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아1:2)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 이르기 전까지, 우리는 많은 결핍을 경험합니다. 아니, 세상 속 사람들에겐 결핍이 있지만,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과 아직 허락하지 않으신 것이 있을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에덴 동산에는 많은 실과와, 허락되지 않은 실과(선악과)가 있었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통치 질서 아래에서 생명나무를 비롯한 동산의 모든 실과를 먹을 수 있었지만, 뱀의 꼬임에 넘어가 허락되지 않은 실과를 탐하여 동산의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재정의 부족, 건강의 어려움, 관계의 어려움 등 많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위하여 허락하지 않으셨거나 잠시 유보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부족함과 어려움이 우리의 절망과 낙심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갖지 못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더 좋고 충만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가서의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을 부요케 할 많은 보물도, 여인을 건강하게 해줄 궁중의 뛰어난 의사와, 다른 모든 필요와 부족을 채워줄 넘치는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여인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닌 입맞춤으로써 그의 사랑을 확증받길 원했고 그것이 여인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내 기쁨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우리 현실의 어려움은 우리의 죄된 본성을 자극하여 불만족과 낙심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하나님과의 당장의 참된 교제와 기쁨을 포기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저 멀리에 계신 분으로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이 노래(아가서)는 저 멀리 왕궁 어딘가에는 계시지만 내 곁에는 계시지 않은 그런 왕에 대한 짝사랑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이 노래는 내게 입 맞추기까지 나의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시는 분과의 사랑이야기입니다.
기도해도 기도한 바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우리에게 가리우신 것 같아서 세상에 홀로 놓여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내 삶에 안개가 가득차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찬송이 나오지 않고, 찬송하는 입술에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의 영을 나누어주셔서, 성도를 성전 삼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내게 입맞추기까지 늘 가장 가까이에 계십니다. 내 처지가 술람미 여인과 같이 보잘 것 없더라도 말입니다.
내가 의지하던 세상과 내가 의지하던 나 자신은 결국 실망을 가져올 뿐입니다. 얼마나 내 삶이 고달픈지요. 그러나 세상에 입맞추며 세상을 향하던 내 눈을 돌이켜 뒤돌아보면 언제나 그 분은 제게 입맞추고자 그의 얼굴을 저에게 향하고 계십니다. 이 돌이킴이 성도의 회심이며, 왕과 여인이 입맞춤 하듯 성도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이루게 되는 하나님과의 화평이며 평안이고, 최상의 포도주로 비유되는 천국의 기쁨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은 결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지극하신 사랑은 의와 평화가 서로 입맞추는(시85:10)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믿음 가운데서, 성도의 회심을 통해 현시(顯示)되는 것입니다.
내 형편이 나아지지 않더라도, 여전히 내가 술람미 여인과 같을지라도, 나의 눈을 내 형편에서 왕에게로 돌이켜, 그리스도를 내 주로 고백하며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나의 구원의 보증이며 기쁨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하지만, 성도의 기쁨은 성도의 삶 가운데 현시(顯示)되어 있습니다.
저는 돈이 많아서 많은 재산을 물려주시는 다른 아버지들보다, 병상에서 제 손을 살포시 잡고 계시던 아버지가 훨씬 좋았고, 의사 자녀, 검사 자녀를 자랑하는 아버지들보다 마지막까지 다른 환자들에게 내 ‘아들’이라며, 그저 저의 존재를 자랑하시던 내 아버지가 훨씬 좋았고,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그 어떤 유익보다도,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귓가에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그 시간이 더욱 소중했으며, 세상의 부귀영화를 약속하는 그 어떤 거짓 신들보다도, 스스로 낮아지시어 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좋습니다.
”여호와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시2:12) 우리가 병상 위에 있을 때나, 사업이 어려울 때나, 관계의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우리가 오직 바라고 즐거워해야 할 것은 왕이신 그리스도와의 입맞춤입니다. 세상 모든 것의 주권자이신 왕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친히 내게 오셔서, 입맞추심으로 나를 신부삼으시고 그의 궁정에서 영원히 함께 하게 하신 것을 확신함으로 소망해야 하며, 그것이 우리의 기쁨과 찬송의 근거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가난 속에서 풍요를 바라고 질병 속에서 건강을 바라고 보다 질 높은 삶을 바라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지극히 기도해야 마땅합니다. 다만,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은 내가 가난해지고 건강을 잃고 심지어 생명을 잃는다 할지라도 내가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니요, 나의 영혼이 결코 망하여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바라는 다른 모든 것들이 설령 헛되고 헛되게 될지라도, 그리스도와 입맞추어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의 입술의 열매는 기쁨의 찬송(히13:15)임을 성경은 분명히 합니다. 내 입술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고백하는 가운데, 기쁨의 찬송을 회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