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로새서 3장 19절).
세기의 부흥사 빌리 그레함 목사님에겐 기도로 훌륭하게 내조한 아내 루스 그래함이 있었습니다. 전에 기독교 기자로부터 받은 질문입니다: "루스 사모님! 당신은 사도 바울 다음으로 가장 위대한 부흥사로 여기는 목사님의 아내로 수십 년을 살아왔는데 그 오랜 세월 살아오시면서 혹시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셨나요?” 루스 그레함 사모님은, "아니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의 매일 생각해 본 것은 있었지요!" 호기심에 가득한 기자는, "그게 뭔가요?" 루스 그레함 사모님은 웃으시면서, "Murder...살인요!" 여러분 아내들도 혹시 남편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울 때가 있지 않았었나요? 요한일서 3장 15절 상반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자입니다 ….”
하나님께서 남편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 19절 말씀입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현대인의 성경)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히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남편들을 가정에 가장으로 세우시고 우리에게 신적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 만큼 우리 남편들에게 큰 책임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막중한 우리 남편들의 책임입니까? 그 책임이란 바로 남편이 자기 아내와 가족 식구들을 사랑하되(엡5:25) 그들을 보호하고 공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호하고 공급하되 남편은 아내와 가족 식구들을 위하여 희생을 하면서까지 보호하고 공급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 19절을 보면 성경은 남편들에게 2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9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남편들은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요? 에베소서 5장 25절 말씀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현대인의 성경) “남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한 5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 남편들은 아내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복으로 여겨야 합니다.
잠언 18장 22절 말씀입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여기서 성경은 아무 아내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아내”는 “어진 여인”(an excellent wife)(12:4), “슬기로운 아내”(prudent wife)(19:14) 또는 “현숙한 여인”(A wife of noble character)(31:10)입니다. 이러한 여인은 유능한(10절, 새 번역) 여인으로서 강직하고 덕이 있습니다. 그러한 여인은 지혜롭고 분별력이 있어서 남편을 잘 도와줍니다. 성경은 이러한 어질고 슬기로우며 현숙한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내를 둔 남편은 복받은 자입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어질고 슬기롭고 현숙한 아내는 그에게 복덩이(매우 귀중한 사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남편들이 자기들의 아내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려주신 복으로 여기고 있지 않고 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 중 하나는 그 여인이 현숙하고 슬기롭고 어진 여인이 아니라 “욕을 끼치는 여인”이기 때문입니다(12:4). 여기서 “욕을 끼치는 여인”이란 바로 남편과 다투기를 잘 하는 여자를 말합니다(박윤선). 또한 자기의 부끄러운 말이나 행위를 통해 남편을 부끄럽게 하는 여인을 말합니다(인터넷). 다투기를 잘 하는 여인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21:9),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25:24). 아마 우리 남자들 중 이렇게 변명하고 싶은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현숙한 여인을 주시지 않으시고 다투며 성내(성깔 있)는 여인을 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그런 아내를 복덩이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참 그럴싸한 변명 같지 않습니까? 만일 그러한 말을 제가 듣는 다면 저는 그 형제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다투며 성내는 여인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런 여인을 선택했으니 책임감을 가지고 그 여인을 현숙한 여인으로 양육하십시오.’ 너무나 많은 경우 우리 남자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질고 슬기롭고 현숙한 여인을 거부하고 우리가 보기에 예쁘고 매력을 느끼는 그러나 나중에는 다투며 성내는 여자를 선택하여 결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선택을 했다면 우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우리의 아내를 현숙한 여인으로 양육하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지금 너무 많은 우리 남자들이 자기가 선택하여 결혼한 아내에게 참 무책임한 말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아내에게 저주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또한 행동으로도 아내로 하여금 자기가 저주 덩어리라고 느끼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지금 많은 아내들이 자기들의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여인의 인생입니까?
