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아7:2)
우리의 비참했던 처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모든 사람이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고, 죄 중에서 잉태 되었으며(시51:5), 어떠한 보호와 돌봄도 받지 못하여 탯줄도 잘리지 않은 채 버려진 아이와 같았습니다.(겔16:4)
비록 몸은 출생하였으나 우리의 영은 죽어 있었고 그 몸조차 필시 죽는 몸에 불과하여 우리가 참 생명을 갖지 못하였으니, 생명으로서 마땅히 받아야할 존중과 보호를 이 세상 무엇으로부터도 얻을 수 없는 고아와 같았습니다.(요14:18)
물론 하나님의 일반 은총 가운데서,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들의 헌신적인 돌봄을 받고 친구들과 이웃의 사랑을 받았더라도, 그들도 유한하여 세상의 풍파와 갖은 슬픔과 고난으로부터 나의 안전을 보장해주지는 못하였다는 것이 우리가 처한 냉혹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니, 성도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 속에서 거듭나 새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육으로 세상에 날 때는 탯줄도 정리되지 않은 것 같았지만(겔16:4) 천사들이 기뻐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주님의 영을 통해 다시 날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받으시고 돌보셨으니, 탯줄이 잘려진 배꼽마저 아름답다 여김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칼빈의 지적처럼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성도의 모임, 즉 교회라고 하는 우리의 어머니는 그 허리가 아름답고 건강하여, 많은 생명을 출산하듯, 거듭난 많은 영혼들이 교회로부터 나올 것입니다. 교회에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는 가운데, 성도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 태어나고(약1:18), 거듭난 성도들이 말씀의 신령의 젖을 마시며 자라날 것입니다.(벧전2:2)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우리의 거듭남과 그 열매인 사랑만이 우리의 생명과 구원의 영원한 증표인데, 우리가 생일은 기뻐하고 축하하면서도 거듭남에 기쁨이 없는 것은, 출애굽 백성과 같이 우리가 다시 나기 전에 어떠했는지를 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아름답지 않았으며 우리를 둘러싼 환경도 아름답지 않았고,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포도주를 가득 부은 잔과 같이 기쁨이 넘치고 백합화로 두른 밀단과 같이 아름다워진 것이 거듭난 성도입니다.
내가 나의 옛 사람을 망각하고 사망에서 구해내신 주님을 망각하듯, 주님께서도 나를 망각하신다고 해도 견딜 수 있겠습니까. 믿음을 얻게 된 후에도 내가 처한 현실이 전혀 기쁘지가 않아서, 주님이 나를 망각하신다고 해도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겠습니까.
주님이 나를 항상 기억하듯, 내가 주님을 주야로 기억하며 거듭남의 기쁨을 누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또 다른 새 생명을 부르시고 기르시는 영광스런 기쁨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