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2:10)

 

아버지가 병상에 계실 때 제가 기도한 것은 아버지가 이곳에 저와 함께 좀 더 머무르는 것이었지만, 아버지는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함께 떠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했던 것은 주님께서 아버지와 ‘함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평상시 기도한 것은 나의 곡간이 더욱 채워지고, 내가 발디딘 이 땅에 더 깊게 뿌리박아서 제 삶이 좀 더 안정되는 것이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믿는 신자에게 “일어나서 함께 가자”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백성을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불러내시고, 에굽의 포로생활에서 부르시고 옮기셨으며,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에서 다시 건지시고 옮기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죄로부터 떠나 십자가의 은혜 가운데 머무르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도를 구별하심으로써, 영원한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나그네의 삶, 성화의 삶으로 부르셨습니다.

함께 섞여 살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에굽인과 구별되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어린 양의 피, 그리스도의 피로써, 하나님의 백성으로 증거되어졌다는 점, 또하나는 지금은 땅에 잠시 머무르지만, 곧 떠날 채비를 하는 나그네로 살아야했다는 점입니다.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12:10,11) 장자의 재앙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이 명령, 즉, 곧 떠날 채비를 하라는 이 명령이, 땅의 나그네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정체성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하늘을 소망하여 땅에 잠시 머무르는 나그네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에굽과 같은 이 세상 가운데서, 땅의 권세를 쥔 자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러나 땅의 곡간을 쌓고 있는지, 떠날 채비를 하며 하늘의 곡간을 소망하고 있는지가 우리의 장래를 말해줄 것입니다. 땅의 곡간이 크면 클수록 근심은 커질 것이지만(전5:10~12), 땅의 권세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믿어 가나안의 유업을 소망하는 자(민27장)들은 자유와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천국은 이 땅에 만족하여 머물러앉아 있는 자들의 것이 아니라, 일어나 침노하는 자들의 것입니다.(마11:12) 우리는 그리스도로 힘입어 천국을 향해 힘있게 끈질기게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나그네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정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이는 나를 어여쁘다 하시며, 친히 나와 동행하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다면 천국도 광야와 같겠지만,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광야도 천국과 같을 것입니다.

오늘도 천국 본향을 소망하여, 말씀과 기도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께 우리의 나아갈 바를 물으며,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하루 되기를 소망합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