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닮지 못한 세상적인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주님의 사랑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야고보와 요한이라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 두 형제의 아버지는 세베대였고 그들의 어머니는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절하며 그녀가 원하는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에게 “저의 이 두 아들을 주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주님의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하고 부탁을 드렸습니다(마태복음 20:20-21, 현대인의 성경).  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에게 그리 부탁을 드렸을까요?  물론 그녀는 자기가 예수님께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기에 그리 부탁한 것이지만(22절, 현대인의 성경) 그녀의 궁극적인 의도는 자기의 두 아들이 크게 되고 으뜸이 되길 원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말을 듣고 (그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뺀) 화를 내는 열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게 되고 싶은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 싶은 사람은 남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26-27절,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는데(28절)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그녀의 두 아들이 섬김을 받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닮지 못한 세상적인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주님의 사랑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저는 조금 전까지 마태복음 20장 말씀 중심으로 묵상하면서 짧은 말씀 묵상 글을 적어서 여기 저기 나눴습니다.  그런 후 저는 묵상한 말씀들 중에 위에 짧은 말씀 묵상 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위에 묵상 글의 제목대로 “예수님을 닮지 못한 세상적인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주님의 사랑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라는 사실이 저에게는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다음에 제일 큰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저도 제 어머님의 사랑을 크고 깊게 많이 그리고 넓게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팔십이 넘으신 후로는 제 어머님께서는 제가 태어났을 때 제가 머리가 커서 산파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저를 낳으셨을 때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그리고 제가 자라날 때 자주 아프곤 해서 어머님께서 저를 등에 엎고 버스를 두 번인가 갈아타시고 멀리 병원에 가서 치료받게 하시느라 고생하신 것 등등 저에게 말씀을 해 주시곤 하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매년 5월에 어머니 주일(Mother’s Sunday)(여기 미국은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이 따로 있음)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새 찬송가 579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을 찬양드리면 좀 마음이 뭉클하곤 합니다.  1절과 2절 가사만 나눕니다: (1절) 어머니의 넓은 사랑 귀하고도 귀하다.  그 사랑이 언제든지 나를 감싸줍니다.  내가 울 때 어머니는 주께 기도드리고 내가 기뻐 웃을 때에 찬송부르십니다.  (2절) 아침저녁 읽으시던 어머니의 성경책 손때 남은 구절마다 모습 본듯합니다.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함을 얻으리.  외워주신 귀한 말씀 이제 힘이 됩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어머님의 모습은 제가 어머님의 집에 찾아 뵈었을 때 식탁에 앉으셔서 성경책을 필사하시다가 식탁에 고개를 숙이시고 잠드신 어머님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제가 또 마음에 기억하고 있는 것은 어머님이 앰뷸런스에 실려 가셔서 응급실에 누워계셨을 때 저랑 단 둘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제가 어머님에게 어머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성경구절인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좀 외워주시길 부탁드렸더니 어머님께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하고 말씀하신 모습입니다.  이 외에 수 없이 많은 추억들이 제 마음에 있지만 딱 한 가지만 더 나눈다면 제가 잊지 못하는 어머님의 모습은 제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곤 하셨던 모습입니다.  그 어머님의 눈물들을 제 마음의 병에 고요 있습니다[참고: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편 56:8) ].  동시에 제가 잊지 못하는 것은 제가 제 어머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제 어머님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제 어머님을 울게 만든 것을 제가 알고 있는 것은 1%로 밖에 안되겠지요.  나머지 99%는 제가 어머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울게 만든 것은 저는 지금도 모르고 있고 그저 추측만 할 뿐입니다.   그 추측 중 하나는 제가 사춘기 때 어머님의 과잉 사랑에서 뛰쳐나오고자 말과 행동으로 제 어머님의 마음을 참 많이 아프게 하여 어머님 혼자 제가 못 보는 데서 많이 그리고 크게 우셨을 것입니다.  그 때 저는 어머님이 제가 볼 때 너무 지나치게 저를 사랑하시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워 했었습니다.  자꾸만 저를 걱정하시고 염려하시며 잔소리하시는 것이 저는 싫었습니다.  한 마디로, 저는 어머님의 과잉 사랑, 과잉 보호에서 독립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몸부림친다는 것이 그만 어머님에게 직설적으로 싫은 소리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니 저의 그 싫은 소리들을 들으셨던 제 어머님의 입장에서는 저를 낳으실 때부터 매우 고생하셨고 또한 저를 한국에서 어릴 때 양육하시면서 하도 여기 저기 아파서 자식 셋 중에 저에게만 계란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 이민을 와서도 영어 알파벳도 몰라서 그 다음 날인가 초등학교에 가서 단어 20개를 외워서 시험을 봐야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제가 엉엉 울면서 다 외우는 저의 모습을 보시고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계시는 어머님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요?  그러나 제 입장에서는 저는 어머님의 한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부담이 되었을 정도로 저는 어머님의 과잉 사랑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제가 결정해서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머님이 저를 너무나 지나치게 신경쓰시고 걱정하시는 등 그러시는 것을 매우 원치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저는 어머님의 건강이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국민(초등)학교 때 어머님이 40대 초반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한의사이신지 교회 장로님에게 온 몸에 침을 맞으셨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도 평생 혈압 약을 드시는 어머님을 생각할 때 저는 어머님이 저보다 자신의 건강을 신경쓰시길 원했습니다(물론 지금도요). 

