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그 양떼를 먹이는구나"(아6:3)

부부 간의 연합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부부간의 연합의 원형은 그리스도와 성도 사이의 신비로운 연합입니다.(엡5:22~33)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연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성자와 성도가 성령의 교통하심 가운데서 연합되어서, 성도는 삼위 하나님 모두와, 영적이고 신비로우면서도 실제적이고 나뉠 수 없는 연합과 사귐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연합 안에서 모든 부요와 생명을 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이 연합과 사귐을 누리지 못한 채, 먹고 사는 문제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보통의 인생에 있어 최대의 난제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살고 먹는 문제라 하지 않고 먹고 사는  문제라 합니다. 왜 먹느냐 하면 살기 위해 먹는다 합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기 위하여 먹는 문제에 분투했지만, 그런다고 생명이 얻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제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우리는 다른 것 아닌 참생명에 연합된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가 먹어서 생명을 얻은 것이 아니라, 참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그로부터 먹임을 받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접붙임 되어 양분을 얻듯,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참 생명 가운데서 양떼와 같이 먹임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연합되기 전까지, 생명은 손에 닫지 않는 저 높고 먼 곳에 있는 것만 같아서 우리가 까치발을 들어보고, 우리가 뛰어올라보아도 전혀 닿지 않았고 넘어지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잡히지 않을 생명을 얻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잡혀진 생명을 반석 삼아 생명 위에서 살아갑니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서, 생명으로부터 오는 신령한 음식과 음료를 누립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난제, 즉, 사는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가 먹고사는 문제에 매어있다면 나는 참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묵상해야 하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의 삶의 목적은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연합 가운데 얻어진 참생명 위에서 열매 맺으며(요15:5) 그 열매로써 주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연합의 유익입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