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하나님께서 아내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현대인의 성경)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은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골로새서 3장 18절).

 

에베소서 5장 22절을 보면 성경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아내들은 주님께 순종하듯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라고 번역했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그의 책 “영적 생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주께 하듯 하라는 그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아내들아, 너희 남편들에게 복종하라, 왜냐하면 그것이 주께 대한 너희 의무의 일부이기 때문이요, 그렇게 하는 것이 주께 대한 너희 복종의 표현이기 때문이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우리 여자 성도님들이 남편들에게 복종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께 대한 여러분의 의무를 감당하지 않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은 여러분이 주님께 복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사람들이 보기에 여자 성도님들이 믿음이 크게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믿음이 큰 여자는 아닙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고 있는 여자는 보이지 않는 주님께 복종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어느 여자 성도님들은 ‘내 남편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데도 주님께 하듯 그에게도 복종을 해야 합니까?’ 라고 질문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1-5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아내된 여러분은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남편이라도 말없이 실천하는 여러분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남편들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깨끗한 생활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미지 말고 순하고 정숙한 마음 가짐으로 속 사람을 아름답게 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귀한 일입니다.  옛날 하나님에게 희망을 두었던 거룩한 여자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함으로 자기를 꾸몄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러한 짧은 말씀 묵상의 글을 적었습니다: “아내된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귀한 일인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미지 말고 순하고 정숙한 마음 가짐으로 속 사람을 아름답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된 여러분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함으로 자기를 꾸며야 합니다.  아내된 여러분이 남편에게 순종할 때에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남편이라도 말없이 실천하는 여러분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들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깨끗한 생활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참으로 믿음이 큰 여자 성도님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이 큰 여자 성도님은 교회 안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그 만큼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는 여자 성도님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 같은 여자 성도님을 믿음이 큰 여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여자 성도님들은 한나처럼 자녀가 없어서 자식을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릴 때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고 자녀를 주시면 그 자녀를 평생토록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약 기도를 드리는 여자 성도님들도 있을 것입니다(참고: 삼상1:11, 현대인의 성경).  그 정도로 하나님을 간절히 헌신적으로 찾는 기도하는 여자 성도님들을 볼 때 우리는 그러한 여인들은 믿음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1-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실제로 “믿음이 큰 자”(a woman with great faith)이라고 말씀하신 여인이 나옵니다(28절).  이 여인은 마가복음 7장 25-26절을 보면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헬라인”이란 말은 그녀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여자로서 “수로보니게 족속”, 즉 수리아에 속하는 베니게 사람으로서 이 민족은 일찍이 유대인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북향하고 쫓겨 갔던 가나안 민족의 자손입니다(박윤선).  그래서 마태는 그 여인을 한 마디로 “가나안 여자”라고 소개한 것입니다(마15:22).  그런데 이 가나안 여자에게는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자마자 예수님을 찾아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22절).  그러면 저의 질문은 왜 예수님께서 이 여자에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28절)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입니다. 적어도 2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믿음이 큰 여자는 예수님이 주님과 그리스도되심을 믿는 자입니다.

 

주후 1세기에 살았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예수님과 그 가나안 여인이 만났던 두로 지방은 수로보니게 땅으로 갈릴리 북편에 붙은 지역으로서 거기에는 이방인들이 거주하였는데 유대인을 원수시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방인인 이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자마자 곧장 예수님께 와서 그의 발 아래에 엎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그 여인은 예수님을 다른 이방인들처럼 그저 한 유대인 사람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그녀는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마15:22).  그녀는 이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2)  믿음이 큰 여자는 간절히 주님께 간구하는 자입니다(22절).

 

그녀는 흉악하게 귀신들려 고통을 당하는 자신의 딸을 위하여 주님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23절).  특히 그녀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간절히 부르짖음에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셨는데도(23절) 불구하고 예수님을 뒤따라 가면서 계속해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녀가 그리도 간절히 계속해서 예수님께 구했던 것은 예수님께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막7:26).  결국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큰 이 가나안 여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사 그녀에게도 천국의 축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귀신 들린 딸이 치유를 받아 온전케 되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큰 여자 성도님들은 분명히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마음에 모시고 살아갈 때 저의 질문은 ‘그녀는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마음에 모시고 살고 있는가?’ 입니다.  제가 이 질문을 던지게 된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보기에 믿음이 큰 여자 성도님들 중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면서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며 살려고 헌신적으로 무척이나 애쓰곤 있지만 가정 안에서는 그렇게 살고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믿음이 큰 여자 성도님들이 가정 안에서는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며 살려고 헌신적으로 무척이나 애쓰지 못하면서 살고 있다는 말은 그녀들은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 1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데로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비난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딛2:5, 현대인의 성경).  분명히 성경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18절, 현대인의 성경)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가 보기에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 믿음이 큰 여자들이 가정 안에서는 그 말씀대로 살고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과연 믿음이 큰 여자는 가정 안에서는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인 남편에게는 복종하지 않고 있으면서 주님께만 복종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을까?’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 말씀대로 남편에게는 복종하지 않고 있으면서 주님께만 복종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생각입니까?

