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눈이 나를 놀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염소떼 같고"(아6:5)
우리는 스스로를 탁월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떠난 바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느낀 것은 좌절과 무력감 뿐이었습니다.(5:6)
우리가 나 자신의 탁월함이 아닌 자신의 어둠(1:5)을 발견하고, 내가 아닌 주님의 탁월함을 발견하여, 그분의 은혜에 의존해 주께 속하여서 전적인 의존을 드릴 때, 주님께서는 나의 탁월함을 발견하여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회복한 성도를 보시며, 우리의 지난 잘못은 간과하여 주시고(롬3:25), 변함없이 동일한 사랑을 드러내시며, 길르앗산의 염소떼와 같은 머리털(4:1과 동일한 고백)부터 이와 뺨 등에 이르기까지 다시 한 번 우리의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칭찬하여 주십니다.
후회와 간절함 중에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되찾은 여인의 시선은 필시 회개의 마음과 기쁨의 감정을 담았을 것입니다. 회개와 기쁨 중에 주님께 고정된 성도의 시선으로부터, 주님께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벅차오르는 아름다움을 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병(5:8)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 성도는 아름답습니다. 주님의 아름다움에 연합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령님이 교통하시는 가운데 주님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우리를 변화시켜나가시기 때문입니다.(고후3:18)
주님을 떠난 죄인이었던 성도를 주님께서 아름답게 보심이 우리에겐 큰 위로이자 소망입니다. 그가 지금도 아름답게 여기심에 따라 우리가 현생에서는 그와 화평을 이룰 것이고, 훗날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되었을 때 우리가 얻게될 평가와 처분을 미리 알고서 소망 중에 기다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심히 좋았더라"(창1:31) 하신 하나님의 고백이 지금도 우리에게 동일하시며, 마지막 때와 영원 중에서도 동일하실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심판정에서도 아름답다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으로 해처럼 밝게 빛나며 살 것입니다. 내가 오늘도 고난하나 오늘도 낙망하지 않으며, 슬픔 중에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