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아8:14)
아가서를 마치면서 여인은 시종일관 왕이신 그리스도를 '나의 사랑하는 자'(아2:3)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정체성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일 것입니다.
재물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영광을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거듭난 이후의 삶은 주님을 사랑함에서 시작해서 주님을 사랑함으로 마칠 것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무리할 때 나의 사랑하는 분과 동행했던 삶을 떠올리며 기뻐하고, 나의 사랑하는 주님과 영화로운 모습으로 다시 함께할 천국을 기뻐했으면 합니다.
결혼 전부터 제가 시종일관 믿고 있는 한 가지는, 사랑의 유효기간을 말하는 세상의 속설과는 달리, 하나님 안에서의 사랑은 더욱 깊어져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며 그 사랑은 더욱 깊어져 갑니다. 다만 지금은 내 생각이 짧고 가끔은 내 생각이 아내의 생각과 달라서 아내에게 불평하기도 하고 말을 잠시 멈출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 더욱 깊어지고 내가 아내를 더욱 알아가게 되어서 아내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고 내 생각이 아내의 생각이 되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지금은 내 생각이 짧고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는 달라서 하나님께 불평도 하고 기도와 묵상을 멈추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심을 더욱 알아가고 내가 하나님을 더욱 닮아가서 나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같아지면 어떨까를 생각하며 그런 천국은 어떤 곳일까를 생각합니다. 그것이 나의 소망이 되어갔으면 합니다.
더욱이 지금은, 사랑하는 아내와 하루종일 모든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고 낮에는 직장에 나가 일을 해야 합니다. 일이란 것이 상당히 고달프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직장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일뿐만 아니라 아내를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모든 직장인들이 저와 같이 가정을 생각하여 직장을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내가 고달픈 직장마저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일이 아내를 기쁘게 하기 때문이며, 퇴근하면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가 있고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퇴근 시간이 되면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속히 달려갑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화와 기쁨을 위하여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이 땅 가운데 보내어졌습니다. 저는 그래서 고달픈 이 땅마저 하나님을 위하여 기뻐하며 소중히 여기고 속히 임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 곧 나의 본향을 기다립니다.
주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베데르산(2:17)도 주님과 함께라면 오늘 본문과 같이 '향기로운 산들'이 됩니다.
아가서 묵상을 시작했던 이유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기뻐하기 쉽지 않은 상황 가운데서 기쁨을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게 얼마나 기쁨이 회복되었는가는 모르겠지만 기쁨의 원천이 나의 상황에 있지 않고 주님과의 사귐에 있다는 사실만은 잘 알 것 같습니다.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시149:1)
오늘도 주일 가운데 하나님과의 사귐으로 인하여 많은 기쁨이 있었습니다. 다만 더욱 바라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인하여 매일이 주일같고 매일이 천국 같아지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주님과 함께 지체하지 않고 나에게로 달려올 것입니다.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이 달려오는 이 기쁨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고 천국을 소망하는 가운데서 풍성히 누려내기를 바랍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