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암양떼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같고"(아6 6)

우리의 이가 정해진 자리를 지키고 있어 흠 없이 깨끗하고 윗니와 아랫니가 온전히 짝을 이루었을 때, 그 존재에 의의가 있어 본연의 기능 수행이 가능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아래에서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담은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왜곡하여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하였고, 우리 영혼이 짝을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곁을 스스로 떠나려 했으니, 그것이 인류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자리, 즉 창조질서로터의 일탈이 성경이 말하는 죄이고, 창조질서 안에 머무르는 삶이 거룩이며 성도의 경건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그리스도의 품 안입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영혼 가운데는 본성의 탐욕이 아닌 성령님께서 자리하셔야 합니다. 이와 같이 마음을 돌이켜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성도의 회심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게 되는 것이 주님과의 연합입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언제나 내가 있어야 할 단 한 자리, 곧 그리스도께로 돌아와서 그에게 속하게 된 성도는 빛나는 광채와 아름다움 가운데서 주님의 칭찬을 얻게될 것입니다.

현재에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아는 사람은 죽어서도 하나님 곁에 그를 위한 자리가 있을 것이니, 천국은 성도가 영원 중에 있게 될 자리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죽어서도 하나님께 버려짐을 받을 것이니, 영원한 고통과 형벌의 현장이 나의 자리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회심하여 주님과 연합해 거룩을 이루어가는 성도들의 두 발이 있어야 할 자리는, 가정이고 교회이며 선한 노동의 현장이고 낙심과 곤경에 처한 이웃의 곁입니다. 주님께서 보내어주신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해나가는 것도 또한 성도의 거룩입니다.

물고기는 맑은 시냇가에, 새들은 푸르른 나무가지 위에 있을 때 평안하듯,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평안할 것입니다.

오늘 나의 하루가 불편하고 가시 방석에 앉은 것과 같았다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탕자의 마음으로 자신의 자리, 곧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집은 언제나 나를 위해 활짝 열려 있을 것입니다. 

내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가야할 자리를 아는 것이 성도의 지혜입니다. 내가 가게 될 더 나은 본향을 소망하여 나의 마음의 자리를 주께 내어드리는 성도들에게는 기쁜 찬송이 있을 것입니다. 내 영혼을 흔드는 혼돈을 잠잠케 하고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성령님의 은혜가 내 영혼에 자리하여 나를 굳게 붙드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