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감정들
(Painful Feelings)
요즘 제가 밤에 잠자기 전에 “How We Love: Discover Your Love Style, Enhance your Marriage”(저자: Milan & Kay Yerkovich)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 당신의 사랑 스타일을 발견하고, 당신의 결혼 생활을 향상시키세요.’ 제가 이 책을 선물을 받은 후부터 틈틈이 밤마다 잠자기 전에 읽고 있는데 저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또한 제 자신에게 반영해 보게 만드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단락(paragraph)을 나누고 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Throughout this book we will see why the ability to appropriately express a full spectrum of emotions is so important. The fact is that, when Susie marries, she will have a huge advantage over those people who didn’t learn to feel and deal when they were growing up. Susie will know how to manage rather than avoid painful emotions. Children raised in homes like Susie’s learn through their experiences to have good listening skills and to draw out the opinions and feelings of others. As adults, they are open, vulnerable, and comfortable with disclosure. They have interpersonal skills and are able to negotiate mutually satisfying solutions to problems.”
(이 책 전반에 걸쳐 우리는 왜 모든 감정의 스펙트럼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그렇게 중요한지 알아볼 것입니다. 사실, 수지가 결혼하면, 그녀는 자라면서 느끼고 처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보다 엄청난 이점을 갖게 될 것입니다. 수지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피하는 것보다 관리하는 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수지와 같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경험을 통해 좋은 경청 능력을 갖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감정을 이끌어내는 법을 배웁니다. 어른이 된 그들은 개방적이고 취약하며 공개에 편안합니다. 그들은 대인 관계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문제에 대한 상호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협상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어젯밤에 이 단락을 읽으면서 좀 더 깊이 묵상하고 자아 반영하고 싶어서 제 전화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제 자신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낸 후 이렇게 오늘 새벽에 교회 목양실 책상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저 주시는 생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적어내려 갑니다:
- 저는 어릴 때 자라나면서 저의 개인적인 고통스러운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억누르면서(suppress)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제가 한국에서 살면서 무슨 고통스러운 감정이 있었을까 뒤돌아보면 크게 3가지 감정이 생각납니다: 하나는, 부모님이 크게 다투셨을 때(그 때 제 나이가 아마 국민학교 4학년인 것 같은데 저는 지금도 그 때 아버님과 어머님이 크게 싸우셨던 한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이 남) 제가 느낀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제가 국민학교 때 저보다 키와 덩치가 큰 학생(저는 그가 “왕눈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음)이 저를 때리고 괴롭혔을 때 제가 느낀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제 아버님이 다른 어른 남자에게 멱살을 잡히시면서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으셨던 아버님을 보면서 제가 느낀 감정임. 그 때 그 때 제가 느낀 이 3가지 감정들을 지금 와서 제가 생각하면서 말한다면 한 마디로 그 감정들은 고통스러운 감정들(painful feelings)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물론 지금은 그러한 감정들이 저에겐 없지만서두요).
- 그러다가 제 나이 12살 때 부모님을 따라 형제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영어 알파벳조차도 모르는 제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사춘기 때 와서 미국 문화에 적응을 못해서 괴로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제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미국에 와서 다시 국민(초등)학교 6학년에 들어갔는데(이미 한국에선 6학년을 졸업을 했지만) 미국 선생님이 영어를 잘하는 한국 학생을 저에게 소개시켜 주셔서 그 학생이 통역을 해 준 것으로 기억함) 그 다음 날에 영어 단어 20개를 외워서 시험을 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날 밤 저는 집에 와서(제 기억으로는 제 넷째 삼촌이 혼자 사시는 아파트에 저희 가정이 잠시 얹어 살았었음) 울면서 그 20개 단어를 다 외웠습니다(제 어머님도 그 때 제가 울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심). 