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는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같고 형상은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아5:15)

 

아마 옛적에도 그랬겠지만, 현대인들이 진 삶의 무게가 어찌나 무거운지요. 하나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핑계하기에 참 좋은 때입니다. 요즘 교회에 가정예배 프로그램이 있어서 아내와 아주 간소한 가정예배를 약속했었지만, 이번주에는 퇴근 이 늦어지다보니, 씻는 사이에 아내가 잠들어 놓치기도 했었고 또한 교회 프로그램으로 통독을 시작했지만, 마음이 분주하니 말씀을 읽는 것이 뒷전이 되곤 합니다. 

요즘 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며 살아오신 흔적을 정리하다보니, 아버지가 가족 모르게 지고 계시던 엄청난 경제적인 압박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살아계셔서 앞으로 수십년을 더 안쓰고 일만 하셨어도 다 갚지 못했을 수많은 부담감과 가장의 무게들.. 아프시기 전에 종종 교회 다니자 말씀드리면, 지금은 마음이 복잡하여 좀더 안정을 찾고나면 다니시겠다던 아버지의 말씀들이 이해가 안되지 않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의 짐을 대신 지시는 그리스도시지만, 도무지 감당할 수 없던 아버지의 삶의 무게와 본성적인 죄의 짐들을 맡기고 주님의 두 발로 달리는 천국 열차에 오르기에는, 아버지께서 병중에 하신 신앙고백이 그리스도로 달리시는 하늘 열차의 차삯으론 혹시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하신 신앙고백으로도 충분했을까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다못해 비행기를 타더라도 수하물이 많으면 돈을 더 받으니까요.

그러나 그리스도의 강한 두 다리를 묵상할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그가 지신 짐의 무게가 버거워서 아버지의 짐을 추가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아니하시며 오히려 기뻐하시고, 그는 넉넉히 감당하시기에 아버지에게 많은 믿음의 차삯을 요구하지 않으셨을거란 생각도 듭니다.

너무 지쳐서, 혼자서는 달릴 기력도, 걸어갈 기력이나 일어설 기력도 남지 않아서, 피곤중에 신음하듯 나지막히 읊조린 아버지의 목소리에도 그리스도께서는 그 넉넉하신 능력으로 능히 아버지의 짐을 거두어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정사를 지신 그의 다리는 견고하며,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지고 십자가의 무게를 능히 감당하시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으십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내가 지게 된 모든 짐의 무게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나는 그 능력의 견고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진 짐의 무게는 우리 죄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늠해보게 끔하는 저울추일 뿐만 아니라, 주님의 크신 능력과 은혜의 무게를 아주 조금이나마 가늠해보게끔 하는 저울추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예표하는 주님의 형상의 아름다움을 그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송하며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족함이 없으시며 홀로 완전하시니, 주님의 형상을 닮아 주님의 몸된 교회 역시 강하고 능력있는 교회, 능력있는 성도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강한 발 밑에는 우리 원수들로 발등상을 삼으셨습니다. 그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앞서가시며 그의 강한 발로 원수들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으니, 우리는 그를 따라 십자가의 길과 면류관의 길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그의 강한 두 다리와 견고하신 주님의 형상은 언제나 믿어봄직 할 것입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