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아1:14)

 

저는 꽃 선물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아내는 꽃보다는 좀 더 실용적인 선물을 좋아합니다.

꽃이란 것이 참 신기합니다. 때론 실용적이지 않을 때조차, 그저 바라만봐도 기쁘니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꽃과 같다 말하는 심정은 어떤 심정일지 잠시 생각해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엡5:8)

먼저,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려면, 거듭난 우리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빛이 밝히 비취어지고 있어야 합니다. 어둠 속에서는 꽃이 자라날 수도, 아름다움을 분별할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잔칫집에나 상가집에나 늘 꽃이 함께 하듯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성도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시원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꽃과 같이 여기는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주시는 여러 실제적인 유익도 즐거워하지만 그의 아름다움만으로도 기쁨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꽃을 바라보면 세속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잠시 잊고 참된 아름다움의 가치를 발견하여 마음이 잠시 겸손케 되듯이, 성도가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그러합니다.

우리집 정원이나 화병 가운데 꽂힌 꽃이 아니라, 남의 집 담장이나 길가에 핀 꽃들만 바라보더라도 우리들의 마음에 기쁨이 있듯이, 성도는 이웃과 지체들의 심령 가운데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더라도 동일하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길가와 들판에 피인 꽃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서 부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나 동일한 기쁨을 제공하듯이, 그리스도의 아름다움 역시 모든 성도에게 공평합니다.

내가 어제 꽃을 바라보았더라도 오늘 또 바라보듯이, 우리는 매일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매일의 기쁨을 얻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꽃을 선물하듯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이에게 그리스도 자신을 값없는 선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꽃을 소유하게 되어 우리를 장식하고 그 꽃을 가슴에 품는다면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가 나의 아름다움과 향기가 되듯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그의 영을 우리 영혼 가운데 품는다면, 우리는 그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꽃이 있는 곳에 마르지 않는 샘과 생명이 있고 생명이 있는 곳이라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이며 새끼 염소들의 우물이란 이름을 가진 ‘엔게디’에 피어난 향기로운 꽃, ‘고벨화’와 같은 그리스도께만 우리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봄은 십자가를 바라봄입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아름다운 사역을 완성하셨고 향기로운 제물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꽃과 같이 여겨 그리스도를 바라봄에서 기쁨과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오늘 하루 되길 소망합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