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아5:6)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우리의 건강과 경제적 안정과 기타 먹고 사는 문제와 죄를 억제하는데 필요한 여러 일반은총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회개와 거듭남으로 구원에 이르는 특별은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물론 일반은총 역시 매우 풍성하게 주시지만, 우리에게 오신 본 목적은 아니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그의 의지와 필요에 따라서 때로는 넘치게 주시기도, 때로는 그 일부를 거두어가시기도 합니다.

때때로 하나님을 한동안 떠나있다가 다시 찾으려 할 때, 성경을 펼쳐도, 새벽기도에 나가도 그에게로 가는 길을 찾기가 막막하여 말씀과 기도에 더욱 매진하게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고통을 호소할 때는 대부분, 하나님의 얼굴이 아니라, 그가 주셨던 일반은총의 수단들이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건강에도 이상 없고 먹고 살만한데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며 눈물로 호소하는 사람은 잘 만나기 힘듭니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현실적인 어려움에 당면해서야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합니다. 정말로 오직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심령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원래 보이지 않는 분입니다.(히11:27) 그리고 그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는 우리의 건강과 재물이나 가족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히11:1) 그는 우리의 기도제목과 소원들의 성취로써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써 자신을 또렷이 계시하십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증거로서 붙들어야할 믿음은, 주께서 영원토록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며,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시고,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서(애3:31~33),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는 믿음입니다.(고후4:8)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인 이 믿음을 파헤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은총을 사모하기보다 일반은총을 사모하여 그리스도께서 내 곁에 오신 이유를 격하시키고 일반은총을 우상시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깊어지게 하기 위하여 잠시 스스로 숨어계시기도 합니다.(사45:15) 그러나 그것이 그가 떠난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칠 때는 잠시 외면함으로 그 잡은 손을 놓아야할 것입니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가르쳐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손을 잠시 놓으신 것 같다면 내가 서게 하기 위함이며 내가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걷게 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넘어지더라도 스스로 일어나지못하여 다시 안아주고 업어주기를 바라기보다 나의 걸음마를 지켜보시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듯 오직 주의 얼굴을 바라보아 다시 일어설 힘 얻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외면 아닌 외면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만족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다른 것들로만 만족을 얻는다면 나는 여전히 마음이 가난한 영혼입니다. 마치 과자와 아이스크림 맛에 취하여 밥을 먹지 않는 아이와 같습니다. 때론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빼앗듯 우리를 향한 일반은총들을 거두어갔을 때 우리는 비로소 신령한 떡이요 음료이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배부르게 되 것입니다.

과자를 빼앗기고서 “우리 엄마 아냐!”하고 땡깡 부리기보다 그분의 사랑의 얼굴을 찾고 그의 얼굴로부터 안심과 평안을 찾게 되길 바랍니다. 빼앗아간 것 같을 때에도 지나고 보면 빼앗긴 바가 없으며 모두 부어주시고 채워주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