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아7:10)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1:13)
그리스도께서 성도에게 속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도는 그리스도께 속하였고 그리스도는 성도에게 속하여 연합되었는데(요14:20), 이 연합에는 사랑의 사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열매를 풍성히 맺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니, 하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요,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와의 교제이다."
19C 영국의 설교자 '존 라일'의 말이며, 제가 아가서를 묵상하기로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설교이기도 하고, 아가서를 묵상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선 아가서 본문에서 혼인행렬과 첫날밤 장면을 통하여 성도와 그리스도간의 '연합'을 보여주었다면,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11절)로 이어지는 뒤의 본문에서는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잘 보여주는 듯 합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오늘의 본문 말씀처럼, 우리의 연합에는 사랑의 사귐이 있으니 그것이 성도의 능력이 되며 기쁨이 됩니다.
워낙 좋아하는 설교인데다, 아가서 묵상의 계기가 되었던 설교라, 존 라일의 설교 요약을 덧붙입니다.
'주 예수와의 연합이 없이는 그와의 교제 또한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주 예수와의 연합은 있으되 그후에 그와의 교제가 거의 혹은 전혀 없을 수도 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자신의 죄를 느끼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그리하여 죄사함받고 그 분 안에서 의롭다 여기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공통적인 특권이다.
반면,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매사에 있어 그리스도의 은혜와 믿음과 그를 아는 지식 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좇아 성장하기를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들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좇아 간다"(빌3:13, 14).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싹이라고 한다면 그와의 교제는 꽃이 피는 것과 같다. 연합이 어린 아이의 상태라면 교제는 장성한 사람이다. 연합과 교제, 둘 다 근본에 있어서 한 생명, 한 소망을 지니고 있으며 똑같은 천국의 씨이며 둘 다 한 하나님, 한 구세주, 한 성령, 그리고 한 영원한 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연합은 교제에 비할 바가 못된다.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지니는 큰 비밀은 계속하여 그를 믿는, '산 믿음의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며, 매시간 요구되는 모든 것들을 '매시간' 그로부터 공급받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제가 바로 믿음 안에서 기쁨과 평강을 지니는 비결이며,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그러한 사람들이 소유하게 되는 놀라운 승리의 비결인 것이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