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하라” (2)

 

 

 

 

 

 

[골로새서 2장 8-23절]

 

 

 

 

둘째로,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Legalism)를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골2:11-17).

 

전에 제가 읽었던 책들 중에 “복음, 자유를 선포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타비티 얀야빌리 라는 사람은 "복음의 자유, 복음의 열매를 추구하라"는 제목 아래 이런 글을 쓴 것을 제가 읽고 도전을 받았었습니다: “거짓 가르침은 언제나 분열시킨다.  거짓 가르침이 있는 곳마다 율법주의와 비난의 영과 독선적인 판단 주위가 들어온다.  뒤이어 다툼이 일어나고 교만이 자리를 뜬다.  율법주의는 교회를 교만한 비난과 도발과 질투로 서로 물어뜯는 영적 사육제로 바꾼다"(얀야빌리).  저는 이 말에 공감합니다.  왜 교회 안에 교만한 비난과 독선적인 판단 주위(주된 자리)가 있으므로 결국 교회 안에 다툼과 분열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바로 율법주의 때문이란 말에 저는 동의합니다.  

 

율법주의(Legalism)란 무엇입니까?  주로 우리가 율법주의 라고 하면 성경에 나오는 외식했던 바리새인들을 생각하며 율법주의란 그들처럼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행위중심 구원관).  제일 근본적인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은 바로 구약의 율법을 순종하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즉, 율법주의는 자기 의(self-righteousness)에 기초한 신앙임.  그래서 율법주의에서는 정해진 규정들과 규칙들을 잘 지키는 자기의 헌신과 노력이 강조됩니다(인터넷).  그러나 이 자기 의에 기초한 율법주의적 신앙에는 2 가지 위험한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영적 우월감과 상습적인 죄책감입니다.  율법에 정해진 규정들과 규칙들을 남들보다 잘 지키는 사람들은 영적 우월감을 가지므로 자기들보다 못한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반면에 잘 지키지 못한 사람들은 상습적인 죄책감을 가집니다(인터넷).  우리는 이렇게 바리새인들처럼 영적 우월감을 갖게 만드는 율법주의가 바른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율법주의를 경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율법주의를 경계하면서 우리는 동일하게 율법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함.  이 율법을 가볍게 여기는 것을 가리켜 “반율법주의”라고 말합니다.

 

팀 켈리(Tim Keller) 목사님은 그의 저서 ‘센터처치’(Center Church)에서 복음의 능력을 앗아가는 2 가지 오류가 바로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인터넷): “‘율법주의’란 우리가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율법주의’에 걸린 성도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결국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 노력하기를 포기하면서 ‘반율법주의’로 돌아서는 경우도 있다.”  “이런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는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때 등장하는 두 가지 잘못된 대적들이다.  율법주의는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나님을 엄하고 두려운 분으로 오해한다.  반율법주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어떤 제약도 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정도로 오해한다.”  “싱클레어 퍼거슨은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 모두가 사탄의 거짓말을 믿고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하였다고 말한다.  율법주의자들은 “사랑한다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금하는 하나님이 무슨 하나님이냐?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고 그저 순종만 하라잖아”라고 말한다.  그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많은 것이 있고 금지한 한 가지가 있지만 하와의 눈에는 오로지 금지 명령만 보였다.  하와가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는 ‘율법폐기주의’로 간 것은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야 복을 주는 ‘율법주의’로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구원자가 되는 두 가지 길을 추구한다.  한 가지는 모든 도덕률을 깨뜨리고 스스로 자유롭게 길을 정하는 것이고(반율법주의) 또 한가지는 모든 도덕률을 다 지키고 지극히 선한 삶을 사는 길이다(율법주의).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골로새서 1장 15-23절 말씀 중심으로 “복음의 소망에 흔들리지 마십시다!” (2)란 제목 아래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를 위협하고 있었던 그 당시 이단 사상들 3가지 중 두 번째가 바로 ‘유대교적 율법주의’라고 배웠습니다.  여기서 ‘유대교적 율법주의’란 특히 육체의 할례와 음식의 규례와 특별한 절기의 준수가 구원과 관계있다고 주장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과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과 자기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1절)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고 마시는 것이나 명절이나 매월 초하루나 안식일에 관해서 아무도 여러분을 비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Legalism)를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그 율법주의를 주의할 뿐만 아니라 승리하기 위해서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11-15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The love of Christ)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그 그리스도의 사랑을 3가지로 말씀했습니다(The Outline Bible주석):

 

