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아4:2)

오늘의 본문은 눈과 머리털에 이어 신부의 치아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바빠서 우리가 열심히 기도할 때서야 우리 영혼과 삶을 흘낏 들여다봐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항상 우리를 조목조목 들여다보시고 지켜보시며, 작은 죄에도 슬퍼하시고 작은 순종에도 기뻐하십니다.

다른 남편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 아내에게도 눈과 머리카락과 이와 입술과 뺨 등 하나하나 빠짐없이 묘사해가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을 고백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성도를 향한 사랑은 그러하니 이 얼마나 크신지요.

외모를 꾸미더라도 그 내면이 아름답지 않으면 회칠한 무덤과 같습니다. 우리 내면은 숨겨질 수가 없어서 곧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중 하나가 ‘이’라고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입을 다물어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속으로 날카로운 이빨로 적의를 숨기고 있다면 곧 드러나게 됩니다. 얼굴은 닦았어도 이를 닦지 않았으면 내면의 더러움은 곧 드러납니다.

성도의 이는 방금 목욕한 양떼와 같이 매우 흴 뿐만 아니라, 모두가 질서정연하여 가지런하고 빠짐없이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창조의 원형은 이 ‘질서’입니다. 순결함도 이 질서에서 나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아담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질서 가운데서 조화로웠지만, 불순종의 죄가 들어왔을 때, 우리는 무질서 가운데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어진 질서는 거듭남과 함께 부분적으로 회복되고 신랑되시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완전해질 것입니다.

원빈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천국에서는 저도 원빈과 같아질테니 기대하라고 합니다. 다소 무질서한 내 얼굴에도 원빈과 같이 질서가 잡힐거고, 무질서한 내 몸매도 원빈과 같이 질서가 잡힐 것입니다. 물론 원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령하고 아름다운 몸이겠지요. 실제로 우리의 무질서한 삶이 우리의 외모까지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지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요즘 취미로 작곡을 배우는 가운데, 정말 많이 생각하는 것은 규칙과 질서 속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저같이 즉흥적인 사람에게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화성악을 알고 간단한 규칙만 외워도 저같은 초보자도 아름다운 음악 비슷한 것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 안에서 창의성과 개성도 드러낼 수 있지만, 규칙과 질서가 없는 가운데서의 개성은 듣기 힘든 불협화음이 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서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외모 뿐만 아니라 그 마음까지 순백의 신부와 같이 순결하고 질서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이며 기독교 사상가인 파스칼은  성도의 마음의 질서, 곧 사랑의 질서란, 초자연적 은총에 의하여 변화된 새 마음이며, 이는 하나님을
향해 기울어져 있어 그 사랑이 하나님을 향해서만 나아가는 마음입니다.

타락한 본성이란, 마음이 나 자신을 향해 기울어져 스스로는 하나님을 향해 방향을 전환할 수 없는 본성이며, 모두의 마음이 각자 자신을 향해 기울어져 있으니 세상 전체로서도 무질서하고 혼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파스칼에 의하면 인간은 실존적으로 불안하고 기이한 존재라,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한 오르간과 같습니다. 이 오르간에는 질서가 없어서 아름다운 화음을 연주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내 영혼이 혼돈하고 내 하루가 혼돈하다면, 세상과 불협화음이 있고 하나님과 불협화음이 있다면, 하나님께로 돌아와 순종과 사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새로워진 마음의 질서 가운데, 내 하루가 아름다운 오르간 하모니와 같기를, 내 하루가 아름다운 찬송과 같기를 소망합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