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기둥과도 같고 몰약과 유향과 장사의 여러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도 하고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고”(아3:6)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혼인 잔치를 위한 행렬이 시작됩니다. 연기 기둥과도 같은 향연 뒤로 혼인 예식을 위해 광야에서 나아오는 신부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연기 기둥과도 같고 불기둥과도 같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성도는 죄와 사망을 이기고 약속된 땅 천국으로 행진하는 광야의 백성들과 같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는 험난한 길이지만, 주님과 함께 함으로 인해 광야의 행진은 신랑 신부의 영광스러운 혼인 행렬로 변화할 것입니다.

그 모습은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들의 개선 행진처럼 영광스럽고 위풍당당하기까지 합니다. 

여인을 검다 하던 이스라엘의 여인들도 ‘저게 누구인가’ 하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할 것입니다. 몰약과 유향과 여러가지 향품으로 단장된 신부는 그리스도께서 향기로운 제물로 자신을 드리심으로써(엡 5:2), 중생하고 성화되어 아름다운 인격으로 변화된, 향기로운 성령의 열매를 맺은 자이며, 세상의 끝날 부활한 몸을 입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죽음의 행진을 계속할 때에도 성도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천국을 향한 믿음의 행진, 어린양의 혼인 잔치(계19:7)를 위한 믿음의 행진을 계속할 것이며, 성도에게는 죽음조차도 저 천성을 향한 영혼의 행진를 돕는 꽃가마가 될 것이니, 성도의 영광스러운 행진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일은 세상의 끝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을 때 반드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그리스도와의 교제 중에 이미 누려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깨어지지않을 언약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정혼한 자, 신부된 자들입니다. 우리의 눈은 혼인 예식 중인 신부의 눈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고 신랑되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하며, 그 발걸음은 진중하되 망설임이 없어야 하고, 그 모습은 정결하고 순결하여 그 마음을 다른데 두지 말아야 하며, 그 마음엔 새로운 날들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희망이 가득하고 신랑을 향한 믿음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그 모습이 향기로워서 많은 이들은 우리를 돌아볼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세상의 행렬을 좇지 말아야 합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본 장례행렬은 그 모습이 매우 화려하고 더러는 신나기까지 해서 어린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좇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 화려한 행렬의 끝은 무덤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사망을 향한 세상의 행진 가운데 있지 않음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 행진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멈춰지지 않으며, 발버둥친다고 해서 되돌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멈추시며 되돌리십니다.

오늘 휴일 가운데 누군가는 밖에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고 누군가는 집에서,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했든지간에 우리는 우리 영혼의 종착지를 향한 거침없는 행진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화려해보일 수는 있어도 주님의 임재와 주님의 동행 여부에 따라 우리의 가는 길이 영광스러운 혼인 행렬이 될 수도 있고, 영원한 사망을 향한 슬픈 장례 행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밤도 주님만이 나와 동행하셔서 나의 거침없는 발걸음이 천국을 향하고 있기를 소망합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