 

제가 이렇게 저와 제 어머님과의 관계를 진솔하게 나누는 이유는 비록 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제일 가까운 인간의 사랑이 어머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 어머님의 크고 귀한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러한 어머님의 사랑은 자식에게 득(benefit)이 되기보다 해(harm)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식에게 해가 되는 어머님의 사랑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피부적으로 느끼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기에 오늘 이렇게 “예수님을 닮지 못한 세상적인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주님의 사랑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란 제목 아래 짧은 말씀 묵상 글을 쓴 후 좀 심각한 제 마음의 생각들을 글로나마 적어 내려가면서 좀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1. 먼저 저의 짧은 말씀 묵상 글의 제목 그대로 저는 “예수님을 닮지 못한 세상적인 어머니”가 매우 큰 문제라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닮지 못한 세상적인 자식도 큰 문제이겠지만 제 생각엔 그러한 자식보다 그 자식의 예수님을 닮지 못한 세상적인 어머니가 더 큰 문제라 생각합니다. 
  2.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 어머니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자녀가 볼 때에도 ‘내 어머니는 예수님을 믿는 직분자이신데도 불구하고 내가 볼 때는 예수님을 진정 믿고 신뢰하는지 모르겠습니다’할 정도라면 그 어머니는 교회에서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 앞에서는 아무리 믿음이 훌륭해 보인다 할지라도 가정에서 날마다 그리고 순간순간마다 자녀로 인해 근심, 걱정, 염려를 한다면 충분히 그 자녀의 입장에서는 ‘내 어머니가 진정 주님을 믿고계신지 모르겠다’하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3. 특히 그러한 어머니가 자식을 너무나 지나치게 사랑하여 마치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처럼 ‘내 자녀가 크게 되고 으뜸이 되길 원한다’면, 그래서 세상적으로 성공의 사닥다리를 올라가서 제일 높은 위치(지위)에 있기를 그리도 간절히 원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와 마치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처럼 하나님 아버지께 ‘하나님, 제 자녀를 머리가 되게 하여주시고 결코 꼬리가 되게 하지 않게 해주세요’(참고: 신명기 28:13, 현대인의 성경)하고 간구한다면 제 생각엔 그녀의 자녀는 결코 어머니의 욕심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자녀는 자기 자신이 어머님을 결코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며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내 어머니를 만족시킬 수 없어’라는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에 충분히 시달릴 수 있을 것입니다.
  4. 이렇게 자기 자신의 가치를 낮게 보면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하찮게 생각하는 자녀는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어머니에게 묶여있어서 조절(manipulation)당할 위험이 참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녀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어머님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애쓸 것이고 그러면 그럴수록 만족을 못하는 어머니는 ‘너는 그보다 더 잘할 수 있어’하고 말하면서 그 자녀가 세상적으로 성공의 사닥다리를 더 높이 올라가길 원할 것입니다.  그러한 어머니의 과잉 사랑의 기대나 욕심은 자녀의 영혼과 정신과 감정을 죽일 정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5. 이러한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 자녀들을 엿볼 때에 저는 그 자녀와 그들의 어머니와 독에 물든 관계(toxic relationship)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그녀의 자녀들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 자녀들은 매우 위험한 독의 물들어 가고 있을 위험이 많습니다.  그 자녀들은 그들의 어머니의 세상적인 사랑으로 인해 독에 물들어서 죽어가고 있는데 그들의 어머니는 그녀 나름대로 최고로 사랑하는 자녀를 최선을 다해서 희생적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또한 그렇게 자녀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매우 슬픈 현실이라 생각합니다.
  6. 이러한 독에 물든 어머니와 자녀 관계에 해독제가 있을까요? 있다면 그 해독재는 무엇일까요?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해독재는 우선 세상적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어머니들은 자기 자녀를 좀 들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생명 걸고 자신을 위한답시고 최선을 다해서 희생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식 사랑’이란 자동차의 엔진이 너무 크고 세니까 오직 자식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자동차 시동을 걸어서 사랑의 경주를 지나치게 열심히 달리고 있다보니 브레이크를 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된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식을 최선을 다해 희생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고 말해도 어머니들 중에는 스스로 멈출 수 있는 기능이 망가진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그러한 어머님들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좀 들 사랑하도록 애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녀가 독에 물들다가 자포자기하며 죽고 싶을 정도가 되든지 아니면 독기를 품고 어머니를 미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7. 숨막혀 하는 자녀를 보면서도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어머니들은 우선은 육체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거리를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도적으로라도 그리해야 합니다.  비록 마음이 찢기는 것 같이 아플지라도 자식을 위해서라도 어머니들은 건강한 경계선을 그어야 합니다.  특히 남편과의 관계가 좋지 못해서 자식에게 올인(all-in)하는 어머니들은 하나님 앞에서 홀로서기하면서 자식을 믿음으로 떠나보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불신하면서 자녀를 생각할 때 불안해하는 어머니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것은 죄이기 때문입니다(참고: 로마서 14:23). 
  8. 자녀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자녀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알고 있는 어머니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의 은혜를 사모하는 가운데 오직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죄의 확신을 가지고 회개하는 가운데 자녀를 들 사랑하면서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랍고 위대한지를 점진적으로 더욱더 알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머니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녀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9.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녀를 사랑하는데 헌신하여 노력하는 어머니들은 자기의 힘을 빼고 성령님의 힘으로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령님의 가르치심과 주시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녀를 제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기에 믿음으로 자녀를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녀들의 인격을 존중하여 스스로 선택하여 결정을 내려서 자기 할 일을 알아서 할 나이의 자녀에게 부모를 떠나 독립하도록 지혜롭게 도와줍니다. 
  10. 지혜롭고 성령 충만한 어머니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가면서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그 예수님의 사랑으로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견고히 서 있기에 믿음으로 자녀를 위해 항상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님께 기도 응답을 받으므로 감사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자녀에게 간증을 합니다.  제 어머님은 그러한 어머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