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아5:4)
그리스도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거듭난 성도 안에 언제나 함께 계시지만, 내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내 생각 중에는 그리스도가 계실 때도, 계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저는 하루중에 너무나 자주 그리스도를 잊을 뿐만 아니라, 죄의 유혹 가운데서는 그리스도를 애써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빛이시니, 그는 작은 틈을 통해서도 우리 안에 일하시며 그 작은 틈을 통해서 존재감을 드러내십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일들을 잊고 있다가도, 바람이 불어오듯 성령님은 어느 틈엔가 내 생각 가운데로 들어오시니, 정말 감사한 것은 하루 중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날은 없다는 것입니다.
비집고 들어온 죄의 유혹이 불붙듯 커지는 것 이상으로, 비집고 들어온 그리스도를 생각함은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세상 근심을 잊고 그 아름다움과 기쁨에 온 영혼이 휩싸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죄의 유혹은 허망함과 후회를 남길 뿐이지만, 비집고 들어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주님과의 동행의 추억과 발자취를 남기심으로써 천국 소망과 기쁨을 더욱 강화합니다.
그리스도는 여러 생각 중에 불현듯 생각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쁜 사건을 통해서, 때로는 고난과 아픔을 통해서, 또는 통독대회나 수련회와 같은 교회의 각종 프로그램이나, 당장 내 책상 위와 휴대폰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의 손을 내미시며 우리 생각과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니, 우리는 그 내민 손을 붙잡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내미시는 은혜로운 손을 잡게 되진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손을 잡는 대신 세상의 유혹이 내민 손을 잡은 누군가는,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먼저 문을 연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의 손은 부패하여 그에게 내밀 수도 없었지만 그는 먼저 하늘을 향한 문을 우리에게 활짝 여셨고, 먼저 손을 내밀어 우리를 동하게 하시어 우리의 마음 문 역시 그를 향해 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때때로 그리스도를 잊은 것 같을 때에도 그는 반드시 손을 내미실 것입니다.
내가 병이 든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보다, 재정을 잃은 것보다 더욱 두려운 것은, 내 마음의 문이 주께 닫혀 있어서, 내가 화평에 대하여 닫혀 있고 평안에 대하여 닫혀 있으며, 무엇보다 참생명에 대하여 닫혀 있고, 저 하늘의 낙원에 대하여 닫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저 하늘을 향한 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사면초가일때나, 진퇴양난일때도, 그리스도께서 작은 틈으로 손을 내미신 그 문만이 우리가 빠져나갈 구멍이며, 그 문만이 우리가 현재의 어려움을 능히 이기고 당당히 지나갈 개선문 될 것입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오누이가 문틈으로 들어온 호랑이 손과 어머니의 손을 구별하듯, 사단의 유혹의 손과 주님의 손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누이가 호랑이의 손을 구별한 것은 어머니의 손을 많이 보아 익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의 손에 대한 익숙함을 구하는 가운데,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별력을 주실 것입니다.
호랑이가 물리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오누이에게 유혹의 손을 내밀었던 것처럼, 사단은 우리에게 유혹의 손을 내밀 뿐이며, 그는 겁주려는 우는 사자에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의 전인 우리를 함부로 넘볼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차려진 신방은,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된 나 둘만을 위한 공간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모두 하나님의 전이니, 우리가 때론 흔들리더라도 결국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주님 외에는 없습니다.
때론 모든 것이 엉망일 때가 있을 것입니다. 머리속이 혼란하여 도무지 주님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 안을 차지할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 외에는 없으니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아갈 것입니다. 그는 작은 틈을 통해서도 내 삶에 들어오시며 일하심을 믿습니다.
저는 문을 열였을 때 문 건너편에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실 때 참 좋았습니다. 문 너머에 아무도 계시지 않은 절망감을 알게 되기 전에, 주님 내미신 그 손을 붙잡아 내 안에 모실 것입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