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gckorea.org/articles/2337?sca&fbclid=IwZXh0bgNhZW0CMTAAAR2aLqZ3PYFkzLJo0AVhJDedtQacCbYHgHn7_TS34bkGdMINSH1Xrln_toQ_aem_5_McuREJAynCntHwQ6ivow&ckattempt=1

 

위에 기사(article)를 다시 읽으면서 몇 가지 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원해서 교회에 온 거구나 ... 신앙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모든 부모가 갈망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우리 자녀가 자발적으로 교회를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믿는 부모가 있는 자녀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니겠지요. 아마 우리 자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고등학교까지는 부모님 때문에라도 교회를 다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가 중학생이나 특히 고등학생이 되면 교회를 억지로라도 갈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부모들이 강제로라도/강압적으로라도 자녀를 교회에 가도록 만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우리 자녀가 교회를 안 나갈 때 우리는 부모로서 너무 지나치게 염려하고 걱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녀가 자기가 원해서 교회를 가는 것이 우리가 갈망하는 것입니다.
  2. "문제는 대학이다. 집에서 나가는 순간 부모가 가르쳤던 모든 것을 버리고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대학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집을 떠나 대학교에 가서도 계속 신앙 생활을 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가르쳤고 교회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교회를 떠나 신앙 생활도 버릴 것인지 대학교가 testing ground라고 생각합니다.
  3. "우리도 아이의 믿음이 자라도록 강요할 수 없다. 부모로서 우리의 목적은 심고 물 주는 것 이상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3장 6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부모의 역활은 자녀들의 신앙을 자라게 하는 것까지는 아닙니다! 그저 우리는 말씀의 씨앗을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 심어주고 기도의 눈물을 주는 것 뿐입니다. 그들의 신앙을 성장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4. "통제하려는 노력이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더 나쁘게는 반항으로 이어질 때 느끼는 좌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십대 자녀를 징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한계를 정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당신이 자녀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문제는 자녀를 너무나 지나치게 control하려고 하는 부모라 생각합니다. 왜 부모가 그리할까요? 왜 엄마는 그리도 자녀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혹시 우리 부모가 자녀를 생각할 때 마음이 불안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요? 어쩌면 자녀를 통제하려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자녀를 위해서 이겠지만 실제로 내면적으로 부모 자신을 위해서 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자녀 양육 방법은 자녀의 행동(behavior)을 부모가 원하는데로 하게 만들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결고 자녀의 마음에는 변화를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녀의 마음의 반앙심만 더 크게 만들 것입니다.
  5. "자신의 확고한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부모가 어떻게 자녀는 그런 신앙을 가지길 기대할 수 있을까? “자녀는 부모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자란다.” 이 격언을 기억하자. ... 부모가 자신만의 신앙이 없는데 어떻게 자녀가 자신의 신앙을 기르도록 훈련할 수 있겠는가?" 부모가 성경책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자녀들에게 성경책을 열심히 읽으라고 말하면 위선 아닌가요? 부모의 변명은 '나는 바빠서(또는 이런 저런 핑계로) 성경책을 읽을 시간이 없지만 ...'이라고 말하면서 자녀는 열심히 성경책을 읽어서 믿음이 자라나길 기도하고 기대한다는 것, 어떻게 생각합니까? 부모의 입장에서 그리해도 괜찮다고 자신에게 관대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자녀의 입장에선 '우리 엄마, 아빠는 위선자야'라고 생각하겠지요.
  6.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관점과 씨름할 공간이 필요하다. ... 그렇게 하는 게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의견에 대해서 더 확신을 갖도록 한다는 사실을 나는 확인했다." 주님께서 저로 하여금 승리장로교회에서 목회를 하게 하시면서 주시는 은혜와 가르침은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국어 사역에 있는 성도님들도 다양한 배경과 성격과 신앙 등등이 있을 것이고, 그들의 자녀들이나 손주들인 영어 사역에 젊은이들은 어른들과 문화 차이, 언어 차이, 신앙생활하는 스타일 차이 등등 많겠지요. 그런데 저에게 더 큰 도전(?)은 히스패닉 사역 성도님들입니다. 심지어 저는 히스패닉 사역을 담당하고 계시는 고메즈 목사님하고도 언어 차이, 문화 차이, 신앙 생활하는 스타일 차이 등등이 있답니다. ㅎ 20년이나 함께 팀 사역을 하고 있는데도 저는 아직도 고메즈 목사님하고 충분히 이해가 되는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그러기에 저는 가정 사역에서도 저와 아내와의 다른점들/차이들(differences) 뿐만 아니라 저와 아들과의 차이들, 저와 예리와의 차이들, 저와 예은이와의 차이들을 충분히 많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배워가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세 자녀들을 양육함에 있어서 딜런과 예리와 예은이와 각가 따로 대화를 하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관점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들 각자의 말을 들으면서 그들 나름대로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서 씨름을 하고 있는 것도 엿봅니다. 월요일에 사촌 여동생 수정이의 장례식에 운전하고 가는데 막내 딸 예은이가 저와 아내와 예리 앞에서 마음을 나누면서 울었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영적 씨름'을 하고 있으면 그렇게 많이 울면서 우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나누었겠습니까. 어쩔 때는 목사로서 저는 자녀에게 이런 저런 말로 가르치려고 하는 유혹이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께 기도로 맡기고 자녀들 각자가 스스로 고민하고 씨름하고 울고 아파하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등등 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고 지켜 보고만 있답니다.
  7. "십대 자녀가 어려운 질문을 하면 두려워하지 말고 “그건 나도 몰라” 하고 대답하자. 하지만 결코 그 문제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자녀와 함께 그 어려운 문제를 조사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자. 문제와 뒹구는 과정을 무시하지 말자. 그것이야말로 자녀의 신앙을 확고하게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저의 세 자녀들 중에 사랑하는 아들 딜런 전도사하고는 신앙 생활 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얘기까지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대화를 하게 된 계기가 딜런이 저에게 질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저에게 질문했다는 것은 그정도로 딜런이 나름대로 많이 고민하다가 저에게 물어본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에서 집에 와 있는 예리하고는 딜런보다 대화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ㅎ 아마도 그 이유는 중 하나는 예리는 저하고 신앙이나 사역 등등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히 예리는 일본에서 같이 선교 사역하고 있는 일본 목사님과 사모님과 세 자녀들하고 친하게 지내면서 그 사모님이 어린 세 자녀들을 양육하는데 힘들어하는 모습이나 고민 등등을 저하고도 대화를 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녀 양육에 대한 의문이나 질문이나 자기 생각을 저하고 나눕니다. 막내 딸 예은이는 신앙에 대한 고민이 세 자녀들 중에 제일(?) 많이 보입니다. 그래서 월요일에 차 안에서 그녀는 마음 문을 열고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에게 자기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나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저는 세 자녀들이 고민하고 씨름하며 저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가끔 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고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각 자녀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는 지금도 고민하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사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