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부모님들
“…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 …” (마태복음 16장 18절).
지난 주 월요일에 제 전화기에 있는 앱인 인스타그램에 약 43년 전인 승리장로교회 1980년도 개척 당시 신문 광고와 사진들을 모아 15초 이하의 짧은 동영상을 만들어 줬습니다. 그 짧은 동영상을 보면 김창세 원로 목사님과 김창국 집사님과 김창만 집사님과 김창민 집사님의 부모님이신 고 김도점 장로님과 고 김영화 권사님과 윤재원 집사님의 아버님이신 고 유기창 집사님과 김내덕 장로님의 어머님이신 고 김정태 권사님도 나오십니다. 그 동영상에 나오는 이 네 분 어르신들 외에 승리장로교회 약 43년 역사에 여러 어르신들이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주님의 품 안에 안기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을 생각할 때 우리 각자에게 생각나는 추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교회 부모님들을 생각합니다. 그리할 때 저는 주님께서 우리 승리장로교회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인 마태복음 16장 18절인 “…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신다는 약속을 성취하심에 있어서 우리 교회의 부모님들을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셨고 지금도 사용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지난 날의 우리 교회의 부모님들과 더불어 오늘 여기에 함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의 부모님들을 생각하면서 주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셨고 지금도 사용하시는 교회의 부모님들은 어떠한 부모님들인지 한 3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 교회의 부모님들은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시는 분들입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고 최분남 할머님께서 자신의 간병인 권사님이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최 할머님은 그것을 거절하고 끝까지 우리 교회에 나오시겠다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고 김동윤 집사님도 저에게 죽을 때까지 우리 교회에 나오시겠다고 하시면서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장례 예배를 제가 좀 인도했으면 하시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납니다. 고 임봉희 할머님은 교회 부엌에서 쌀을 씻으신 것을 저에게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손가락을 보여주셨던 기억도 납니다. 뿐만 아니라 임봉희 할머님은 새벽기도회가 끝나면 여기 저기 걸어 다니시면서 빈 깡통을 주어 모으셔서 팔은 후 그 돈을 교회에 헌금하신 것도 기억이 납니다. 이 분들 외에도 지난 날에 우리 교회를 사랑하셔서 숨질 때까지 승리장로교회를 사모하셔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교회에 나와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셨던 교회의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그러시다가 더 이상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서 몸소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지 못하셨을 때에도 양로원에서나마 찾아 뵈었을 때 교회의 성도님들을 말씀하시면서 그리워하셨던 교회 부모님도 계십니다.
저는 이 교회 부모님들을 생각할 때 새 찬송가 208장 “내 주의 나라와” 1절과 3절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1절)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3절)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 왜 이 모든 교회의 부모님들은 그리도 승리장로교회를 사랑하신 것일까요? 로마서 5장 5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그분들)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그분들) 마음에 그분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부모님들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그분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에 그분들이 죽으실 때까지 주님과 주님의 몸 된 교회인 승리장로교회를 사랑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의 부모님들은 주님과 주님의 몸 된 승리장로교회를 사랑하시는 분들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그분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에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시는 우리 교회의 부모님들이십니다. 우리도 그 분들을 본받아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우리 교회의 부모님들은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부모님들입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마 그 때가 1980년도 제가 중학생이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때 저희 승리장로교회에서 ‘성경 암송 대회’가 있었는데 제 친 할머님이신 고 김영화 권사님께서 앞에 나오셔서 시편 23편을 외우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뿐만 아니라 승리장로교회 역사에 ‘설교 대회’도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제 기억으로는 고 김영화 권사님께서도 여기 강대상에 올라와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고 김영화 권사님뿐만 아니라 고 김정태 권사님은 제 기억으로는 ‘성경 암송 대회’ 때 히브리서 11장 전체를 다 외우셨습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셔서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도 잘 외우셨던 분이셨는데 나중에 치매로 약 7년 동안이나 양로원에서 고생하시다가 주님의 품 안에 안기셨습니다. 