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님께 신뢰와 희망을 두었습니다.’ (1)

(“I put my trust and hope in Him.”)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새번역)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로마서 15장 13절).

 

 

 

저는 오늘 오전에 제 전화기에 있는 구글 달력을 열어서 1월달부터 11월 초까지 쭉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리했을 때 그 달력에 적혀 있는 5개가 두드러지게 제 마음과 눈에 들어왔습니다: (1) 1월 3일에 제 대학교 후배 사모님의 남편인 Eddie 목사님의 추모 예배, (2) 1월 6일에 제 대학교 룸메이트 친구인 Albert의 장례 예배, (3) 4월에 인도 선교와 인터넷 선교 한국으로, (4) 7월 15일에 사랑하는 사촌 여동생 수정이의 장례 예배, (5) 8월 17일에 사랑하는 아들 Dillon의 결혼 예배.  그리고 나서 저는 제 네이버 블로그에 나눈 “고난과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란 제목 아래 수정이의 장례 주보에 적혀 있었던 그녀의 간증문 중심으로 아버님이 수요 예배 때 설교하신 로마서 8장 18절 말씀과 연관해서 쓴 글을 다시 다 읽어보았습니다(7월 10일에 글을 써서 나눴는데 현재 3,044 누적 조회수).  그러던 중 저는 수정이의 귀한 믿음의 신앙 고백 5개 중에 4번째 신앙 고백인 ‘하지만 나는 계속 기도합니다.  나는 계속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나는 예수님께 신뢰와 희망을 두었습니다’(“… but I also keep praying.  I keep fixing my eyes on Jesus.  I put my trust and hope in Him”)을 읽고 또 읽으면서 “I put my trust and hope in Him”(나는 예수님께 신뢰와 희망을 두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마음에 특별히 다가와 그 신앙 고백을 오늘 설교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인터넷 “다국어 성경”에 들어가 영어 NIV 성경으로 “my trust hope”(나의 신뢰 소망)이라고 글을 타이핑(typing)했더니 로마서 15장 13절이 뜨길래 그 말씀을 개역개정과 현대인의 성경과 새번역 등으로 읽고 있으면서 적합한 본문 말씀이라 생각하여 오늘 본문으로 정했습니다: (개역개정)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새번역)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NIV) “May the God of hope fill you with all joy and peace as you trust in him, so that you may overflow with hope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저는 오늘 이 로마서 15장 13절 말씀 중심으로 한 3가지를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수정이처럼 우리가 신뢰하고 희망하는 예수님은 “소망의 하나님”(the God of hope)이십니다.

 

로마서 15장 13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  제가 “소망의 하나님”을 묵상할 때 생각난 찬송가는 바로 새 찬송가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입니다.  제가 이 찬송가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친 할아버님께서 막내 삼촌 부부 집에서 살고 계시면서 암 투병을 하고 계셨을 때 제가 찾아 뵈었었는데 저에게 이 찬송가를 좀 불러 달라고 하셨기 때문임.  1절과 5절 가사입니다: (1절)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 뿐일세; (5절) 나의 진정 사모하는 예수님 음성 조차도 반갑고 나의 생명과 나의 참 소망은 오직 주 예수 뿐일세.  저는 금년 한 해를 뒤돌아보았을 때 3번의 장례 예배뿐만 아니라 인터넷 사역 한국으로를 통해서 힘들고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랑하는 지체들과의 만남들을 생각할 때 새찬송가 486장 “이 세상의 근심된 일이 많고”가 생각났습니다.  그 찬송가 가사대로 이 세상엔 참으로 근심된 일과 곤고한 일과 죄악된 일과 참 죽을 일 쌓였음을 인정하며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더욱더 할아버님이 암 투병 중에 저에게 불러달라고 하신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찬송가를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그 가사 대로 “나의 기쁨” “나의 생명” “나의 참 소망은 오직 주 예수”님 뿐입니다 하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슬픔이 많은 이 세상에서 “나의 기쁨”되신 오직 주 예수님, 참으로 죽을 일이 쌓인 세상에서 “나의 생명”(영원한 생명)은 오직 주 예수님 뿐입니다 하고 고백합니다.  특히 저는 암투병과 생사의 갈림길에서 의학적으로 절망적인 소식을 또 다시 접한다 할지라도 “나의 참 소망은 오직 주 예수”님 뿐입니다 하고 믿음으로 고백하길 원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수정이처럼 계속 소망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기도하되 소망의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우리에게 충만하게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로마서 15장 13절 상반절과 중반절 말씀입니다: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 (새번역).  저는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라는 말씀을 묵상할 때 아버님께서 수요 예배 때 설교하신 로마서 말씀 중 로마서 14장 23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의심을 하면서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은 믿음으로 먹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모두 죄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말씀을 오늘 본문 로마서 15장 13절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하면서 제 자신에게 적용하고 반영해 볼 때 내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없는 이유는 소망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제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없는 이유는 소망의 하나님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즐겨 인용하는 고린도후서 5장 7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대로 제가 믿음으로 살고 있지 않고 보이는 것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제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수정이의 간증문을 읽으면서 제 믿음의 진보를 위한 교훈을 받습니다.  수정이의 두번째와 세번째 간증문입니다: (두번째) ‘그래도, 나는 내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과 그분의 선하심, 그분의 사랑, 그분의 용서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Still, I know that my relationship with God really started when I was diagnosed with cancer. And I’m learning more about Him and His goodness, His love and His forgiveness”).  히브리서 5장 8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몸소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서”(현대인의 성경).  (세번째) ‘나는 성경을 공부하고 읽기 시작하면서 그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겪으셨다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as I started studying and reading the Bible, His words came alive.  I started to understand what it truly meant that Jesus suffered on the cross to give us eternal life.  I learned what it means to have joy”).  빌립보서 1장 18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또한 저는 제 장인 어르신이 살아 생전에 파킨슨 병으로 고생하고 계셨으면서도 즐겨 찬양을 드리신 새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이 생각났습니다.  1절과 후렴 가사만 나눕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평안해 내영혼 내영혼 평안해.  그리고 제 친구 익순이가 잠들기 전에 중환자실 waiting room에서 익순이의 어머님과 대학교 형제들과 함께 하나님께 찬양했던 새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가 생각났습니다.  제 어머님도 제일 좋아하시는 찬송가입니다: (1절)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4절)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후렴)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