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위의 것을 찾으십시다! (2)

 

  

 

 

 

[골로새서 3장 1-4절]

 

 

 

          여러분은 무엇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찾고 계십니까?  적어도 우리는 매일 순간 순간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그 물건을 찾고자 애쓰곤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열쇠를 잃어버렸을 때든지 또는 전화기나 지갑이나 신용카드 등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그 잃어버린 물건을 찾고자 부단히도 노력하곤 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중요시 여기는 건강을 잃었을 때에는 다시금 건강을 찾고자 매우 애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마태복음 7장 7-8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하나님 아버지께 문을 두드리듯이 구하고(기도하고) 찾으라고 하신 말씀으로서 우리가 기도하고 찾는 대상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11절).  이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내가 무엇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찾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그 의미는 ‘내가 하나님께 간절히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또는 ‘내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기도 제목은 무엇인가?’입니다.  저는 이 질문을 우리가 이미 묵상한 골로새서 2장 8-23절에서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과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한 4개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즉, 골로새 교회 성도들과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1) 영지주의(8-10절)나 (2) 율법주의(11-17절)나 (3) 신비주의(18-19절)나 (4) 금욕주의(20-23절)를 찾지 말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1) 오히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헛된 높은 영적 지식을 추구하는 영지주의나, (2) 하나님의 의보다 사람의 의를 추구하고자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여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종 노릇하게 만드는 율법주의나, (3) 천사 숭배나 환상을 통한 특별한 체험으로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신비주의나 (4) 자신의 육체를 벌함으로써 정신을 정화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금욕주의를 찾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 1절에서 ‘찾다’(to seek)라는 원어 헬라어의 의미는 “추구하다, 노력하다, 시도하다”로서 무엇인가를 얻고자 간절함과 근심의 생각으로 노력하고 추구함을 의미합니다(WSNTDICT).  여기서 근심의 생각으로 무엇인가를 얻고자 간절함으로 노력하고 추구한다는 의미를 생각할 때 저는 골로새서 3장 2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즉, 우리가 위의 것을 계속해서 찾기 위해선 우선 우리는 위의 것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지 말고 찾지 말아야 할 “땅의 것”은 무엇일까요?  골로새서 3장 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여러분은 땅에 있는 육체의 욕망을 죽이십시오.  음란과 더러운 짓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지나친 욕심은 버려야 합니다.  지나친 욕심은 우상 숭배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땅의 것”(2절)은 “이 땅에 있는 지체”로서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5절)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우리 육체에 남아 있는 죄를 의식적인 노력으로 죽이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맥아더).  바울은 이미 골로새서 2장 11, 13절에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과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전에는 죄와 할례받지 못한 육적인 욕망 때문에 영적으로 죽어 있었으나 육적인 죄의 몸을 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은 죽었기에(3:3) 거듭난(중생한) 새 사람으로서 이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2절)고 권면한 것입니다.  오히려 바울은 그들에게 “위의 것을 생각하”라[“하늘에 있는 것을 생각하”라(현대인의 성경)]고 권면했습니다(2절).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위의 것을 찾으라”고 권면했습니다(1절). 

 

저는 “위의 것을 찾으라”는 말씀 중에 “찾으라”는 단어를 묵상할 때 시편 42편 1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이시여, 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듯이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합니다”].  시편 기자는 마치 사슴이 목말라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그의 영혼이 주님을 찾기에 갈급했는데 우리 또한 주님을 찾기에 갈급해야 합니다.  특히 이 땅에 살면서 낙망과 절망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위기를 주님을 찾는 기회로 삼아 갈급함 심령으로 주님을 찾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