그래서 그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저도 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그 미국 선생님이 저에게 ‘너는 어제 왔으니까 시험을 안 봐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기억이 제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저는 그 때 엉엉 울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때 저의 감정은 지금 이렇게 뒤돌아보면서 말한다면 한 마디로 ‘충격 받은 감정’(shocked emotions)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렇게 미국 생활을 시작한 저는 고등학교 2-3학년 (여기 미국에선 11-12학년) 때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면서 술 마시고 담배 피면서 파티에 가서 춤추면서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호기심 속에서 마약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주일에는 꼬박꼬박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느낀 감정은 ‘죄책감’(guilty feeling)이었습니다. 한국 장로교(합동측) 목사님의 아들로 자라나면서 국민학교 때 한국 상현교회에서 몇몇 성도님들에게 ‘작은 목사님’이라는 말을 듣고 자라났던 저가 미국에 와서 소이 말하는 나쁜 짓을 하면서 주일에만 예배를 드리면서 살아왔으니 당연히 제 양심은 저를 괴롭혔지요. 그런데 심하게 들던 죄책감도 지나고 나니까 점점 희미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두 명이 총에 맞아 죽어서 장례식에 갔었는데 그 때 저는 마음이 괴로워서 울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작은 철학자’가 되어서 두 가지 질문을 수없이 제 자신에게 던졌습니다: (1)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2) ‘삶의 기쁨이 어디에 있는가?’ 그 때 제가 접한 책들은 바로 철학자 김형석이란 분과 김동길 교수님의 책들이었습니다. 그 때 저의 감정은 ‘혼동된 감정’(confused emotion)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러한 가운데 제가 가정에서 제 아버님을 보면서는 그리고 아버님과 대화를 나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원했지만 그것이 전혀 만족되지 못하였으므로 저에겐 아버님을 향한 쓰라림(bitterness)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의 감정은 ‘상한 감정’(damaged emotion)이었습니다. 데이빗 씨맨즈(David A. Seamands)라는 전직 인도 선교사님은 그의 책 “상한 감정의 치유”에서 “상처 입은 감정”이란 “가장 공통된 감정 중의 하나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저는 씨맨즈의 말 대로 “계속적인 근심을 안고 있고, 자신을 부적합하게 여기며, 열등감을 가지고 ‘나는 좋지 못해’라고 자신에게 늘 말하는 사람”이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가 말한대로 “완전주의자 콤플렉스(perfectionist complex)”를 가지고 있어서 “항상 찾아다니고 항상 애쓰지만 항상 죄의식을 느끼며 꼭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식 속에 빠져 있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저는 “지나친 예민감(super sensitivity)”이라고 부르는 또 하나의 손상된 감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니 저는 씨맨즈가 말한대로 “항상 깊은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의 감정은 ‘상처 입은 감정’(wounded emotions)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부모님이 서로 다투셨을 때 제 어머님이 제 아버님에게 과거의 일들을 자꾸만 끄집어 내셔서 말하시는 것을 매우 싫어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아버님을 향하여 분노와 미움을 느꼈습니다(anger and feelings of hate).
- 그러다가 제가 대학교 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또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목사가 되겠다고 전공을 “심리학”으로 바꾼 후 제가 겪었던 감정들을 잘 묘사해주는 3개의 단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1) Rejection (거절), (2) Repression (억누름), (3) Suppression (억제). 여기서 “Repression”(억누름)과 “Suppression”(억제)의 주요 차이점은 “Repression”은 일반적으로 무의식적인 과정으로 간주되는 반면 “Suppression”은 의식적인 과정이라는 것입니다[“The main difference between repression and suppression is that repression is generally considered to be an unconscious process, while suppression is a conscious process” (인터넷)]. 저는 대학교 때 두 명의 여자(주님 안에서 자매)를 짝 사랑하다가 ‘거절’(rejection)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여자(자매)를 약 1년 동안 혼자서 짝사랑하다고 혼자 끝냈습니다. ㅎㅎ 그 말은 다른 두 여자들에 게처럼 저는 이성감정이 든다고 고백조차 못하고 그냥 혼자서 그 여자를 이성감정으로 좋아하다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혼자서 끝냈습니다. ㅎ 그 때 제 감정은 ‘억제’(suppression)이었습니다. 제가 의식적으로 제 감정을 억제하였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저는 제 감정들에 대해서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반응하게 된 것처럼 제 감정들을 저도 모르게 억누르면서(repression) 대학생활을 했었습니다. 특히 저는 대학교 1-2학년 동안 매우 외롭게 지냈습니다. 오죽했으면 아직도 제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제 모습은 캠퍼스 중가운데에 공원이 있었는데 그 공원에 한 큰 나무 밑에 벤치(bench)에 홀로 앉아 종종 복음성가 “누군가 널 위하여”를 부르면서 많이 울었었습니다. 저는 그 때 사람이 너무 그리웠었습니다. 그 때 저의 감정들은 ‘외로운 감정’(lonely feeling)과 ‘슬픈 감정’(sad feeling)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기독교 동아리에서 임원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리웠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서 기뻤지만 제가 그들에게 상처를 입힌 것 같아서 기숙사(학교 안에 있는 아파트)에 와서 하나님께 용서해달라고 회개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 때 저의 감정은 ‘죄책감’(guilty feeling)이었습니다.
