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아4:7)
앞에서, 신랑이신 그리스도는 신부의 몸을 눈, 머리, 이, 입술, 뺨, 목, 가슴 일곱 부분으로 나누어 그 아름다움을 묘사했습니다. 성경에서 7은 완전수로서, 신부의 모든 지체의 아름다움, 즉, 흠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특히 이 흠없는 아름다움은 우리의 부활한 육체의 아름다움을 소망하게 하며, 교회 각 지체의 아름다움을 소망하게 합니다.
아가서에는 성도와 그리스도간에 서로 화답하는 형식이 많이 드러납니다. 성도를 흠없이 아름답다 하시는 그리스도께 나 역시도 “그리스도께서는 흠이 없으십니다” 하고 자신있게 화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내가 사는 세상은 흠 없지 않으며,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내 입장에서 부조리하고 결함 투성이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고 쉴 틈을 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을 하나님께 돌리기도 합니다. 마치 세상의 부조리가 하나님의 결함 때문인 것처럼 말입니다. 당장의 만족만 놓고 본다면 알라딘의 요술 램프만도 못해보입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의 일들에 대하여 흠 없다 여기고 있는지요.
생각해본다면, 술람미 여인은 그 외모가 아름다운 여인은 아니었습니다.(아1:6) 마찬가지로 우리도 겉사람은 후패하였으나(고후4:16), 주님께서는 우리 겉사람 안에 숨겨두신 썩지 않을 거룩한 새사람, 속사람에 숨겨진 주님의 형상을 바라보고 그 사랑을 나누십니다. 그는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만이 아닙니다. 칼빈의 설명처럼 하나님의 형상의 주요 좌소는 영혼에 있지만, 사람의 모든 가운데, 심지어 육체조차도 그 형상이 어느 정도라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기독교강요中) 더욱이 우리의 팔다리와 각 몸의 부분들이 각자 그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오직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의지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후패한 육체마저 아름답다 여기실 것입니다.
우리의 겉사람처럼, 우리가 사는 겉세상도 부패와 오류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 안에서 속사람(거듭난 새사람/엡3:16)을 발견하시듯, 우리 역시 자연과 만사 가운데 하나님이 펼치시고 숨겨두신 하나님의 흔적(계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정권으로 모든 것을 통치하시며(시103:19), 해와 달과 별과 같은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물론, 그들의 움직임까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지 않은 것이 없어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주님의 뜻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하나님이 계획하신 선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레고 블럭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조립전의 레고 조각들은 각지고 모나고 그 모양이 제각각이라 딱히 쓸모 없어보입니다. 오히려 어떤 것들은 너무 작거나 편평해서 다루기도 힘들고 머리만 아프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모든 블럭을 뒤집어보면 서로 딱 맞는 홈이 숨겨져 있고, 각 조각에는 설명서에 적혀진 제작자의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블럭 조각마다 숨겨진 홈과, 동봉된 설명서로 인하여 블럭은 하나가 되고, 이 과정이 매우 즐겁기에 우리가 완성된 장난감이 아니라 수고를 감당하면서까지 블럭을 구매하는 것입니다. 완성된 블럭은 흠없이 완벽하게 연결됩니다. 그래서 많은 조립 경험을 가진 이들은 조립 전의 각 조각들마저 흠없이 아름답다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들과 세상의 소식들은 언뜻보기에 내게 무의미하거나 불편해보이고 불합리해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블럭에 숨겨진 홈처럼, 세상 모든 곳, 모든 일에 하나님의 흔적(계시)을 숨겨두셨고 그의 계획을 숨겨두셨으니,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내게 선을 이루는 과정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안다면, 나의 오늘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그의 일들을 흠없이 아름답다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인생의 조각들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안에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 흠없는 아름다움을 아직 다 알지 못하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이러한 믿음이야 말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엡5:27)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