우리 남편들은 우리 아내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덩이로 여겨야 합니다. 아내는 하나님이 우리 남편들에게 주신 복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내를 즐거워하며 그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 남편들은 우리의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7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 현대 사회과학의 연구가 밝혀낸 것은 결혼에서 아내가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제일 첫 번째가 귀히 여김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나머지 두 가지는 이해받는 것, 존경받는 것임). 우리 남편들은 우리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의 아내를 귀히 여기고 계신데 우리 남편들이 누구이길래 주님이 귀히 여기고 계시는 하나님의 딸을 경히(없신) 여길 수 있습니까? 요한일서 4장 20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 남편들이 주님을 귀하여 여기므로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찬송가 102장)을 보이지 아니하는 영이신 하나님께 찬양하면서 보이는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않고 있다면 이것은 위선입니다.
오늘 6월 16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미국에선 “Father’s Day”(아버지의 날)로 지킵니다. "Happy Father's Day" 사진을 인도 현지인 선교사님에게 받았는데 “F.A.T.H.E.R.S."이란 단어를 잘 적용했다고 생각합니다:
F: Faithful (아버지는 신실하십니다).
A: Always there (아버지는 항상 거기에 계십니다).
T: Trustworthy (아버지는 신뢰할 수 있습니다).
H: Honoring (아버지를 공경합니다).
E: Ever-loving (아버지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R: Righteous (아버지는 의로우십니다).
S: Supportive (아버지는 지원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한 인도 현지인 선교사님과 하나님의 사람인 그녀의 아버님을 생각하면서 이런 글을 제 자신에게도 반영 및 적용을 하면서 써보았습니다:
-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가정의 가장인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의 사람'이십니다.
-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이신 우리 아버지를 통하여 자녀인 우리에게 지대한 선한 영향을 끼치셨고 지금도 끼치고 계시며 우리가 죽을 때까지 끼치실 것입니다.
- 이러한 사랑의 아버지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잠시 헤어지지만 다가오는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날 줄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은 말로 표현이 안될 것 같습니다.
- 우리도 우리의 아버지를 본받아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며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큰 은혜요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 마치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큰 선한 영향을 받은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에게 받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
- 남편들은 아내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잠언 5장 18절 말씀입니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과연 우리 남편들은 우리의 아내들을 어떻게 즐거워해야 합니까? 우리 남편들은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잠언 5장 19절 말씀입니다: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라는 말은 우리 남편들은 아내의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사로잡힌바 돼야 한다(we must be captivated by her love)는 의미입니다. 특히 우리 남편들은 아내의 미모보다 그녀의 미덕에 우리의 마음이 사로잡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다’는 말씀 비유의 의미입니다(박윤선).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의 “우물”과 우리의 “샘”(15절)인 우리의 아내의 사랑만을 즐기며 결코 그녀를 버리고 음녀의 집으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아내로 말미암아 성적으로나 애정적으로나 만족할 만한 원기 회복(satisfying refreshment)을 얻을 때에 우리는 결코 음녀의 품을 그리워하며 음녀의 사랑을 연모하지 않을 것입니다(20절). 잠언 5장 16-17절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그러나 지금 얼마나 많은 남편들이 자기들의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타인으로 더불어 나누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자기들의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인에게 가고 있습니까? 지금 많은 남편들이 자기들의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지 못하며 아내를 즐거워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그녀의 사랑을 연모하지 않고(19절) 오히려 음녀를 연모하며 다른 여인의 가슴을 안고 있습니다(20절). 이렇게 우리 남자들이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인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바람을 피우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죄악 된 선택의 결과를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7-14절). 그 징계란 “존영 상실”(9절), “시간 상실”(9절), “재물 상실”(10절), “건강 상실”(11절), “양심상 고통을 당함”(12-14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간음의 결과를 알고 음녀를 연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므로 아내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 19절을 보면 성경은 남편들에게 2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첫 번째 말씀은,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남편은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5가지 성경적인 교훈(원리) 중에 이미 3가지를 묵상했습니다: (1) 남편은 아내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복으로 여겨야 합니다(잠18:22). (2) 남편은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벧전3:7). (3) 남편은 아내를 즐거워해야 합니다(잠5:18). 남편들은 아내를 어떻게 즐거워해야 합니까? 우리 남편들은 아내의 품을 항상 그리고 충분히 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잠언 5장 19절 말씀입니다: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여기서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라는 말은 남편은 아내의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사로잡힌바 돼야 한다(we must be captivated by her love)는 의미입니다.