  •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살아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1-12절 말씀입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사람의 손으로 베푼 할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육적인 죄의 몸을 벗어 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땅에 묻혔고 또한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그분과 함께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할례”(11절)로 거듭났다(새생명을 얻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할례”란 ‘사람의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할 필요성을 상징했으며(참조, 신 10:16; 30:6; 렘 4:4; 9:26; 행 7:51; 롬 2:29) 하나님을 믿음으로 오는 죄의 깨끗함의 외적 표징이었습니다(롬4:1; 빌3:3).  신자들은 구원받을 때 ‘육체의 죄의 몸을 벗어 버리는 영적 “할례”를 받습니다(참조: 롬6:6; 고후5:17, 빌3:3, 딛3:5).  이것이 바로 거듭남(the new birth), 회심의 새로운 창조(the new creation in conversion)입니다.  이미 성취된 내적 변화에 대한 외적 확증은 이제 신자의 물세례입니다(행 2:38)(맥아더).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는 옛 생명에 대한 죽음과 새 생명에 대한 부활의 경험을 상징합니다(롬 6:3-5).  세례는 내적 경험의 외적 표현입니다’(KJV 성경 주석).  ‘구원하는 믿음이 없다면 세례는 공허하고 무의미한 예식일 뿐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요 1:12-13) 거듭남을 경험합니다’(KJV 성경 주석).  “’거듭난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탄생, 즉 거듭남은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고후 5: 17; 딛 3: 5; 벧전 1: 3; 요일 2: 29; 3: 9; 4: 7; 5: 1-4, 18).  요한복음 1장 12, 13절에서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의미로도 나타납니다(인터넷).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거듭남(중생)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젠 새생명(영원한 생명)을 가졌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알아가므로 율법주의와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3절 말씀입니다: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현대인의 성경) “여러분도 전에는 죄와 할례받지 못한 육적인 욕망 때문에 영적으로 죽어 있었으나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여러분을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할례”(11절)를 받지 못했을 때에는 “영적으로 죽어 있었”습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에베소서 2장 1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불순종과 죄 때문에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엡2:12)과 육신(롬8:8)과 마귀(요일5:19)라는 죄의 영역에 묶여 있어서 영적인 자극에 반응할 수도 없었습니다.  즉, 우리는 영적인 삶과는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습니다(맥아더).  고린도전서 2장 14절 말씀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현대인의 성경)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은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것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죽어 있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골2:13, 현대인의 성경).  에베소서 2장 5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죄 때문에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골2:13).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을 하나님께서는 죄의 자유(롬3:24)와 완전한(롬5:20; 엡1:7) 용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맥아더).  골로새서 1장 14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아들이 피 흘린 댓가로 자유를 얻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시편 32편 1절 말씀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현대인의 성경) “잘못을 용서받고 하나님이 죄를 덮어주신 사람은 행복하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알아가므로 율법주의와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세를 짓밟아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우리의 대한 혐의(charges against us)를 도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4-15절 말씀입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우리에게 불리한 율법의 채무증서를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권세를 짓밟아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그리스도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세를 짓밟아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우리의 대한 혐의(charges against us)를 도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대한 혐의를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현대인의 성경) “우리에게 불리한 율법의 채무증서”]라고 말씀했는데(14절) 여기서 “증서”(handwriting)란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를 인정하는 자필 채무 증명서를 말합니다.  ‘모든 사람(롬 3:23)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으며(갈 3:10; 약 2:10; 참조, 마 18:23-27), 따라서 사형선고 아래 있습니다(롬 6:23).  바울은 신자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양피지의 잉크를 닦아내는 것에 생생하게 비유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우리의 빚 증서를 완전히 지우시고 우리의 죄 사함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신자들의 모든 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혀 그들 모두를 대신하여 형벌을 지불하셨고, 이로써 완전한 형벌을 요구하는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만족시키셨습니다’(맥아더).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세를 짓밟아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우리의 대한 혐의(charges against us)를 도말하신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알아가므로 율법주의와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16-17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The liberty in Christ)가 있기에 성도들은 2 가지에 대해 비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The Outline Bible 주석):

 

  • 사도 바울은 음식(diet)의 문제에 관하여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6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  …”[(으)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즉, 우리는 아무도 다른 신자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은 날(days)의 문제에 관하여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6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즉, 우리는 어떤 거룩한 날을 지키지 않는다고 다른 신자를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과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과 자기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에게 이 2가지에 대해 비판하지 말라고 권면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은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17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들의 자유를 쓸데없고 사람이 만든 율법주의적인 규칙과 바꾸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참조, 갈 5:1)(맥아더).  갈라디이서 5장 1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현대인의 성경)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자유의 몸이 되게 하셨으니 여러분은 굳게 서서 다시는 종 노릇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자기-의(self-righteousness)에 기초한 율법주의적 신앙을 매우 경계해야 합닙다.  우리는 정해진 규정들과 규칙들을 잘 지키는 자기의 헌신과 노력으로 인해 맺은 위험한 열매인 영적 우월감과 상습적인 죄책감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율법주의를 주의할 뿐만 아니라 승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깊이, 넓게, 많이, 높게 깨달아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살아났습니다(골2:11-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셨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세를 짓밟아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우리의 대한 혐의(charges against us)를 도말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The liberty in Christ)가 있기에 음식(diet)의 문제나 날(days)의 문제에 관하여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16절).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은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17절, 현대인의 성경).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자유의 몸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는 굳게 서서 다시는 종 노릇 하지 말아야 합니다(갈5:1, 현대인의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