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사슬을 은을 박아 만들리라”(아1:11)
“우리가 우리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창1:26) 하셨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저희를 잊지 않으시고, 이제는 “우리가 금과 은으로 여인(그리스도의 신부)을 위한 장신구를 만들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고 죄로 인하여 부패하였으나, 재창조를 통해서 아름다운 ‘새 생명’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히신 영화(장식품)로만 온전한 아름다움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겔16:14)
하나님께서는 금과 은처럼 가장 귀한 것들로, 그리고 썩지 않을 것들로, 우리의 영화를 더하시고 아름다움을 더하십니다.
우리의 죄성은 나 자신과 세상의 것들로부터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수치로 발가벗겨진 것이었습니다.(창3:7)
그리스도께서 그의 의의 옷을 입혀주셨을 때에야 우리의 수치는 가리워질 수 있었습니다.
나를 아름답게 할 수 있는 모든 것, 내가 가진 모든 영화는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로만 온전함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 우리 영혼 가운데 아름다움의 씨앗, 즉, 새로운 본성이 심겨지게 되었고,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께 복종하는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이 아름다움은 온전함을 이루어갑니다.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거룩’은 ‘성별됨’을 말하며, 여인의 아름다움이 왕과 관계를 맺는 가운데서 나오는 것처럼, 성도의 아름다움도 하나님과의 성별된 관계 가운데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들로써만, 그 온전함을 이루어갑니다.
돌아가신 저의 아버지를 떠올렸을 때 가슴 아픈 것은, 생전의 사진을 보았을 때 너무 늙고 지쳐 초라한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시는 길에 어차피 태워질 옷이라 생각하여 가장 경제적인 수의를 입혀드렸는데, 막상 입관할 때는 마지막 가시는 길인데 좀 더 좋은 옷을 해드릴걸 그랬나 하는 덧없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지막을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히시고, 하나님이 주신 영화로 옷입히셨다면, 그 모습은 세상 어떤 수의보다 아름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의는 화장되어지고 썩어지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옷과 장신구는 영원히 썩지 않습니다.
나의 모습이 어떠하든, 하나님이 주신 썩지 않을 것들로 인하여 나의 오늘이 아름답게 빛나길 소망합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