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 교회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사도행전 13장 1-3절).

 

 

우리 승리장로교회가 추구해야 할 영성은 무엇일까요?  저는 “사막의 영성”을 추구하자는 도전을 받습니다.  이 도전의 근거는 사도행전 7장38절에 나오는 “광야교회”(the congregation in the wilderness)란 말씀입니다.  사막의 영성이란 무엇입니까?  헨리 나우웬의 그의 책 “마음의 길”(The Way of Heart)에서 3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고독,” “침묵,” 그리고 “기도”.  즉, ‘떠나라, 침묵하라, 그리고 기도하라’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떠나 고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할 것을 말합니다.  그 목적은 우리 주님과 만나고 그분과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거짓된 자아(분노와 탐욕 같은 것)를 발견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고독은 변형의 용광로입니다.  우리는 고독의 자리에게 침묵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사실 침묵은 행동으로 옮기는 고독입니다.  왜 침묵합니까?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침묵은 말을 안하는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나우웬은 고독과 침묵은 기도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독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함께 있는 것이고 침묵을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은밀한 마음의 기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우리가 이러한 영성을 추구할 때 우리 승리장로교회는 안디옥 교회처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교회가 될 수가 있다고 믿습니다(행11:26).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교회는 찬송가 518장의 1절 가사처럼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찬양드릴 것입니다.  그러한 참 신자들이 모인 교회는 소문이 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22절).  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므로 구원의 역사가 이뤄지기 때문입니다(21절).  그러한 가운데 참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뜻대로 이웃사랑 함에 있어서 인종과 문화, 편견 등을 다 초월하여 구제합니다(29절).  즉, 우리 승리장로교회는 안디옥 교회처럼 그리스도인의 교회, 구제하는 교회, 소문난 교회가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 13장1-3절 말씀 중심으로 “안디옥 교회”라는 제목 아래 3가지로 안디옥 교회에 대해서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 승리장로교회도 안디옥 교회와 같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안디옥 교회에는 다양한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 말씀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성경은 안디옥 교회에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5 명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나바,” “니게르라고 불리는 시므온,” “구레네 출신의 루기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였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안디옥 교회에서 출신과 교육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동 목회를 감당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바나바는 구레네 출신의 레위인이요, 사울은 다소 출신의 랍비 교육을 받은 사람이요, 시므온은 북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요, 루기오는 구레네 출신이요, 마나엔은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정치적이고 귀족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안디옥 교회가 이방인 중심의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적인 말씀 사역자는 국제적인 성격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유상섭).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인종차별도 하지 않는 교회 (흑인인 니게르라고 불리는 시므온과 함께 사역), 빈부차이를 따지지 않는 교회 (신분이 높은 귀족인 헤롯의 젖 동생 마나엔과도 함께 사역) …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모습, 이 얼마나 우리 교회가 추구해야 할 모습입니까?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는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각 지체가 대등함 가운데 각자의 능력대로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다양성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서의 통일성을 추구하는 것이 교회의 이상적 모습입니다(인터넷).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귀족 교회”로, 차별이 상식화되어 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귀족 교회로, 성공한 사람만 생존하는 교회로 예수님의 몸이 병들어가고 있는 것은 이런 차별이 상식화되어 있다는데 있습니다(인터넷).  교회 안에서 무시하면서 서로 차별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환경, 성격, 빈부 차이, 학력 차이, 직장, 등등 교회 안에서도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교회가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다 한 가족이라는 사실보다 이러한 외적인 것들에 치중하여 주님의 뜻을 어기는 죄를 범합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마치 몸 안에 여러 지체가 있듯이 교회 안에도 다양한 은사들을 가진 일꾼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다양한 은사를 가진 일꾼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이 되어 교회의 통일성을 신실하게 지켜나아갈 때 교회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바라기는 승리장로교회 안에서 다양한 일꾼들이 세움을 받아 함께 교회를 섬기는 역사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안디옥 교회는 성령에 이끌림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 말씀입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가?  2가지로 오늘 본문 2절 말씀에 근거에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교회는 주님을 섬깁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3장 2절에서 “주를 섬겨”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섬기다’라는 단어는 2가지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박윤선): (a) 이것은 하나님에게 대한 개인적인 영적 교제를 가리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금식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 금식은 육적 쾌락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영적 감동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박윤선).  안디옥 교회이 다섯 지도자들의 금식을 통한 섬김은 무슨 특별한 문제와 박해가 있어서라기보다 안디옥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놀라운 뜻을 찾고자 드린 금식 기도 같습니다(유상섭).  (b) ‘섬기다’라는 단어는 또한 단체적인 예배 행위로 가리킵니다.  성경을 보면 ‘섬기다’라는 단어가 ‘예배하다’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데살로니가전서 1장 9절을 보면 데살리니가 교회 성도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섬기다’라는 단어는 ‘예배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섬기다’라는 단어는 안디옥 교회에 사도행전 13장 1절에서 언급한 다섯 명의 다양한 일꾼들이 선지자와 교사로서 교회 안에서 봉사했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11장에 언급된 바나바와 사울의 사역은 전도, 말씀 가르침을 통한 양육, 그리고 예루살렘 성도의 구제인 것을 보면(11:23-26, 29-30) 안디옥 교회에서의 섬김은 이러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유상섭).  

