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아1:4)
왕이 술람미 여인을 그의 침궁, 즉, 가장 깊고 은밀한 교제의 장소에서 만나주시듯,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을 찢으심으로써(마 27:51) 우리를 그의 지성소로 초대하시고 우리와 가장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십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집 바깥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나의 죄성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었고, 나아가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도망가려 한들, 숨으려 한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니 우리는 마음 편히 쉴 곳도 우리의 영혼을 누일 곳도 없었습니다
내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모든 좋은 것의 원천(약1:17)이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떠한 기쁨도 좋은 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사귐을 경험할 수 있는 그의 지성소로 나아가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불타는 지옥불 위의 곧 무너질 썩은 다리 위를 위태롭게 걷는 자들이었으며, 우리 인생의 매 순간 역시, 도처의 우는 사자들로 인하여 위태롭고 힘겨웠습니다. 우리가 곧 무너지는 다리 위를 걷고 있음을 발견한다면 저는 반드시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의 지성소로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난처에서 기다리고 계신 분이 그리운 내 님이며, 그리운 아버지시라면 더더욱 달려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지성소의 기쁨을 모른다면, 우리가 천국의 기쁨도 모르는 것이고, 이 땅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천국의 사귐도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성소, 그곳은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갈 수 없는 곳이며(요6:4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육체를 찢으심으로써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히10:20,요14:6)이 되어주지 않으시면 갈 수 없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하며, 우리의 소망이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게 하니(히6:19) 우리는 하나님의 굳은 약속과 소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하나님은 우리 영혼 깊은 곳을 그의 지성소 삼으셨습니다. 이제는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우리가(롬3:24)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며(엡2:22),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 안에서(고후6:16) 하나님과의 풍성한 교제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의지하는 세상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휘장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욕망과 자기애 가득한 나의 마음이 하나님과 나 사이의 휘장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휘장을 찢으심과 같이, 우리 마음의 휘장도 찢으시는데, 내 마음의 휘장을 걷어내기 위하여는 내가 의지하던 세상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고 내 수고가 배반당하는 경험이 수반되기도 하며, 수치와 괴로움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수치와 괴로움 가운데서 신음하는 우리가 몸을 누인 침상은 신랑신부의 침소가 아니라 신음하는 환자의 병상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를 통해 환자의 병상마저, 신랑되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거룩한 침소로 변하는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시149:5)
그리스도께서도 앞에 놓여진 이 기쁨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심으로써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신 것입니다.(히12:2), 우리도 나를 담대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수치와 괴로움을 개의치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처녀들, 즉 주님의 몸된 교회의 기쁨입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은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으니(시84:10), 내가 이 기쁨을 더욱 사모했으면 합니다. 그 분의 성소에서 우리는 여호와를 기뻐하며 찬양할 것입니다.(시150:1)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