Denial" (부인), "Suppression"(억제), 그리고 "Rejection"(거절)이다.  아내 말을 빌려서 얘기하자면 나는 대학교 때 "자매 사역"(sister ministry)을 했다 (아내가 연애할 때 내 대학 엘범을 보고 후배 자매들의 독사진들을 다 본 후 한 말이 바로 '자매 사역'임).  자매 사역을 하면서 가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성 감정이 들 때에 주로 사용한 것은 "부인"(denial)과 또한 "억제"(suppression)였다.  이성의 감정이 들 때마다 내가 먼저 내 자신에 수없이 말했다: '나는 저 자매 이성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주위 형제나 자매들이 나에게 모 자매를 사랑하느냐 물어보면 '아니다'라고 나는 부인하였다.  결국 하두 부인하다보닌까 진짜 내 자신이 모 자매를 이성감정으로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생각은 ‘나는 저 자매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는거야’라고 스스로 나 자신에게 말하면서 자꾸만 그 자매와 함께 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나는 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이성감정을 부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억눌렀던 것이다.  한 후배 자매를 1년 동안 짝사랑하면서 이성감정을 억누르고(억제하고) 그 후배 자매를 그냥 오빠와 후배로 지냈는 가운데 나는 겉늙어서 대학교 5학년 때에는 1학년 자매 후배들에게 "할아버지" 소리를 들었었다.  이렇게 부인의 방법과 억제의 방법을 사용해도 안되었을 때에는 이성감정이 들었던 자매에게 사랑 고백을 두려움 속에서 해보았다.  물론 결국은 "거절(rejection)을 당하였다.  그리고 나는 거절 당한 후 그 후배 자매에게 거절해 줘서 고맙다고 전화까지 했다. ㅋㅋㅋ  거절할까봐 두려워서 사랑고백 못하다가 했을 때 자매가 거절해 주닌까(?) 감사했던 내 자신의 모습... 지금 생각해도 웃긴다.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나는 요한일서4장18절 말씀이 생각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나는 ‘만일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두려움이 없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해 보곤한다.  오히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에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두려움이 있기보다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나는 생각한다.  확신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 믿음은 토미 테니 목사님의 말씀을 빌려서 말하자면 "영적인 망원경"을 제대로 들고 하나님을 보므로 상대방 이성 감정이 드는 사람을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이 (예를 들어 상대방의 "거절") 작게 보이고 오히려 하나님의 크심(위대하심)을 확신하는 가운데서 믿음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 믿음이란 하나님을 향한 것이지 상대방의 반응이나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결과조차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인 것이다.  그러나 이 "영적인 망원경"을 거꾸로 집어 들어서 상대방을 바라보면 '문제'가 확대되므로 말미암아 두려움 속에서 또한 불확신 속에서 우왕좌왕하지 않나 생각한다.  담대함과 용기도 없을 것이고 있어도 인간의 혈기로 '대쉬'할 수가 있지 않나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성감정이 들 때에 우리의 영적인 망원경을 바로 집어 들어 위대하시고 크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할 것아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성령의 열매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에 채워지길 사모하며 간구해야 할 것이다.  오직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만이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음을 인정하며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할 때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만일 두려운 마음이 먼저 앞서있다면 잠시 상대방에게 거리를 두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연 내가 영적인 망원경을 제대로 집어 들고 상대방(과 상황)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영적인 망원경을 거꾸로 집어 들고 있어서 내 마음에 두려움이 있는지 내 자신에게 솔직할 필요가 있다.  그런 후 그 문제인 두려움을 직시하면서 하나님께 나의 연약함(두려움)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할 때 내 안에 두려움이 하나님의 온전하 사랑으로 내어 좇긴바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며 다가갈 수가 있을 것이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는 요한일서 4장18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과연 영적인 망원경을 제대로 집어 들고 보고 있는지 점검하는 가운데,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006년 5월 4일 담대한 하나님의 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