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아2:16)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성도는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으로써 우리 본성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죄를 미워하고 제거하려는 거룩한 열망을 불어넣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 있어서 영원한 보호를 받게 되었고, 우리 안에 계신 그가 우리의 능력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포도원의 여우를 잡으라는 주님의 요청에 기쁨으로 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포도원, 우리의 영혼과 교회, 더 나아가 앞으로 도래할 천국을 우리가 믿음으로 지켜내어 소유할 수 있는 근거는 이 연합에 있습니다. 내가 십자가 사건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십자가 사건이 나에게 정서적인 안정과 구원받은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하더라도, 이 연합이 없이는 내 안의 여우를 잡을 수 없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포도원을 소유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백합화와 같은 성도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시지만, 내가 주님의 양무리에 들어가있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목마르고 굶주리다가 맹수의 표적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있을 뿐만 아니라, 주님과의 연합을 누려야 합니다.

구원이 과거의 일로 느껴지거나 내세의 일로만 느겨지고 현재에 누려지지 않는 이유는 이 연합과 이로 인한 사귐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매우 실제적입니다. 요술방망이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뿅하고 나타내시는 방법으로써가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내 안의 죄를 드러내시고 날마다 나와 함께 죄를 잡아내어 영혼의 포도원을 지키시고 회복하시는 방법으로써 이 구원 사역은 성도의 오늘 하루에도 실제화되고 실재화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양떼를 기르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신랑과 신부의 연합을 넘어선,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는 이 신비로운 연합 없이는 구원도 없으며, 이 연합이 없이는 성도의 능력과 성도의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찾고자 밖을 향하겠습니까. 내가 있어야 할 유일한 곳은 그리스도시고 내가 소유해야 할 유일한 것도 그리스도십니다. 이보다 더한 능력이 없고 이보다 더 나를 존귀케 하는 것도 없으니, 오늘도 땅의 수치를 개의치 않고 내 안의 그리스도를 따라서 하늘의 영광을 사모하고 기뻐하는 그러한 성도 되면 좋겠습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