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아7:1)

다시 한 번 신부의 아름다움에 대한 신랑의 찬사와 사랑 고백이 이어집니다. 이처럼 신부된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술람미 여인은 귀한 신분의 딸은 아니었으나, 왕과의 결혼을 통해 귀한 자의 딸로 불리웠습니다. 

우리도 신랑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고 왕이신 하나님의 양자됨에 따라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그 성품마저 주님의 형상을 따라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범죄하여 죄악을 진 백성이요, 악행하는 종자요, 타락한 자식과 같아서(사1:4),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고 아름다움이 전혀 없었으나(사1:6) 이제는 주님으로부터 우리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칭찬을 얻게 되었습니다.

앞 장과는 달리, 머리가 아닌 발에서부터 신부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이 특이합니다. 그는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가 몸 가운데 덜 귀하다고 생각되는 지체들을 더 귀한 것으로 입혀 주어 우리의 볼품없는 지체들은 더 큰 아름다움을 갖게 하십니다.(고전12:23)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몸은 주님을 위한 것이니, 성도의 발은 주님을 위해 걸을 것입니다. 세상을 거닐며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성도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롬10:15)

비록 우리의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신발로써 땅으로부터 구별되고 땅의 가시로부터 보호를 얻는 것처럼, 성도는 세상을 발딛고 살아가지만 세상으로부터 구별되며, 그리스도의 보호로 인하여 가시와 엉겅퀴 가득한 땅의 일들을 염려함 없이 앞만 보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다리는 장인이 정성들여 세공한 보석과 같이 흠 없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뼈와 근육들이  잘 꽨 구슬더미와 같이 정교하고 견고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지지하고 주님의 시험과 연단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의 모든 것, 그의 발끝마저도 사랑하는지를 생각해봅니다. 아무 바라는 것 없이도 값진 향유를 주님의 발에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주님의 얼굴 뿐만 아니라 그의 발끝까지 사랑하는지, 주님의 말씀이라면 내가 취사선택하지 않으며 단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내가 기쁘게 들으며 순종하고 있는지..

교회를 다니고 나서도 나의 모습은 여전히 불신앙으로 가득찬 듯 하고 스스로도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확실히 달라진 것은 내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 인하여 나의 마음이 죄에서 돌이켜 주님을 향하기 시작했다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 작은 마음을 보시고, 그리고 이 작은 마음을 통해 연합된 그리스도의 의의 광채를 보시고, 우리를 아름답다 하십니다.

내가 여전히 때론 악하고 때론 약할 때라도, 내 삶이 아름답지 못하고 내 영혼이 전혀 아름답지 않게 느껴질 때라도, 주님을 사랑하기 시작한 이 작은 마음으로부터 우리는 위로와 담대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담대함 가운데서 나의 발끝은 주님을 향해 있어서, 더디더라도 주님을 향해서만 걸어갈 것입니다. 내 발이 향한 그 길에만 생명이 있고 찬송이 있을 것입니다.

 

(엉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