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하라” (4)

 

 

 

 

[골로새서 2장 20-23절]

 

 

 

마지막 넷째로, 사도 바울은 금욕주의(Asceticism)를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

 

래리 오스본 목사가 쓴 “당신의 열심이 위험한 이유”는, 크리스천들의 열정적인 신앙에도 함정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의 율법주의식 열정에 난색을 보입니다.  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의도하지 않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리새인의 모습을 지닌 채 살아간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에서 저자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종종 제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쉽게 ‘판단’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쉽게 판단하는 ‘신실한 크리스천’들을 “우연한 바리새인”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오스본 목사는 ‘우연한 바리새인’들은 헌신과 신학적 성숙, 열의, 재정적 헌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이들의 복음에는 예수님의 은혜와 긍휼이 없다고 꼬집는다.  어떻게 보면 ‘우연한 바리새인’(accidental pharisees)들은 종교적 열광주의와 금욕주의에 빠져 있다고 강조한다”(인터넷). 

 

여러분, 금욕주의란 무엇입니까?  ‘옥스포드 기독교 사전’ (The Concis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는 ‘금욕주의’(asceticism)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음: “금욕주의는 여러 종교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기 절제를 위한 수단으로, 악에 대항하며 선을 고양하기[높이 쳐들어 올리기(Naver 사전)]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수행 체계를 뜻한다”(인터넷).  위키백과는 “금욕주의는 정신에 속하는 것을 선이라고 하며, 육체에 속하는 본능이나 욕구를 악의 근원, 또는 악 그 자체로 보는 견해에 바탕을 두어 육체적인 욕구. 본능을 되도록 억제하는 것이 도덕에서는 본질적으로 중요하다는 관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21-23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과 라오디게아의 성도들과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들(1절, 현대인의 성경)에게 기본적으로 무엇을 경고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금욕주의”(asceticism)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금욕주의란 육체를 벌함으로써 영혼을 정화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을 합니다(Asceticism teaches that one can purify the spirit by punishing the body)(The Outline 성경).  골로새서 2장 21-23절 말씀입니다: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이 구절들은 엄격한 자기 태만(self-neglect)(23절), 자기 부인(self-denial)(21절), 심지어 자기 학대(self-infliction)를 통해 거룩함을 성취하려는 시도인 금욕주의의 무익함을 지적합니다(맥아더).  이러한 금욕주의는 일시적인 "사용하면 없어질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죄를 억제하거나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데 무력합니다.  너무나 자주, 금욕주의자들은 그들의 거룩함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려고만 합니다(맥아더).

 

마태복음 6장 16-18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너희는 금식할 때 위선자들처럼 슬픈 표정을 짓지 말아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슬픈 표정을 짓는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그들은 받을 상을 이미 다 받았다.  그러나 너는 금식할 때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라.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고 보이지 않는데 계시는 너의 아버지에게만 보여라.  그러면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런 규정들은 제멋대로 만든 종교적 숭배나 거짓된 겸손이나 자기 몸을 괴롭히는 데는 지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육체의 정욕을 막는 데는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골2:23,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런 것은 사람의 계명과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고(22절, 현대인의 성경) 이미 그리스도 함께 죽은 성도들은 이러한 율법적 규정에 복종하지 말아야 한다(20절, 현대인의 성경)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연합하여 세상의 모든 어리석음에서 새 생명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맥아더).

 

여러분, 참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참되이 받은 바 되어 그 생활에 변화를 받은 사람들입니다(약1:13, 벧전 1:23).  그리고 변화를 받은 사람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삽니다(박윤선).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사는 참으로 변화를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근거한 것이 아닌(8절, 현대인의 성경) 그저 사람들이 제멋대로 만든 계명이나 가르침을 따라 살면서 자기 몸을 학대하는(22-23절, 현대인의 성경) 금욕주의적인 바리새인과 같은 삶을 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