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야곱의 후손들아, 나 여호와는 변하는 자가 아니므로 너희가 완전히 망하지는 않는다”](말라기 3장 6절).

 

 

 

어제 월요일 아침에 오늘 본문 말라기 3장 6절 말씀을 읽고 묵상했습니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야곱의 후손들아, 나 여호와는 변하는 자가 아니므로 너희가 완전히 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저는 야고보서 1장 17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현대인의 성경) “완전하고 좋은 모든 선물은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옵니다.  하나님은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변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이러한 짧은 말씀 묵상의 글을 써서 나눴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변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참고: 말라기 3:6; 야고보서 1:17,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저는 이 짧은 말씀 묵상의 글을 써서 나눈 후 요나 3장 10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분명히 말라기 3장 6절과 야고보서 1장 17절은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고 변하는 일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어떻게 요나 3장 10절에서는 니느웨 백성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셨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신 이유는 니느웨 백성들이 요나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든 의문은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변함이 없으시다 또는 변하는 일이 없으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왜 하나님의 뜻은 변했는가 입니다.  하나님이 변함이 없으신 분이라면 하나님의 뜻도 변함이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장을 보면 “하나님과 삼위일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그 목록 중 6번째가 바로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고”(약1:17; 말3:6)”입니다.  여기에 대한 해설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변하지 않으며, 공의로운 자신의 의지에 의한 계획에 따라서 모든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고, 오래 참으시며, 선과 진리가 풍성하시고, 불의와 범죄와 죄를 용서하시며,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에 가장 공의로우시며, 지극히 두려운 분이시고, 모든 죄를 미워하시며, 죄를 범한 자를 결단코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인터넷).  저는 이 해설을 묵상할 때 왜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는지에 대한 저의 의문과 연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할 때 저는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사랑의 하나님과 (2) 공의로우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죄를 용서하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모든 죄를 미워하시기에 죄를 범한 자를 결단코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지 않으시기에 심판하십니다.  예를 들어,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니느웨 백성들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음으로(욘1:2) 그들을 심판하셨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3:10).  그런데 사랑의 하나님은 니느웨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요나 선지자를 보내사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선포케 하셨습니다(4절).  이것을 가리켜 어느 웹사이트에서는 “하나님은 앗수르인들의 반응에 조건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인터넷).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요나 선지자를 통해 앗수르인들인 니느웨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하신 후 그들이 회개하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니느웨 백성들이 요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10절).  그 이유를 디모데전서 2장 4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백성들에게 요나 선지자를 통해 “조건적인 선포”를 하심으로 결국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그들이 회개하므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웹사이트를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조건적인 선포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결정을 구별해야만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인터넷).  여기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포의 한 실례는 다윗에게 한 주님의 약속입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  “이 선포에는 명시되거나 함축된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다윗이 어떤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주님의 말씀은 성취될 것입니다”(인터넷).  이것을 예정론에 적용한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창세 전에 선택하신 예정된 하나님의 백성(자녀)들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주님의 구원의 약속(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사 구원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공의를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사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완전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게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죽음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완전히 나타내셨지만 동시에 우리의 죄에 대하여 심판하신 완전하고 조건적인 하나님의 공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가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1절과 후렴 가사입니다: (1절)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거룩한 보혈의 공로를 우리 다 찬양을 합시다 주님을 만나볼 때까지,” (후렴) “예수는 우리를 깨끗 게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