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 빗장에 듣는구나”(아5:5)

쪼개지거나 상처입은 나무 껍질 사이로 나무의 몰약즙이 떨어지듯, 그리스도에게서는 성도를 위한 은혜가 떨어집니다. 혈루증을 낫고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던 여인의 심정이, 그에게서 떨어지는 은혜에 닿고자 하는 간절함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막5:28)

그런 그리스도께 사랑의 두 손을 내미는 신자의 손에서도 몰약이 떨어질 것입니다. 옥합을 깨뜨려 그리스도께 부었던 여인의 손처럼 말입니다.

은혜는 흔적을 남깁니다. 여인이 문을 열 때 문빗장에는 그리스도께서 손내미실 때 남기신 몰약이 흘렀습니다. 여인이 망설이는 사이에 그는 몸을 숨기셨지만, 그 흔적은 남았습니다.

사단과 대적이 밟고 지나갔던 자리에는 폐허가 된 영혼이 그 흔적으로 남았지만,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 나는 내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갖게 되었으니(갈6:17), 그 흔적은 내가 그리스도를 닮아간 흔적입니다.

돌이켜보면 그리스도, 즉, 하나님께서는 내게 많은 은혜와 유익을 남기셨습니다. 내가 살아온 모든 날이 그분의 흔적이며,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렇다한들 그가 지금 내 곁에 계시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이 생에서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은혜는 우리를 주께로 인도하는 마중물인데, 우리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그가 남기신 몰약의 향기도 휘발될 뿐입니다.

흔적은 흔적일 뿐 우리는 그분의 지금의 얼굴에 오롯이 집중해야 합니다. 그가 밤이슬을 뒤집어쓰듯(아5:2) 십자가의 붉은 피를 뒤집어썼던 사실에 우리가 긍휼과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또는 그에게서 떨어지는 몰약의 은혜가 내게 실제적으로 많은 유익을 주었다고 할지라도, 내가 그의 본성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가 내게 오신 목적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그는 이미 내 곁을 떠나신 바와 같을 것입니다.

그가 뒤집어쓴 피와 고난 때문에 감동과 연민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의 멀끔한 모습에도 그의 본성 때문에 눈물 흘리고 그의 본성 때문에 달려가 안길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에게서 떨어지는 몰약이 향기로운 기쁨의 몰약이 아니라, 주님의 시체 위에 부어진 죽음과 고난의 몰약(요19:39)이라 하더라도, 그분과 함께 장사되기까지(롬6:4) 그 분 앞에 달려가 안겨서 십자가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은,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본능적인 죄성은 그리스도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 빗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몰약과 같이 떨어지는 그리스도의 은혜는, 성령께서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듯, 마음의 빗장에 떨어져 부드럽게 하였으니 우리는 비로소 그 빗장을 자유로이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방안으로 들어온 몰약의 향기를 취할 것이 아니라, 빗장을 열고 나가 그리스도의 얼굴을 대면해야 합니다.

오늘 내가 누린 은혜는 모두 그리스도를 마주하고 하나님을 마주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누리든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은혜입니다. 마음도 풍족하고 기쁨도 넘치는 하루였는데 하나님을 만나진 못했다면 내일은 풍족하기보다 결핍하고 기쁘기보다 낙심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은혜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