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 관하여 ...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식?

이미 헷 족속의 두 여자와 결혼한 에서는(창세기 26:34)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고 그를 메소포타미아로 보내며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과 야곱이 부모의 명령에 순종하여 메소포타미아로 간 것과 자기 아버지 이삭이 가나안 여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에게 가서 이스마엘의 딸이며 느바욧의 누이 동생인 마할랏을 자기 본처들 외에 또 다른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28:6-9,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보면 에서는 4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1) 아버지 이삭이 자기 동생 야곱을 축복하고 그를 메소포타미아로 보냈다는 것과 (2)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과 (3) 야곱이 부모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메소포타미아로 간 것과 (4) 자기 아버지 이삭이 가나안 여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이상하게도 에서는 한 가지 모르는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한 가지란 자기 어머니 리브가가 자기의 두 아내인 헷 족속의 두 여자로 인하여 얼마나 마음에 근심을 하였고(26:35) 또한 사는 것이 지긋지긋할 지경이었다(27:46, 현대인의 성경)는 것입니다. 현대 말로 한다면, 맏아들 에서는 고부갈등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에서가 또 한 가지 몰랐던 것은 자기 어머니 리브가가 자기 동생 야곱으로 하여금 자기가 받아야 할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빼앗아가게 한 것입니다(1-36절). 즉, 에서는 야곱의 배후 조종자가 자기 어머니 리브가였던 것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에서는 부모님의 마음, 특히 어머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에서는 자기가 선택하여 한 이방인 여인들과의 결혼이 얼마나 부모님의 마음을 근심케 하며 특히 어머니 리브가의 삶에 낙이 없게 만들었는지 무지했던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식에게 적용되는 말이 "무자식 상팔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부모님이 믿음으로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위가 자신의 아내에 관하여 장인과 장모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거나, 며느리가 시어머님이 자신과 남편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개입해서 부부 관계를 힘들게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부모님이 믿음으로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참고: 창세기31:31).
 

부모님이 자녀를 편애하는 이유를 아는 자녀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아버지 이삭이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의 제일 좋은 옷을 가져 다가 자기가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는 어머니 리브가를 보면 어쩌면 야곱을 사랑한 이유는 이3가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1) 남편 이삭이 능숙한 사냥꾼이 맏아들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였기에, (2)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어서 집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했기에, (3) 에서가 헷 족속의 두 여자와 결혼했으므로 그 며느리들로 인해 마음에 근심이 있었고 사는 것이 낙이 없고 지긋지긋할 지경이었기에(창세기 25:27-28; 26:34-35; 27:15, 46, 현대인의 성경). 부모님이 자녀를 편애하는 이유를 아는 자녀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부모를 떠나지 못한 남자

부모를 떠나지 못한 남자는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두 사람이 한 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마음은 될 수가 없습니다(창세기 2:24; 에베소서5:31, 현대인의 성경).
 

부모의 생명과 자식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특별히 사랑하였던 라헬이 낳은 요셉(창세기 37:3, 현대인의 성경)이 맹수에게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44:28, 현대인의 성경)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는데 라헬이 낳은 또 하나의 아들은 베냐민에게 마저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면 백발이 된 자기를 슬픔 가운데서 무덤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42:38, 현대인의 성경, 참고: 44:29, 현대인의 성경). 그 정도로 아버지 야곱의 생명과 야들 베냐민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었습니다(44:30). 그래서 야곱의 아들 유다는 이집트 총리(요셉)에게 "우리가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 만일 이 아이가 우리와 같이 가지 않으면 아이가 없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죽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백발이 된 아버지를 우리가 죽이는 셈이 됩니다 ...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고 어떻게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는 것을 내가 차마 볼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30-31절, 34절,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제가 몇 년 전 딸 아이에게 '아빠는 첫째 아기 주영이가 내 품에서 죽었는데 너까지 죽으면 아빠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을 것 같다'라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부모의 생명과 자식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다는 말씀(30절)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부모의 생명이 사랑하는 자녀의 생명과 서로 하나로 묶였 있었는데 그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그 부모님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아버지 야곱은 10명의 아들들 중 9명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있었던 모든 일을 들은 후 자루 속에 들어있었던 돈 주머리를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내 자식들을 잃게 하는구나! 요셉도 없어지고 시므온도 없어졌는데 너희가 이제 베냐민마저 빼앗아 가려고 하니 모든 일이 다 나를 괴롭게만 하는구나." 그러자 맏아들 르우벤은 아버지 야곱에게"내가 만일 베냐민을 아버지에게 데려오지 않으면 나의 두 아들을 죽여도 좋습니다. 그를 나에게 맡기십시오. 내가 책임지고 데리고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한다. 그의 형은 죽었고 그만 남았는데 만일 너희가 그를 데리고 가는 도중에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너희는 백발이 된 나를 슬픔 가운데서 무덤으로 내려 보내는 자들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창세기 42:35-38, 현대인의 성경). 아버지 야곱의 심정은 9명의 아들들이 요셉과 시므온을 잃게 하였는데 베냐민마저 잃을까봐 애굽으로 데려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베냐민마저 잃으면 슬픔 가운데서 무덤으로 내려가게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 야곱의 생명과 아들 베냐민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44:30). 부모의 생명이 사랑하는 자녀의 생명과 서로 하나로 묶였 있었는데 그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그 부모님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