지난 주일 이 세 번째 성경적인 교훈(원리)를 배웠는데 저는 지난 주 금요일에 “서로를 위한 기도후원 (카카오톡) 방”에 제가 인터넷 사역으로 알게 된 영상 형제가 올린 아가 4장 9절 중심으로 짧은 말씀 묵상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가 4장 9절 말씀입니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현대인의 성경)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그대가 내 마음을 빼앗아갔소이다. 그대가 한 번의 눈짓과 목걸이의 보석 하나로 내 마음을 훔쳐 가고 말았소”]. 여기서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라는 말씀은 영상 형제의 말로는 “내 마음의 주도권을 잃고 사로잡힌 바 되어 언제 어디서나 그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모든 시간이 상대방을 향해있다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신랑되신 주님께서 신부된 교회인 우리의 작은 눈길 하나에도, 우리 목의 작은 장식 하나에도 그 마음을 빼앗기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 묵상을 다시금 생각할 때 3 성경 구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 (이사야 43장 4절)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현대인의 성경) “내가 너를 소중하고 귀한 존재로 여겨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 내가 다른 민족을 희생시켜서라도 네 생명을 구하겠다”]. (2) (스바냐 3장 17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현대인의 성경)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신다. 그는 전능한 구원자이시다. 그가 너를 아주 기쁘게 여기시며 너를 말없이 사랑하시고 너 때문에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실 것이다”]. (3) (시편 139편 17-18절)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이시여, 주의 생각은 나에게 정말 소중합니다. 어쩌면 주는 그렇게도 많은 생각을 하십니까? 내가 만일 그 수를 헤아린다면 해변의 모래알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내가 깰 때에도 주는 여전히 나와 함께 계십니다”].
신랑되신 주님이 신부된 교회인 우리를 이정도로 사랑하고 계시다는 말씀을 이렇게 다시금 묵상하게 되었을 때 저는 ‘나는 내 아내를 이정도로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자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잠언 5장 19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나는 내 아내의 품을 항상 그리고 충분히 족하게 여기고 있는가?’, ‘나는 내 아내의 사랑으로 인하여 내 마음이 사로잡힌바 되어 있는가?’ 박윤선 박사님에 의하면 남편들은 아내의 미모보다 그녀의 미덕에 우리의 마음이 사로잡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제 토요일, ‘내 마음이 사로잡힌 바 된 내 아내의 미덕은 무엇인가?’라고 자문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덕”이란 단어의 의미를 잘 몰라서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습니다. 국어 사전에는 “도덕적으로 바르고 아름다운 일. 또는 그러한 행위”라고 합니다(인터넷). 저는 이 의미보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이 “참된 미덕의 본질”이란 책에서 말한 의미가 더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에드워즈 목사님에 의하면 참된 미덕이란, “하나님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이며, 성도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을 말한다. 그런데 참된 미덕의 참 소유주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참된 미덕이 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으로 거듭날 때 이 참되 미덕을 소유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무조건으로 사랑한다. 또한 성령을 받은 성도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에게는 직접적인 성령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이다”(인터넷). 저는 제 아내의 미덕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자 제가 이미 묵상한 잠언 31장 10-31절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에 대한 6가지 목록을 다시금 묵상하면서 제 아내가 현숙한 여인을 닮은 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여섯 가지 중에 저는 제 아내를 생각할 때 3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현숙한 여인은 남편에게 신뢰를 줍니다”(11-12절)란 말씀 묵상대로 제 아내는 저에게 신뢰를 줍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내를 믿습니다. (2) “현숙한 여인은 자기 남편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합니다”(23절)라는 말씀 묵상대로 제 아내는 저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은 사람으로 세워줍니다. (3) “현숙한 여인은 지혜로운 입을 가지고 있습니다”(26절)란 말씀 묵상대로 제 아내는 제가 보기에 지혜로운 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지혜로운 입이란 제가 볼 때 제 아내는 “때에 맞는 말”(15:23)을 잘합니다. 즉, 제 아내는 상대방에게 말할 때에 여러가지를 고려하여 잘 조절해서 말을 합니다(박윤선).