-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신학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공부가 저에겐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선배 목사님들이 저를 한인 클럽에 회장으로 뽑았습니다. 저는 원치 않았지만 하는 수 없이 회장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못해 회장이니까 본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되어 새벽기도회도 참여했었습니다. 그 때 저의 감정은 ‘죄책감’(guilt feeling)이었습니다.
- 저는 신학대학교를 졸업한 후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첫째 아기 “주영”(뜻: 주님의 영광)을 선물로 주셨는데 그 아기 병을 가지고 태어나서 결국 55일만에 제 품에서 죽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1년이 넘도록 죄책감(guilt feeling)에 심하게 시달렸습니다. 그 이유는 제 죄 때문에 주영이가 죽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 저는 이러한 감정들을 가지고 제 아내를 만나 결혼해서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해오고 있습니다. 내년 4월이면 저희 부부가 결혼한지 28년이 됩니다. 그런데 제가 저희 결혼 생활을 뒤돌아보면 결혼해서 약 20년 동안은 서로 갈등이 많았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 아내가 실제로 자기 입으로 여러 번 말했듯이 ‘We are very (so) different’, 즉 우리는 너무나 서로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지 않은 부부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다 다르지요. 그런데 제 생각에 저희 부부는 서로의 다른 점들을 서로가 받아들이지 못해서 부부 갈등이 있었고 또한 서로의 다른 점들을 가진 서로를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부 갈등이 계속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여기서 제가 좀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은 지금 제가 읽고 있는 “How We Love: Discover Your Love Style, Enhance your Marriage”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 당신의 사랑 스타일을 발견하고, 당신의 결혼 생활을 향상시키세요.’)란 책에서 저자가 말했듯이 저는(제 아내도 제가 보기엔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함) 제 “고통스러운 감정을 피하는 것보다 관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저는 자라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제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억제하고 억누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 방법이 저에게 제일 익숙했었습니다.
- 특히 저는 아내를 향한 제 분노를 억눌러서 억제하였었는데, 그래서 저는 제가 보기에 아내에게 참고 있었지 화를 내지 않았다고 생각하였었는데(물론 너무나 화가 나서 분노를 표출한 적들도 여러 번 있었지요) 제 아내가 저에게 ‘당신은 속으로 화를 내고 있어요’하고 말했기에 저는 저에게 “내면의 분노”(inner anger)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사랑하는 아내에게 감사하지요). 그리고 제가 또 아내에게 배운 것은 제 자신이 “passive-aggressive”(수동적 공격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부가 싸운 후에도 뒤 끝[정의: “좋지 않은 감정이 있은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네이버 사전)]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심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부부 갈등 문제를 대부분 회피했었습니다. 저는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너무나 난감해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자신의 감정들을 억제하고 억누르면서 살아왔었기에 그 감정들을 부부 생활에서도 느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계속해서 해오던 대로 억제하고 억누르면서 부부 생활을 해왔었습니다. 한 마디로, 저는 저의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관리하는 법을 제대로 그리고 올바르게 배워본 적이 없었기에 계속해서 피했습니다. 그러나 보니 저는 제 아내가 부부 싸움을 할 때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나서 뒤 끝이 없는 게 희한해 보였습니다. 하하 [제가 남편으로 보는 아내의 ‘고통스러운 감정들’(painful feelings)이 있지만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비록 그녀의 고통스러운 감정들도 나누면(제가 나누기 보다 아내가 나누는 것이 더 적합하지요) 좀 더 저희 부부가 결혼해서 살기 전까지의 자라나면서 느낀 그 감정들로 인해 저희 부부의 갈등들에 대해 좀 더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겠지만서두요]. 그렇지만 저는 그 때 제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있었던 거지요(wounded emotions). 그래서 한 번은 제가 아내에게 ‘당신이 나에게 한 말로 인해 내 마음이 칼로 찔린 것 같았다’고 솔직하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ㅎ 그 말을 들은 제 아내는 저에게 뭐라고 답변했는지 아십니까? ‘Thank you for telling me’(나에게 말해줘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그 때 저는 그 말을 듣고 마음 속에서 이렇게 생각하였었답니다: (1) ‘어떻게 저렇게 말해줘서 감사합니다 하고 답변할 수 있 있지?’ (그 말은 저는 아내가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알았음), (2) ‘내가 왜 여태까지 (아내의 말로) 내 마음에 상처 입었을 때 오늘처럼 아내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하고 매우(?) 후회하였었답니다. ㅎㅎㅎ
