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받는 가정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장 2절).

 

 

 

달라스 윌라드라는 목사님은 그의 책 “마음의 혁신”(Renovation of the Heart)에서 “외면의 악을 확실히 정복할 수 있는 것은 내면의 깊은 변화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윌라드).  저와 여러분은 외면의 악을 확실히 정복할 수 있는 것이 내면의 깊은 변화뿐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제 자신뿐만 아니라 제 육신의 가정 식구들이던 영의 가정 식구들이 우리 승리장로교회 식구들을 생각할 때 내면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겉으로 보이는 외면의 변화보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내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제 개인 신앙생활 및 가정 사역과 목양 사역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내면의 변화가 없이는 참된 외면의 변화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기독교인들의 문제는 우리가 내면의 변화는 등한히 하고 외면의 변화에 너무 신경쓰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가 없이 표면적인 변화를 추구하다보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선한 영향력을 행하기 보다 오히려 거꾸로 세상에 영향을 받아 세상을 본받아 살면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범죄하며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보기에는 참 신앙이 좋아보이고, 기도도 썩 잘하는 것 같고, 성경 지식도 있는 것 같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가 없기에 교회를 수년을 다녀도 성품의 변화도 없고 행함의 변화도 잘 뚜렷하게 나타나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정을 광야로 삼고 하나님의 도움심을 구하면서 가정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리하게 된 계기는 존 비비어의 “광야에서의 승리”(Growing Strong in Dry Times)란 책을 읽으면서입니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제 자신이 교회뿐만 아니라 특히 가정도 광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두 가지입니다:

 

  • 가정을 광야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아니 삼아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 가정 식구들의 모든 죄가 들춰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부부 관계에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가정만큼 우리 부부의 모든 죄가 들춰지기 좋은 장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정에서 우리의 모든 죄가 들춰질 때 참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것은 사실입니다.  고통과 슬픔이 당연히 있습니다.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광야로 삼는 부부는 그러한 과정들을 통하여 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지를 볼 수 있기에 부부 관계에서 들춰지는 죄를 하나님의 은혜로 여깁니다.  그 은혜를 알아가는 부부는 가정에서 서로의 죄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계속 들춰질 때 서로의 추한 그 모습 그 대로 서로를 직시하며 인정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참으로 나의 나 된 것뿐만 아니라 상대방 배우자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인정하며 고백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서로를 대하게 됩니다.  서로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품고 사랑하며 나아갑니다.  그러나 이것도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깨달아 갈 수밖에 없기에 더욱더 광야와 같은 가정에 홀로 하나님 앞에 머물러 간구합니다.  간구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 각자의 마음에 역사하시사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을 광야로 삼아야 합니다.  가정만큼 우리 부부의 모든 죄가 들춰지기 좋은 장소는 없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가정을 광야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서로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보다 서로의 필요한 것을 채워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이란 부부가 서로가 원하는 것을 서로 요구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상대방 배우자에게 내 자신의 원하는 것을 만족해 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원함이 상대방에게 만족하게 되지 못할 때 우리 부부는 서로 불평, 원망하며 싸우고 다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가 지내오면서 이렇게 원하는 것들이 만족되지 못하다고 생각하므로 말미암아 그들은 모세와 하나님께 계속 불평하며 원망했습니다.  이러한 광야의 현상들이 우리는 우리 가정에서 봅니다.  특히 우리 부부 관계에서 더욱더 잘 보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가정을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장소로 여기기 보다 서로의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곳을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며 남편 또한 아내에게 계속 요구하는 곳이 만일 가정이라면 그 가정은 욕구 불만 가운데 다툼과 싸움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부부가 가정을 광야로 삼고 부부생활을 한다면 서로의 원함을 요구하기 보다 서로의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는데 헌신할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필요를 더욱더 알아가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 아내의 필요들을 채워주고자 노력한다면 그 아내는 남편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것입니다.  또한 아내가 남편의 필요를 더욱더 알아가므로 말미암아 교회가 예수님께 복종하듯이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므로 그의 말을 청종하며 순종할 때 남편은 그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공급받을 것입니다.  그리할 때 부부는 각자의 필요를 서로를 통하여 채워지는 것을 경험하므로 만족함과 자족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부부는 함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가정을 광야로 삼아야 합니다.  가정만큼 우리 부부가 서로의 필요를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주는 좋은 장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변화 받는 가정”이란 제목 아래 주님께서 우리 각자의 가정을 세우심에 있어서 우리 모든 가정을 변화시켜 주시길 기원하면서 변화 받는 가정을 세우심에 있어서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지 로마서 12장 2절 말씀 중심으로 한 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세대(세상)을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장 39절에서 이 세대(세상)를 가리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서1장 4절에서 이 세대를 가리켜 “이 악한 세대”라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에베소서 2장2절과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새 사람이 되기 전에는 “이 세상 풍속”(엡2:2) 또는 “육체의 욕심”(갈5:16)을 좇아 행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새 사람이 되기전에 좇았던 이 세상 풍속 또는 육체의 욕심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5장 19-21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비슷한 목록이 로마서 1장 29-31절에도 나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문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 사람이 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새 사람 답게 살아 가기보다 아직도 옛 사람의 습관대로 이러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새 사람이 되었으면 새 사람 답게 살아가야 할 텐데 아직도 옛 사람의 일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과연 문제가 무엇입니까?  문제는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지 않아서 우리는 범죄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절 말씀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우리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지 않으면 우리 마음은 새롭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어두워진 우리의 미련한 마음대로 (1:21), 또는 우리 마음의 정욕대로(1:24) 이 죄악되고 음란한 세대를 본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야 함.  한 마디로, 우리 마음에 변화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묵상하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 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할 수록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2절말씀의 관점으로 다시 말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할 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할 때 둘째로, 우리는 분별하게 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므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참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 26절에서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온 식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가까이하여 듣고, 읽고, 묵상하며 공부하며 또한 순종하는 가운데 우리 안에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전해지길 기원합니다(온전한 마음).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더 이상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더욱더 예수님을 본받아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저와 여러분들과 우리 가정이 되길 기원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강준민 목사님은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다 변화를 원합니다.  하지만 변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톨스토이는 “모든 사람들은 인간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자기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주위의 사람들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함께 사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려고 몸부림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잘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정이 변화되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면 먼저 우리 자신이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세대(세상)을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므로 우리 가정도 주님께 변화를 받는 가정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나부터 해서 가족과 교회 식구들과 그들의 가정을 계속해서 변화시켜 주시길 기원하는,

 

 

제임스 김 나눔

(2023년 5월 21일,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풍성한 은혜로 예수님을 믿는 가정으로 세움을 받고 있음을 엿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