- 남편들은 우리 아내를 우리 몸같이 사랑하고 아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28절과 33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하고.” 마치 우리 남편들이 우리 몸의 필요한 것들을 돌보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아내를 향한 우리의 사랑은 그녀의 필요를 채워주므로 그녀의 성장과 발전을 촉진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남편들은 우리 아내를 사랑하되 2가지 목적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 2가지 목적은 우리 아내를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to make her holy)(엡5:26a)와 주님 앞에서 영광스러운 아내로 세우기 위하여(to present her to the Lord as a radiant wife)입니다(27절).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는 방법은 에베소서 5장 26절 상반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라고 말씀하고 있고,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는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남편들은 우리 아내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교훈하며 그 말씀을 순종케 하므로 세상과 분리된 삶, 즉 하나님의 거룩한 삶을 본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남편들은 우리 아내를 주님 앞에서 “영광스러운 아내”, 주님의 광채가 들어나는 아내로 양육해야 합니다.
- 남편들은 우리 아내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 말씀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남편들은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되 그 목표는 오직 아내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또한 아내로부터 상을 받을 기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돌보고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남편들은 작은 일에서부터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내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시간을 함께 하고, 쓰레기도 가끔 버리고, 부엌에 가서 설거지하는 척하는 등 아주 작은 관심을 아내에게 보여주면 그것이 큰사랑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 남편들은 자녀양육에 대해 적극적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4절 말씀입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남편들은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내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도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 양육, 우리는 무조건 우리 아내들에게만 다 맡기고 수동적으로 있으면 아니 됩니다. 우리는 능동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우리 자녀 양육에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그의 책 “영적생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은 자기 아내를 자기 몸으로, 자신의 일부로서 사랑해야 합니다. 그는 그녀를 모욕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녀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녀를 아주 완벽한 무엇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그녀를 그녀의 약한 특징들에서 보호합니다. 그는 그녀를 견고케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데 헌신하는 우리 남편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어제 토요새벽기도회 후 “슬픔은 기회입니다. (1)”라는 설교 동영상을 여기 저기 나눈 후 오늘 주일 준비를 하다가 “GRACE TO KOREA”라는 기독교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올려져 있는 기사들의 제목을 흝어보다가 “성경이 말하는 결혼: 10. 부부의 갈등 해결 (1)”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고 관심이 생겨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 기사 내용 중에 “배우자는 사랑의 대상이지만, 갈등 속에서는 싸움의 대상이 됩니다” 라고 말하면서 “갈등”이란 단어의 표준국어대사전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 또는 그런 상태.” 그래서 부부 사이도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지면 서로 적대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부부 갈등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한 2가지 이유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 “차이”
“’도대체 이해가 안 가’라고 배우자를 향해 말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갈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서로의 다름은 그 자체로 죄가 아니지만, 결혼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다름’은 하나 되기 위해 서로 끊임없이 이해하고 용납하기 위한 노력을 요구합니다.”
- “죄”
“부부의 다름은 그 자체로 죄가 아니지만, 남편과 아내 모두 가지고 있는 교만과 육신의 소욕은 갈등을 일으키는 주원인으로 죄에 그 뿌리를 둡니다(갈 5:19-21; 약 4:1-3). 죄는 아주 사소한 바람으로 시작하지만 매우 강력한 요구로 끝이 납니다. 필요(need)가 원함(want)이 되고, 원함은 곧 요구(demand)가 됩니다.”
제가 그 기사 내용 중에 좀 관심을 많이 갖게 된 내용은 “갈등을 잘못 피하거나 잘못 해결하는 부부의 특징”입니다.
- “조용히 침묵하는 것”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냥 넘어가기만을 바랍니다. 하지만, 실상 이것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괴롭게 만드는 일입니다(골 3:19).