- 글이 많이 길어져서 저의 개인적인 고통스러운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나누고 그러면 주님께서 저의 이 모든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어떻게 끄집어 내셔서 위로해주시고 어루만져 주셔서 치유해 주셨는지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저희 부부 관계를 어떻게 성장케 하셨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 먼저 주님께서는 가정의 가장인 남편인 저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물론 지금도 주님은 저를 변화시켜 주시고 계시고 앞으로 제가 죽을 때까지 저를 변화시켜 주실 줄 저는 믿습니다)(Transformation). 주님께서는 제가 마음 속 깊이 꼭꼭 억눌러서 놓았던 저의 고통스러운 감정들(painful feelings)을 조금씩 조금씩 끄집어 내셨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제 상처 입는 감정(wounded emotions)을 사랑하는 제 아내에게 솔직하게 나누게 하셨습니다. 그 말은 주님께서 제 아내로 하여금 저의 상처 입은 감정을 말할 때 그녀로 하여금 제 말을 경청케 하셨고 또한 아내로 하여금 제 감정을 알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 주님의 역사(일)이 저로 하여금 조금씩 조금씩 제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제 아내에게 나눌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주님의 변화의 역사(일)은 주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더욱더 믿고 의지케 하시므로 말미암아 저의 제일 고통스러운 감정들 중에 하나인 ‘죄책감’(guilt feeling)에서 점진적으로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아내의 분노와 말로 인해 (쉽게?) 상처 입던 제 마음과 감정을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점진적으로 강하고 견고하며 담대케 하셨습니다(참고: 베드로전서 5:10). 더 나아가서, 제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는 사랑의 열매를 더욱더 맺게하시사 저로 하여금 제 아내의 분노와 말보다 그녀의 마음을 점진적으로 더욱더 잘 엿보게 하시사 그녀를 주님의 사랑으로 더욱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특히 성령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제 아내의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점진적으로 더욱더 잘 엿보게 하시사 아내를 향하여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결국 주님께서는 저희 부부의 갈등들을 통해서 각자의 마음을 빚으시사 넓혀 주시므로 말미암아 서로의 다른 점들을 인정하고 포용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본의 아니게 (원치 않게) 서로에게 입힌 상처들조차도 주님의 마음으로 점진적으로 품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깨달음은 부부 갈등을 통해 서로의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알게 하셨고 그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우리 각자 자라난 배경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하게 만들었습니다.
- 예를 들어, 저희 부부가 약 23년 전에 한국에서 살았을 때 하루는 저와 아내가 교회 유치원에 다니는 사랑하는 아들 딜런 때문에(덕분에?) 다툰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툰 이유는 저는 딜런이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양보를 하길 원했고, 제 아내는 딜런이 양보하기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길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깨달음은 저는 자라나면서 제 부모님에게 양보하는 것을 보고 배웠기에 제 아들도 양보하는 사람이 되길 원했던 것이고, 제 아내는 맏딸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지 못하고 그녀의 부모님에게 양보해서 그분들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았기에 사랑하는 딜런만큼은 자기처럼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이 부분에서 저는 제 아내가 가지고 있었던 깊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늦게 나마 조금 알게 되었음). 결국 그 때 저희 부부의 갈등은 저희 부부로 하여금 서로에 대해서 좀 더 알아가고 이해하는 계기 또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제가 지금 이 글을 장시간 동안 쓰면서 틈틈이 제 전화기를 보았는데 제 조카 예진이가(제 형의 맏딸)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오늘 새벽 5시즘에 ultramarathon 100 miles (163 km)을 시작한 동영상을 올린 것을 제가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 아내는 예진이와 예진이의 친구 및 아내의 마라톤 친구 두 명과 함께 집에서 멀리 운전하고 가서 약 2년 만에 두 번째 ultramarathon 100 miles을 뛰고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아내가 매우 좋아하는 마라톤을 전적으로 지지(support)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 저는 제 아내가 모든 고통스러운 감정들이나 스트레스나 아내에게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들로부터 주님께서 마라톤을 통해서도 자유롭게 해주시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약 28년 결혼 생활에 이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고 사랑하는 제 아내를 기억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and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make you free”). 주님께서 저희 부부를 계속해서 그리고 더욱더 주님 중심된 부부(the Lord-centered couple)로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