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의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아6:14)

우리는 성도에게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성도의 모습은 마하나임(창32:2), 즉, 승기를 높이 든 하나님의 군대들이 추는 군무와 같이, 기개가 넘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가족과 이웃을 위하여 전쟁의 참상을 견뎌내고 승리를 쟁취해낸 군사들은 참으로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못박히시고 영원한 승리를 거두신 십자가는, 우리를 위하여 온갖 수난과 수욕을 참아내셨기에 더욱 아름답고 영광스럽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내 몸을 쳐서 주께 복종케 됨으로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세상의 조롱과 멸시와 고난을 참아내었기에 더욱 아름다울 것입니다.

전쟁터가 아니어도 소중한 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의 이별을 경험해야 하고, 전쟁의 참화 이상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변고를 치러내게 되는 것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더욱이 성도가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세상마저도 내게 등돌리는 경험이 수반되며 기꺼이 넓은 길을 피하여 좁고 험난한 길을 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믿음을 지켜낸 성도들의 모습은 반드시 마하나임의 춤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의 실패는 주님 안에서 승리로 귀결되었고, 우리의 슬픔은 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의 이 곤고한 싸움에 승리가 보장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기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거두신 이 승리가 부분적이었거나 일시적이었던 것이라면 나는 지금도 불안에 떨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승리가 값없는 은혜로 내 것이 되지 않았더라도 나는 지금도 이기기 위해 조바심을 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를 만나러 갈 때, 하나님은 마하나임, 즉, 하나님의 군대를 보이심으로써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를 증거하셨습니다.(창32:2) 승리하는 교회와 기쁨으로 가득찬 교회는 마하나임의 춤과 같아서, 우리가 마하나임과 같은 교회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교회로부터 구원의 증표와 승리의 증표를 확인할 것입니다.

한 때 세상 권세 잡았으나 전쟁에 패한 자들이 건내는 유혹은 내게 아무런 만족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나의 아픔이 마하나임의 춤으로 변할 수 있도록, 오늘도 주님 달리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마하나임의 춤과 같은 교회를 바라볼 것입니다. 십자가의 승리를 믿는 모든 성도들마다 기쁨의 춤과 노래가 흘러 넘치기를 다시 한 번 소망합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