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아4:9)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마음을 빼앗기셨다는 이 표현이 참 좋습니다.

경험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마음을 빼앗겼다 함은 내 마음의 주도권을 잃고 사로잡힌 바 되어 언제 어디서나 그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모든 시간이 상대방을 향해있다는 의미입니다. 땅과 하늘의 모든 정사를 주관하시는 분께서 나에게 그 마음을 빼앗겼다 함은 세상 모든 정사 가운데 나를 향하신 사랑이 있고 땅과 하늘 가운데 나를 향하신 사랑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일이 없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내 작은 눈길 하나에도, 내 목의 작은 장식 하나에도 그 마음을 빼앗기셨습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가 일주일 중 6일을 방탕하게 살다가 주일 예배에 출석하여 잠시 눈길을 보내드리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은 옴짝달싹 못하시는 분이니, 내 마음대로 하나님께 무엇이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바라보고 목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빼앗길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열망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열망이 더욱 크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도가 거듭남과 성화를 통해 겪는 변화가 전인(全人)적 변화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담의 타락이 전인적 타락이었던 것처럼, 성도의 거듭남 역시 전인의 변화로서 우리의 인격 전체에 영향을 주는 변화이며, 성화는 성도의 전인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이라, 우리의 모든 영역과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 새롭게 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비둘기 같은 눈을 가진 성도는(아4:1) 홍색실 같은 입을 가진 자요 석류같은 볼을 가진 자며(아4:3), 다윗의 망대와 같은 목을 가진 자로서(아4:4), 하나님을 사랑하듯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며, 작은 소자에게 하듯 주께 하는 사람이니, 이것이야말로 앞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말하신 흠없는 아름다움입니다.(아4:7)

우리의 눈은 전인의 변화의 증표이며 우리의 목은 전인의 변화의 증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낡고 고장나서 폐기 직전의 냉장고를 새로 사면 그 안을 열어보지 않더라도 문 손잡이만 바라봐도 마음이 흐뭇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작게 행하시는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불행중 다행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 보기에 작아보이는 일들은 새 냉장고의 손잡이를 여는 일과 같습니다. 나에게 마음을 빼앗겨 나를 위하여 모든 정사를 새롭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실마리인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행하심에 감질나는 것은 없습니다.

나름대로 교회에도 열심히 나가고 기도도 열심히 하였는데 만족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을 관대하고 능력있는 나의 조력자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하나님은 조력자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 내 눈을 한 번 바라보시는 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이 녹아내리고 내 마음에 꿀이 떨어져야 할 것입니다. 작은 것으로부터 전체를 볼 줄 아는 눈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합니다. 그 눈에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빼앗기십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