 

믿음의 여인들인 여자 성도님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들이 남편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골3:18; 엡5:22; 벧전3:1, 5).  왜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까?  성경은 3가지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장 23절 말씀입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현대인의 성경)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  이 성경 말씀을 보면 가정에서 남편의 위치 혹은 지위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위치 혹은 지위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 성경 말씀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남편의 위치(지위)를 명백하게 하므로 가정에 질서가 있어야 할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위치 혹은 지위를 알고 “나의 머리”됨을 인정하므로 남편이 가정의 지도자란 사실을 알고 인정할 때에 이것이야말로 아내가 남편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일입니다.  이것이 아내의 중요한 책임 중 하나입니다.  이동원 목사님 책 “새 가정 행전”을 보면 한 설문조사가 나옵니다.  그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자들이 아내로부터 가장 필요로 하는 것 다섯 가지 중 그 첫 번째가 자아 존중감입니다.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의 위치인 가정의 가장이요 지도자임을 인정하므로 그 남편에게 복종합니다. 그러므로 남편의 필요인 자아 존중감을 세워줍니다.

 

  •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함이 주님 안에서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장 18절 말씀입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현대인의 성경)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은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4:33). 그러므로 주님이 세우시는 가정에는 무실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화평이 있습니다.  즉, 화평이 있는 가정에는 질서가 있음.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가정에서 각자가 자기의 성경적인 책임을 신실하고 겸손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바로 가정에서 아내의 책임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보시기에 마땅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내의 의무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가정 제도에 아내가 주님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주님 보시기에 적합하고(it is fitting) 마땅한(당연한) 것입니다.  

 

  • 믿지 않는 남편에게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절 말씀입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현대인의 성경) “아내된 여러분은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남편이라도 말없이 실천하는 여러분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남편을 둔 많은 믿는 아내들이 교회 생활은 열심히 하면서 가정 생활은 등한히 하고 있습니다. 그녀들은 교회 안에서는 본이 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가정 안에서는 본이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균형을 잃은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혜로은 아내는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특히 가정 안에서도 본이 됩니다. 그녀는 주님께 하듯 불신자 남편에게 복종하므로 가정 안에서도 본이 됩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불신 남편이 그 아내의 신덕을 보고서 복음의 진실성을 깨닫게 되어 회심할 수 있다. 그것은 실행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함이다. 우리의 복음 증거가 우리의 선한 생활과 병행하지 않으면 무력하다”(박윤선).  지혜로운 아내는 복음 증거를 말로만 하지 않습니다. 결코 그녀는 불신자 남편에게 ‘교회 나가자’고 말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주님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므로 복음의 진실성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녀를 사용하여 그녀의 불신자 남편도 구원해 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지혜로운 아내는 그녀의 남편에게 복종합니까?  성경은 2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 지혜로운 아내는 그녀의 남편에게 복종하되 주님께 하듯 합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 하반절과 24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주께 하듯하라”(22절하),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24절상).  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되 주님께 하듯 해야 합니까?  그 이유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기 때문입니다(23절).  우리가 “남편”이란 단어를 보면 히브리어로는 “바알” 또는 “주인”이란 뜻이요 헬라어로는 “주”(lord) 또는 “위에 남자”(man above)란 뜻입니다.  즉, 남편은 가정에서 잘 돌보며 또한 부드러운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벧전3:1)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와 같이”란 말은 베드로전서 2장18절에 나와있는 “종이 상전에게 순종함같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사라도 그녀의 남편인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입니다(벧전 3:6, 창18:12).  지혜로운 아내는 그녀의 남편을 주님께서 가정의 가장으로 세우신 것을 알고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남편에게 복종합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되 그녀는 그의 말을 청취하고 잘 들어줍니다.  본래 “복종”(submission)이란 단어는 두 가지 단어의 결합입니다. “~아래서”(under) 라는 뜻의 전치사와 “잘 듣는다”(to listen to well)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한다는 의미는 무엇보다 남편 얘기를 잘 들어준다는 의미요, 남편에 대해 그 권위를 인정한다는 표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동원).

 

  • 지혜로운 아내는 그녀의 남편에게 복종하되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복종합니다.

 

에베소서 5장 21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  즉, 그리스도께서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빌2:3) “자기를 비”우시고(빌2:7) 또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빌2:8)처럼 지혜로운 아내는 예수님을 본받아 주님을 경외하므로 그녀의 남편에게 복종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까?  모든 일에 복종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24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좋은 아내와 나쁜 아내와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좋은 아내는 좋은 남편을 만족시키고 나쁜 아내는 남편을 침묵시킵니다. 결코 완전한 아내는 완전한 남편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현명한 아내는 순종함으로 남편을 지배합니다(인터넷).  남편을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께 하듯 복종하는 지혜로운 아내가 되길 기원합니다.

 

세기의 부흥사 빌리 그레함 목사님에겐 기도로 훌륭하게 내조한 아내 루스 그래함이 있었습니다. 전에 기독교 기자로부터 받은 질문입니다: "루스 사모님!  당신은 사도 바울 다음으로 가장 위대한 부흥사로 여기는 목사님의 아내로 수십 년을 살아왔는데 그 오랜 세월 살아오시면서 혹시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셨나요?”  루스 그레함 사모님은, "아니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의 매일 생각해 본 것은 있었지요!"  호기심에 가득한 기자는, "그게 뭔가요?"  루스 그레함 사모님은 웃으시면서, "Murder...살인요!"  여러분 아내들도 혹시 남편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울 때가 있지 않았었나요?  요한일서 3장 15절 상반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