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아4:13)

우리의 마음은 모두 공허하고 혼돈한 창조전의 지구와 같았을 뿐만 아니라(창1:2), 마음을 적셔줄 비도 내리지 않고 마음을 살펴줄 사람도 없으니 우리 마음엔 초목이 자라지 않았습니다.(창2:5)

푸르름을 원하여 내 마음에 꽃과 나무를 심으려 하면, 나비가 아니라 메뚜기떼가 날아와 온 마음을 덮고 모든 초목을 먹어치우니 내 마음은 황무지와 같았습니다.(출10:12)

그러나 굳은 땅과 같던 굳은 마음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적셔졌을 때, 굳은 마음이 성령님에 의하여 깨뜨려지고 부드러워졌을 때, 우리 마음에 초목이 자라나고 많은 열매와 향기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4장을 통해 혼인한 신랑과 신부 간의 은밀하고 친밀한 하나됨을 묘사하고 있는 문맥상, 그리고 신부가 그리스도를 위해 잠긴 동산이라고 밝힌 문맥상, 성도를 통해 맺어지는 최상급의 과실과 향기는,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내가 회심을 통해 선한 의지를 갖게 되었다고 해서 내가 선한 행실로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때론 교만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여전히 불완전하며, 나의 선한 행실과 선한 노력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지 않으신다면 그 누구도 이롭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만했다면 반드시 실망할 것입니다.

회심을 경험한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세상 가운데서 투닥거리며 누군가를 실망시키기도 하고 때론 미움을 사기도 합니다. 

성령의 많은 열매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위함보다, 먼저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열매입니다. 나의 불완전한 사랑과 열매로 만족시킬 수 있는 대상은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나조차 기뻐하십니다. 열매의 본체시며 향기의 본체이신데, 어줍짢은 우리의 열매와 향기에도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시니 그것이 우리의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불만족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로 인해 만족을 느끼십니다. 그는 우리 행실의 양과 질을 보지 않으시며 그 양과 질로써 우리에게 부어지는 은혜를 결정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져서 하나님을 향하기 시작한 그 마음의 동기를 보실 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하나님 자신으로 하여금 만족하게끔 더 많은 지혜와 은혜를 지속적으로 부어주십니다. 그의 이름만으로도 충만하시고 스스로 만족하시는 분께서 나로 인하여 더욱 만족해하시니 이는 세상 무엇보다 나를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어줍짢은 선민의식과 은근한 우월감으로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타인은 커녕 나 자신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 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니(요일3:22),하나님께서는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실 것입니다.(히13:16) 나는 오늘도 나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누군가를 실망시키겠지만, 그가 나로 만족하시니, 나도 그로 인해서만 만족할 것입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