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중에서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아5:7)
세상에는 늑대가 우글거립니다. 그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눈에 힘 빡 주고 자신의 알량한 힘이라도 과시하며 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만 같습니다. 적당한 힘과 공격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만만하게 보이게 된다면 나는 억울하고 불합리한 일들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성도의 본성은 늑대나 사자가 아니라 순한 양과 같습니다. 성도는 세상이 업신여기고 조롱할만한, 양처럼 순진한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양 같은 우리를 세상이 해하지 못하였던건 오직 목자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심 때문이니, 우리가 목자와 함께가 아니라면 세상으로부터 온갖 조롱과 부당한 폭력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우리를 세상에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셨습니다.(마10:16)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의 함께 하심을 구하며 간절히 기도하는데도, 하나님이 내게 보이지 않고 더욱 비참함 가운데로 내몰리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간절히 바라는데도 본문의 여인처럼, 세상에 고아와 같이 홀로 내버려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순한 양이 아닌 강한 늑대와 같이 되기를 꿈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비참함에 내몰린건 하나님의 악한 의지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성 때문이며, 하나님의 무능함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순찰하는 자들과 파수꾼이 오히려 여인을 희롱한 것처럼, 우리를 배반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외에 우리가 의지하던 모든 것입니다. 그냥 우리가 의지하던 건강과 우리가 의지하던 직장과 우리가 의지하던 관계가 나를 배반한 것이고, 무엇보다 내가 의지하던 나 자신이 나를 배반한 것입니다.
병이 낫기를 기도하는데도 낫지 않을 때, 우리는 육체의 연약함과 유한함을 생각하며 유한한 것들로부터의 구원을 열망해야 하고, 이 모든 문제의 근본인 본원적 죄성에 대하여 통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내가 원하던 시험에 붙기를 기도했는데 떨어졌다면 더욱 겸손하여 겸비케 되어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내가 내 자리로 돌아가서 그들이 죄를 뉘우치고 나를 찾을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들이 고통 속에서 나를 간절히 찾을 것이다.”(호5:15)
나에 대한 깊은 절망 가운데서 통회하며 겸비케 되어 오로지 주께 의존하며 그를 사랑하는 중에, 그는 나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얼굴을 구하는 심령은 자신의 무능함과 비참함을 깨달아 이제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조차 없어서 그 마음의 사랑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였고,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떠한 보호와 안전도 기대할 수 없어서 주님 안에 살기로한 그런 심령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하여 내가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던 바가 내 삶이 평탄하게 되어 가족의 병이 낫고 사업이 잘되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뵙게 되는 것이었는지 헷갈립니다. 육신은 썩어지나 영혼은 영원하니 육신에 속한 것들이 침탈당하지 않는 것보다 내 영혼이 침탈당하지 않도록 주님을 굳게 붙잡아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신부는 사랑하는 신랑을 되찾기 위하여 매맞음과 온갖 고초를 감수하며 온 성중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는 상처를 싸매시고 속히 우리의 고초를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보내어진 것이 고난과 고초를 감수하기 위함이며 고난과 고초를 감수함이 주를 만나기 위함이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과정을 통하여 구하는 것이 오직 주를 만나게 되는 것이라도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여 주를 떠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부당함을 당하지 않고자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힘의 과시 또한 두려움에서 나온 허풍에 불과하여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없었습니다. 거듭나기 전의 옛 방식을 고수한다면 나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쓰러질 것이고 의지하던 것에 배반당할 것이며, 이 역시 단지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한 덧없는 투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살아가는 방식은 주님의 양이 됨으로써, 목자를 따르며 사랑과 보호와 교제 가운데서 생존이 아닌 참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실 것입니다.(신32:1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지켜주시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사망조차도 말입니다. 실상,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었으며, 하나님께서 되찾아주시고자 하는
것은 우리 안의 하나님의 형상과 그로 인한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나는 세상의 유혹 속에서 오늘도 늑대가 되기보다 순한 양이 되어 목자이신 주님만 따르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겠지만, 하나님은 사랑 가운데서 늘 보호하여주시며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시고 갚아주실 것입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