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칭의론 (32)

 

 

 

 

[로마서 5장 12-21절]

 

 

우리가 “총체적 칭의론”란 대주제 아래 로마서 1장 18절부터 5장 11절까지 8가지 소주제를 이미 묵상을 했습니다: (1) 칭의의 필요성(우리 모두가 칭의가 필요함), (2) 칭의의 근원(성부 하나님), (3) 칭의의 근거(성자 예수님과 그분의 보혈), (4) 칭의의 통로(믿음을 통해서), (5) 칭의의 보편성(모든 믿는 자는 다 칭의를 받음), (6) 칭의의 목적(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심와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다하시고자), (7) 칭의의 예증(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다윗을 예를 들어서 증언함), (8) 칭의의 결과[화평을 누림(5:1),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함(11절)].  그리고 나서 우리가 “칭의의 확증”(확실하게 증거를 보여줌)이라는 아홉 번째 소주제 아래 로마서 5장 12-21절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를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여기서 “확증”이란 단어를 로마서 3장 5절에서는 ‘드러내다’, ‘드러내게 하신다’라고 번역이 됐고, 갈라디아서 2장 18절에서는 ‘만들다’라고 번역이 됐으며, 고린도후서 7장 11절에서는 ‘나타내다’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 여러 번역들의 의미는 ‘확실하게 드러내 알게 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칭의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다 죄인 되었을 때에 죄인인 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선언하시고 또한 우리를 의인으로 여겨 주시고 의인으로 대우해주시는 것이 바로 칭의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계셔서 우리를 중생케 하시고 또한 거룩한 삶을 살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 얼마나 참 놀라운 축복입니까.  이 크고 귀한 축복을 우리 모두가 받길 기원합니다.  즉, 우리 모두가 꼭 하나님께 칭의를 받아 이 귀한 축복을 누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5장 12절을 보면 칭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총체적 칭의론”이란 대주제 아래 제일 첫번째로 묵상한 소주제가 바로 “칭의의 필요성”이었습니다.  누가 칭의가 필요합니까?  로마서 1장 18절로 32절은 이방인의 죄, 즉 이방인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다 칭의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 이방인들입니다.  유대인들 외에는 다 이방인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방인들로서 어떠한 죄를 범하였습니까?  로마서 1장 19절32절을 보면 이방인들의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죄를 알게 되면 칭의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칭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로마서 2장 1-16절을 보면 판단하는 자들의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판단하는 자들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칭의가 필요합니다.  로마서 2장 17절로 3장8절을 보면 유대인들의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칭의가 필요합니다.  로마서 3장 9절로 18절까지는 온 인류가 죄인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 인류는 칭의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하였으므로(3:23) 칭의가 필요한데 이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서도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 죄의 값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우리 모두는 사망에 이르렀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고 또 우리 몸과 영혼이 갈리는 죽음을 맞이하고 또한 영원한 죽음(지옥)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이러한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다 칭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로마서 5장 12절을 보면 거기에서 끝나지 아니하고 칭의의 필요성을 더 밝혀주고 확증해 줍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 “한 사람”이란 말이 로마서 5장 12-21절 한국어 성경을 보면 10번이나 나옵니다.  그런데 원어 헬라어로는 12번이 나옵니다.  그 정도로 오늘 본문 로마서 5장 12-21절에서 “한 사람”이란 매우 중요합니다.  이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로마서 5장 15절과 17절 보면 이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5장 1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한 사람”은 바로 인류의 시조인 아담입니다.  이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 말씀은 아담이 죄를 범하기 전에는 이 세상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창2:17; 3:6)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3:23).  결국 아담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는 930세를 살고 죽었습니다(5:5).  이 육신의 죽음은 결국 “사망”인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계20:14).  이 둘째 사망은 곧 “불 못”입니다.  지옥 불 못에서 죽지도 않고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막9:48).  이렇게 아담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즉,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고 또한 이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습니다(롬5:1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3:21).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칭의를 입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영원한 형벌을 받아 영원한 지옥 불 못에 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영혼은 지금 천국에 가서 앞서간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시는 영원한 천국 복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칭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을 다시 보면 아담이 죄를 범하므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아담의 죄가 모든 에게 전가되었기에)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이와 같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음어 죄를 범하므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도 사망이 이른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아담과 같은 죄를 범했습니까?  히브리서 7장 1-10절을 보면 레위는 아브라함의 증손자로서(아브라함의 아들이 이삭이요 이삭의 아들이 야곱이요 야곱의 아들이 레위임)(10절)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을 때 레위는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레위가 이미 그의 조상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0절).  그래가지고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이와 같이”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 그 아담의 허리에 우리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범한 그 죄를 우리도 함께 범한(동참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죄입니까?  우리는 이러한 죄인이니까 칭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둘째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가죽 옷을 입히셨던 것처럼 우리 같은 죄인도 의롭다 칭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