- “서로 격리되는 것”
“멀리 떨어져 있다 보면 적당한 평안을 알아서 각자 누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고 허다한 죄를 덮어주는 일과는 거리가 멉니다(벧전 4:8). 부부의 친밀함을 포기하고 큰 갈등을 피하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것입니다. 반드시 논의해야 하는 주제를 문제가 생길까 봐 일부러 피하는 경우도 있고, 일어난 사실을 감추거나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상처를 숨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냥 덮어둔 것일 뿐, 제때 다루지 않아 곪아 터진 문제로 더 큰 갈등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둘째로, 남편들은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9절 말씀입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언제 우리 남편들이 우리 아내들을 괴롭게 합니까? 아니, 언제 우리가 우리 아내들을 괴롭게 하는지도 모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니면 알면서도 괴롭게 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남편들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언제 또한 무엇때문에 우리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알고 민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내를 괴롭게 하는 것은 우리 남편들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미련한 가장인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기보다 아내를 괴롭게(harsh) 합니다(골로새서 3:19). 그는 그의 아내의 말에 부드럽게 대답하기보다 과격한 말(a harsh word)로 그녀로 하여금 분노케 합니다(잠언 15:1, 현대인의 성경). 또한 미련한 남편은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므로 아내를 괴롭게 합니다. “잔소리 중에서도 특히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도대체 하는 게 뭐야? 이거 하나도 제대로 못해?’ 처럼 무조건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잔소리하는 남편 특히 집안의 경제권을 지니고 있는 남편의 경우에는 아내를 자신보다 부족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매일 잔소리를 반복하며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잔소리를 하는 남편 대부분이 아내와 대화를 하기보다는 버럭 화를 내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이렇게 아내와의 소통을 거절을 하는 남편은 심리적인 문제로 제대로 된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 19절을 보면 성경은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다시금 묵상할 때 ‘아내를 제일 괴롭게 하는 것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2018년 1월 11일에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여인”이란 제목 아래 창세기 29장 31절 말씀 중심으로 남편인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한 여인 레아에 대해서 묵상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부인은 심히 괴로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하나님의 존귀하고 보배로운 딸들이 그녀들의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미움을 받고 상처와 아픔과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면 이 얼마나 괴롭고 괴로운 인생입니까? 레아가 야곱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이유는 야곱이 시력이 약한 자기보다 곱고 아리따운 자기의 여동생인 라헬을 더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7, 18절). 이렇게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내들은 남편에게 받지 못하는 사랑을 무의식적으로 자녀에게 지나치게 사랑을 쏟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결과 그 자녀는 어머니의 과잉 사랑과 과잉 보호를 받으므로 마마 보이나 마마 걸이 될 위험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빈약한 부부관계는 왜곡된 부모 자녀 관계를 생산합니다. “이때 부모는 부부관계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정서적 욕구나 사회적 욕구, 성적 욕구를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통해 충족시키려고 합니다. 또한 배우자에게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아이와 편 먹고 배우자를 밀어내는 식으로 보상하려고 합니다"(인터넷). 아마 많은 부부들이 ‘애들 때문에 참고 산다’고 말하면서 애들이 크면 이혼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2019년에 제가 읽은 어느 한 기사를 보면 한국의 1년 한해 전체 이혼 사건이 총 10만 8684건이었는데 20년 이상 함께 산 황혼 이혼이 33.3%(3만 6327건)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치했고, 그 다음으로 0-4년 신혼부부(21.4%)가 뒤를 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친밀하지 못하면 주로 아내는 남편에게 받지 못하는 사랑을 무의식적으로 자녀에게 지나치게 사랑을 쏟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내가 무의식적으로는 자기 자녀에게 사랑을 받고자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부부 관계가 어떠한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 이유는 자녀들은 자신만을 바라보며 사는 엄마, 아빠 때문에 마음이 병들어 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 19절 말씀대로 우리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아내를 괴롭게 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엡5:25)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에베소서 5장 28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아내를 제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