고 임봉희 할머님이나 고 최분남 할머님 같은 분들은 제가 알기론 글을 읽지도 못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을 믿으셨고 주님의 종을 통하여 들으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는 믿음 생활을 하시다가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특히 고 임봉희 할머님 같은 분은 교회 근처에 사셨을 때 새벽기도회 때 부지런히 나오셔서 원로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믿음 생활을 그 분 나름대로 겸손히 신실하게 헌신적으로 하시다가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고 장을수 할머님 같은 분은 양로원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시기 전까지 침대에 누워서라도 저와 함께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시고 또한 스스로 주기도문을 외우시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참 귀한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잊지 못하는 기억은 제가 윤 장로님과 함께 이석우 집사님 댁에 방문해서 고 이진구 아버님에게 예수님을 믿으시는지 확인을 하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크신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예수님을 믿으신다고 고백하셨기에 제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로 고 이진구 아버님은 예수님을 믿고 주님 안에서 잠드셨기에 하나님께 감사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우리 교회의 부모님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모든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있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우리 교회의 모든 부모님들이 예수님을 믿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님을 믿고 계신 분들은 하나님께서 더욱더 크신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며 주님을 믿는 믿음에 더욱더 견고히 서 계시길 하나님께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믿음의 장’인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처럼 우리 교회의 믿음의 장에 예수님을 나름대로 잘 믿다가 떠나신 믿음의 부모님들처럼 지금 우리 교회의 부모님들도 예수님을 잘 믿으시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믿음의 장에 이미 우리 각자의 추억이 기록돼 있는 믿음의 부모님들을 생각할 때 앞으로도 그 믿음의 장에는 우리 교회의 믿음의 부모님들이 더욱더 기록이 되어서 모든 교회의 부모님들이 예수님을 끝까지 잘 믿다가 주님의 품 안에 안길 때 주님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다 받으시길 기원합니다(마25:21, 23). 그리고 히브리서 11장 4절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 아벨이 “죽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교회의 모든 믿음의 부모님들도 언젠가 주님의 품 안에 안기실지라도 여전히 후세대들의 추억에 믿음의 부모님들로 각인되어서 그들의 믿음 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실 수 있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 교회의 부모님들은 천국을 바라보는 소망의 부모님들입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것은 고 최분남 할머님께서 몸이 아프셔서 제가 사시는 아파트에 방문했을 때 최 할머님은 저에게 ‘나도 한번 천국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 때 최 할머님은 저에게 그리 말씀하셨을까 생각해 볼 때 제 생각엔 최 할머님은 고통과 아픔과 죽음이 없는 천국을 사모하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고 최분남 할머님은 남편은 객사하시고 여섯 명의 자녀들 중 할머님보다 세 명의 자녀들이 먼저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여섯 자녀들 중에 마지막으로 떠난 아드님은 함께 아파트에서 사시다가 거실에 누워있는 그 아드님을 깨우려고 했을 때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아시고 통곡하셨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고 최 할머님 댁에 갔었을 때 시에서 사람 두 명이 나와서 할머님의 아드님의 시신을 옮기고 있었고 그 후에 제가 할머님과 거실에 들어갔었을 때 최 할머님은 거실 바닥에 나뒹구시면서 통곡을 하셨습니다. 특히 할머님은 어머니로서 오십이 훨씬 넘은 아드님을 장가도 못 보내고 이 세상을 떠나보내신 것에 대해 마음이 매우 아파하셨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그 아드님의 추모 예배를 아파트 단지에 있는 Recreation room에서 드린 후 최 할머님은 저에게 다가오셔서 ‘목사님,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요’라고 예쁘게 우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할머님의 마음이 오죽 아프시고 괴로우셨으면 그렇게 저에게 말씀하셨을까 상상이 안 됩니다. 결국 고 최분남 할머님도 자녀들을 따라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St. Vincent 병원에 입원해 계셨었습니다. 그 때 저는 윤장로님과 함께 찾아 뵙고 하나님께 (임종) 예배를 드린 후 고개를 숙여서 산소 호흡기를 끼고 계셨던 최 할머님의 귀에다가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최 할머님은 저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최 할머님은 그 날 오후에 편안이 눈을 감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영혼은 그녀가 가 보고 싶다는 천국에 주님의 품 안에 안겼습니다. 고 안덕일 전도사님과 고 김동윤 집사님은 살아생전에도 함께 주일 오후 성경공부를 인도하시면서 섬기셨었는데 두 분다 이 세상을 떠나실 때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시면서 떠나셨습니다. 두 분다 천국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으셨기에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겸허히 믿음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고 김동윤 집사님의 경우에는 제가 두 번이나 제 장인 어르신처럼 호수를 위(stomach)에 꽂으시는 것이 어떠하신지 여쭤보았지만 두 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드시면서 분명히 ‘아니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결국 그분은 예배를 드리시다가 제가 손을 잡고 기도하는데 숨을 거두시고 그의 영혼이 주님의 품 안에 안겼습니다. 고 안덕일 전도사님은 장례 예배 때 즐겨 찬양하시던 새 찬송가 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하나님께 찬양드렸습니다: (1절)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아서 날마다 기도합니다; (5절) 내주를 따라 올라가 저 높은 곳에 우뚝 서 영원한 복락 누리며 즐거운 노래 부르리. (후렴) 내 주여 내 맘 붙드사 그곳에 있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모든 부모님들이 천국의 분명하고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 살아가시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 소망의 확신을 가지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떠한 역경과 고통이 있다할지라도 인내하며 건뎌내시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2절 말씀처럼 우리 교회의 모든 부모님들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는 부모님들이 되시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러시다가 주님께서 오라하실 때 감사로 하나님께 찬양 드리시다가 주님의 품 안에 안기 시길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사랑과 믿음과 소망의 부모님들을 도구로 사용하시사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 계심에 감사하는,
제임스 김 나눔
(2023년 5월 14일, 어버이 주일 오후에 목양실에서)