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듯 하구나"(아5:14)

 

손은 우리의 의지를 수행하는 신체 기관으로서, 성경에서 주님의 손은 그의 능력과 권세를 뜻하며, 몸은 4절의 '마음'이라고 해석된 단어와 동일한 단어로, 배(KJV흠정역)나 내장, 혹은 마음, 긍휼로 번역되거나 해석되기도 합니다. 히브리 정서에서는 마음이 배에 위치해있으며 긍휼이 뱃속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보다 아랫 사람을 불쌍히 여겨 자신의 떡을 조금 잘라주거나,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정도의 긍휼이 아니라, 헨리나우웬의 표현처럼, 고난이 가장 극심한 그곳에 들어가 거기에 자리잡고 함께 고통받기까지의 긍휼, 자궁이 흔들리고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내 몸 중심에서 나오는, 마음 깊은 곳의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먼저 생각할 때에, 주님의 손은 그 손끝만으로도 하늘과 달과 별을 지으신(시8:3) 바로 그 권능의 손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시지 않으신 것이 없고, 세상의 크고 작은 만사 중에 그의 손을 통하지 않고 되는 것이 없으며 세상의 존귀와 영광이 다 주의 손, 그의 능력과 권세 아래 있으니, 우리가 그를 떠나서는 내가 무가치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계획하는 바나 바라는 바나, 나의 능력과 작은 결정조차 하나님의 손안에 있지 않은 것이 없으며, 또한 죄인들의 운명조차 주님의 손 안에 있으니, 주님은 그들을 미끄럽고 위태로운 곳에 세워두셨으며, 주님이 정하신 때에 그들을 붙들고 있던 손을 놓는 순간 그들은 미끄러져 파멸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시73:18)

따라서 우리는 우리 마음이 주님 앞에 낮아져서, 우리가 움켜쥐고 있던 손을 주님을 향하여 펼치고, 손안의 모래와 같던 나의 권리와 교만은 내려놓은 채 기도와 간구를 주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대하6:29)

주님의 영광스런 능력을 보며 요술방망이라도 만난듯이 기뻐하며 나를 위해 휘둘러주기를 바라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내가 겸손케되어, 주님께 나의 처분을 맡기고 겸비케 되는 것은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그 능력과 권세의 존귀함과 영광 속에서, 나의 무가치함과 무능함을 깨닫고 우리의 손을 펼쳐 주께 복종하며 그의 긍휼을 바래야만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손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그의 주인 행세를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조나단 에드워즈의 표현처럼,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안에 붙들린 죄인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기댈 것은 주님의 긍휼하신 마음 뿐입니다. 하늘 권세를 버리고 절망이 가장 극심한 인간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그의 창자가 찢어지는 긍휼을 몸소 행하신 그 대속의 은혜 외에는 우리가 기댈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의 능력 뿐만 아니라, 그의 긍휼이야말로 존귀하고 영광스럽습니다.

저는 백화점 명품관만 쳐다봐도 작아짐을 느끼고, 산에만 올라도 작아짐을 느끼는데, 무한하신 주님의 존귀와 영광 앞에서 어찌 내 손을 그를 향해 펼치고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그의 긍휼로, 주께 손을 펼친 그의 백성들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인하여 구원하셨으니(디3:5),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의지할 뿐입니다.(유1:21)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