 

  •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교회는 성령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합니다.

 

결국 안디옥 교회 다섯 지도자들은 금식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주님의 뜻이란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것이였습니다.  어떻게 이 주님의 뜻을 알게 되었는지, 즉 성령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었는지는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에 의하면 “이 때에 성령의 음성을 안디옥 교회 선지자들 중에 누가 들었을 것이다”라고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시키셨던 일은 곧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것이였습니다(2절).  여기서 유상섭 교수님에 의하면 2가지 주목할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성령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두 일꾼을 세우신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람은 성령님께서는 바나바와 바울을 세워서 하나님의 말씀, 곧 구원의 말씀을 증거하여 사람들로 믿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성령님께서 지정한 두 사람은 5인 중에 첫번째 인물인 바나바와 마지막 인물인 사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나바와 사울 두 사람은 성령님께서 위임하는 선교 사역을 위해 부름받았지만 나머지 세 사람 역시선교 사역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나머지 세 사람은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 현장에 보내어 그들의 사역을 뒤에서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는 선교사라는 점입니다.

 

우리 승리장로교회는 성령님에 이끌림을 받는 교회가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교회요 주님의 뜻대로 복음 전파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안디옥 교회는 보내는 교회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디옥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3장 3절 말씀입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은 성령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안디옥 교회에 없어서는 아니될 것 같은 바나바와 사울, 어느 면으로 생각하면 안디옥 교회를 부흥케 한 두 지도자들을 안수한 후 보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보내니라’하는 단어의 의미는 보냈다는 것이라기보다 ‘놓아주었다’(released)라는 뜻입니다(박윤선).  그렇다면, 안디옥 교회는 없어서 아니될 일꾼들인 바나바와 사울을 성령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그들을 선교사로 내어 놓았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2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 안디옥 교회에서 어느 면으로 보면 없어서는 아니될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내놓은 것을 보면 그만큼 선교 사역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결단이였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하기엔 교회에서 없어서는 아니 될 바나바와 사울과 같은 중요한 일꾼들을 선교사로 파송한다는 것 … .  그러나 그 만큼 안디옥 교회는 선교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주님의 뜻인 선교에 순종하려는 자세가 있었습니다.

 

  • 선교사님들을 파송함에 있어서 준비된 일꾼들을 파송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성령님의 뜻인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서 파송케 하신 것을 볼 때에 우리가 알다시피 바나바와 사울은 선교지에 파송 받은 신앙의 초년생도 아니였고, 목회의 초보자도 아닌 것을 볼 때에 우리는 잘 준비된 성숙한 일꾼을 세워 선교지로 파송해야 합니다.  유상섭 교수님의 말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자들이 성령의 지시로 선교지로 나가 성공을 거두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국내 사역에서 검증되지 않은 자를 선교지로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  앞으로 교회들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다음 즉시 선교 현장에 파송하는 일에 대하여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인격과 신앙 그리고 신학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선교지에 보내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이다.  오히려 성령의 주권적인 인도하에 최고로 준비된 사람만을 선별하여 보내야 할 것이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안디옥 교회에는 다양한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안디옥 교회는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하면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는 파송하는 교회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디옥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준비된 훌륭한 일꾼인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우리 승리장로교회는 안디옥 교회와 같은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다양한 일꾼들이 주님 안에서 교회의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는 교회,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으면서 주님을 섬기는 교회, 선교하는 승리장로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주님이 세우시는 승리장로교회 담임 목사,

 

 

 

제임스 김 나눔

[2023년 7월 1일, 승리장로교회 설립 43주년 기념 감사 예배를 앞두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주님의 교회를 지난 43년 동안 어떻게 세워 나아가고 계셨는지를 안디옥 교회 말씀(사도행전 13장 1-3절) 중심으로 묵상하고 반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