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아5:12)

아가서 5:10~16에 걸친 신랑에 대한 묘사, 즉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는 다니엘서 7:9~10과 요한계시록 1:13~16에 나오는 주님에 대한 묘사와는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예컨대 요한계시록의 좌우로 날선검이 나오는 주님의 입(계1:16)은 아가서에서는 심히 달콤하여(아5:16)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지는 입으로 묘사됩니다.(아5:13) 또한 요한계시록에서는 해가 강하게 비치는 것 같은 얼굴(계1:16)과 불꽃 같은 그의 눈(계1:14) 앞에서 그분을 보자마자 그 발 앞에 엎드려 마치 죽은 사람같이 되었지만(계1:17), 아가서에서는 향기로운 꽃밭 같은 그의 얼굴(아5:13)과 젖으로 씻은 듯한 비둘기 같은 눈(아5:12) 앞에서 사랑에 매료되어 그의 신부가 병인 난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처럼 그는 진노하였으나 사랑하셨고, 형벌을 내리셨으나 그 벌을 대신 받으셨으며, 원수되었으나 신랑되셨고, 심판주로 오실 것이나 변호인 되시니, 이같은 삼위 하나님의 모순적인 공의와 사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서만 성취될 수 있었습니다. 

불꽃 같은 그의 눈 앞에서 사랑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거듭난 심령을 가진 성도들 뿐입니다. 부패함이 용납되지 않는 최고선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며 그 심령이 새로워지지 않은 채로는 그리스도의 눈, 하나님의 눈을 즐거워할 수 없습니다. 

타락한 본성은 흠없이 깨끗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눈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나, 주님의 눈을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복된 사람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할 때에 주님의 눈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몹시 부러워지기에, 그런 성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먼저 그는 그리스도의 의를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마음을 감찰하시는 독수리같고 불꽃같은 주님의 눈 앞에서도, 모든 죄를 덮으시는 그리스도의 의를 자랑하며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기에, 그는 날마다 하나님 안의 모든 것을 누릴 것입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눈을 즐거워함과 같이 거룩함을 즐거워하니, 주님께서 육신을 부요케 하심으로 나의 거룩을 빚어가실 때나, 가난하게 하심으로 거룩을 빚어가실 때나 참 만족이 있어서, 가난할 때나 부할 때나 동일하게 항상 기뻐할 것입니다.

또한 그는 값진 보화를 발견하여 소유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비둘기 같은 눈을 즐거워하는  성도는 주님의 형상을 닮아 비둘기 같은 눈을 갖게 된 자들입니다.(아1:15) 그 눈은 본래 쇠하여서 진흙을 바른 것 같았지만(요9:6), 이제는 실로암 못에 씻은 것같이(요9:7) 새로워졌으니, 맑아진 성도의 눈은 주님 안에 담긴 모든 보화를 발견하여 그 보화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사람입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눈은 둘 사이의 관계를 드러냅니다. 내가 타락한 본성으로 주님을 대적하고자 하면 그의 눈도 나를 대적할 것이며, 멸시하고자 하면 내가 멸시를 받을 것이고, 내가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여 고개를 돌리고자 한다면, 주님도 그에게서 은혜의 얼굴을 가리우실 것입니다. 주님의 눈을 즐거워하는 성도를 주께서도 즐거워하시니(아1:15),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성도는, 언제나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눈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복있는 사람입니다. 이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니, 주님 외의 다른 것을 사모하기보다 주님을 즐거워하는 복을 사모합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